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야간산행] 밤을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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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 더위로 달아오른 도심을 벗어나 밤의 숲길에 올랐다. 하늘에 별이 반짝이고, 도심은 화려한 불빛으로 뒤덮였다. 영도 봉래산 정상에서 바라본 부산항 야경이 눈부시다. 가운데 우뚝 솟은 다리가 지난 5월 22일 개통한 부산항대교이며, 그 오른쪽 옆으로 감만부두와 신선대부두가 보인다. 정종회 기자 jjh@

산에 들면 어둠살이 끼기 전에 하산하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먼 산일 경우라면 더 그렇습니다. 거꾸로 일부러 해거름에 시작하는 게 야간산행입니다. 일부 마니아들은 '야등'(야간 등반)으로 줄여 부르기도 합니다.

야간산행은 동네 산, 즉 도심의 산에 딱 맞습니다. 쳇바퀴 같은 일상을 잠시 벗어났다가 이내 돌아올 수 있어서 매력적이지요. 열대야가 찾아올 즈음 야등은 제철을 만납니다. 자외선과 뙤약볕 걱정 없이 선선한 숲길을 걸으면서 화려한 도심 야경도 즐길 수 있거든요. 게다가 별 총총 떠 있는 하늘을 좋은 사람들과 나눠 보십시오. 아주 특별한 여름밤의 추억으로 남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루일을 마치고는 주섬주섬 등산장비를 갖춰 해가 지는 숲속에 빠져드는 야등 마니아들이 늘고 있습니다. 둘레길과 등반로의 정비로 밤길도 안전해진 게 한몫을 했습니다.

이번 주 산&산에서는 평일 저녁에 대중교통 수단만을 이용해서 영도 봉래산 밤길을 누볐습니다. 봉래산 야경이 좋은 거야 다 알지만, 남항대교에 이어 부산항대교까지 생긴 뒤 달라진 밤 풍경이 궁금했습니다. 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게다가 별빛, 불빛을 조명 삼아 즐기는 '산상 파티'까지!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야심한 시각에 산길을 걷는 재미에 푹 빠진 분들도 만났습니다. 지인들과 '번개 야등'을 다니는 시장 상인, 아예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여름밤 도심 산을 누비는 사람들…. 마약같아서 한 번 맛을 들이면 그만 둘 수가 없다는 이구동성의 예찬이 돌아왔습니다.

고수들에게 물었습니다. 야간산행 하기에 가장 좋은 부산의 산은? 황령산 봉수대는 부산 전체를 파노라마로 볼 수 있어서 타지인이 오면 일부러 택시를 태워서라도 데려간다네요. 낙조의 풍광이 일품인 승학산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분들도 있습니다. 해운대 장산에서 바라본 마린시티의 마천루를 어디 가서 볼 수 있느냐고 하자, 항구와 묘박 상선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 때문에 영도 봉래산에서 바라본 야경이 가장 '항구도시 부산'스럽다고 맞서네요. 천마산, 이기대 장자산…. 줄줄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다가 아차! 했습니다. 우문이었네요. 뿜어내는 매력이 제각각인데, 어찌 우열을 가리겠습니까!

자, 여름휴가철입니다. 열대야도 몰려오네요.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고요와 적막이 내리깔리는 밤의 숲길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휴식, 휴가, 일탈, 여가…. 뭐라 부르든 간에 분명한 건, 아주 짧지만 특별한 여름밤의 추억으로 남을 겁니다.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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