[송경원의 시네아트] '피해자들' 죽고 싶은 여자 죽이는 남자의 묘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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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표현하기엔 영화 완성도 떨어져

피해자들. 골든타이드픽처스 제공

가인(정은아)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고향으로 내려오지만 마음속엔 원망만 가득하다. 자리를 비운 아버지 대신 잠시 봐 주던 열쇠가게에 서울에서 내려온 디자이너라는 도경(류태준)이 찾아온다. 도경에게 호기심을 느낀 가인은 그의 작업실까지 따라갔다가 작은 팔찌를 선물 받는다. 하지만 도경의 정체는 여자들을 납치 살해하는 살인마였고 어느 날 밤 인적 드문 곳을 지나다 도경에게 납치당한 가인은 곧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 순간 오히려 "죽고 싶다"고 말하는 가인과 그런 그녀를 죽이지 못하는 도경. 상처 입은 두 남녀의 기묘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검다'의 반대말은 '희다'일까, '검지 않다'일까. 흑백으로 나뉜 세계는 선명하고 편하지만 한편으론 폭력적이다. 선악, 찬반, 죄와 벌, 피해자와 가해자로 세계를 양분하는 사이 무수한 색깔과 가능성들이 지워질지도 모른다. 영화 '피해자들'은 '희다'와 '검지 않다' 사이에 놓인 다른 색깔들을 더듬으려 애쓴다. 가해자의 사연, 피해자의 상처가 때론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통찰. 카메라는 납치살인사건의 가해자와 성폭력사건의 피해자가 서로의 가슴속 깊이 패인 상처의 냄새를 맡고 동물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과정을 숨죽여 관찰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관찰은 실패한다. 아버지의 성적 학대로 고통 받아 온 가인은 줄곧 죽고 싶어 하던 여자다. 살인을 통해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도경은 그녀의 정반대에 위치한 남자다. 영화는 거울상 같은 두 사람의 뒤틀린 상처가 주는 동질감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지우려 애쓴다. 그런데 그 과정이 마뜩찮다. 의도와 야심은 충분히 알겠는데 이를 뒷받침할 만한 공감의 과정이 생략되다시피 했다. 가인과 도경의 뒤틀린 욕망과 기이한 행동들은 그저 이야기를 위한 상징적 행위에 머무를 뿐, 의미로 연결되진 않는다.

문제는 완성도다. 가인이 도경에게서 탈출구를 발견하는 이유, 도경이 살인으로 상처를 달래게 된 이유를 제대로 납득시키지 못한다. 플래시백은 변명처럼 남발되고 자극적인 소재도 밋밋하게 전시되는 데 그친다. 피해자와 가해자, 죄와 벌, 성스러움과 속됨으로 이어지는 고리들을 상징적으로 이어붙이기에 급급하다 보니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그 이야기란 것도 개연성 없는 연결로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그나마 서스펜스나 스릴 같은 장르적인 재미마저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의도만 가지고 영화가 성립할 수 없음을 증명한 좋은 예다. 31일 개봉. 


송경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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