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생존학생 첫 법정 증언 "친구들 잡아주고 밀어줘서 탈출… 바로 옆 해경은 바라보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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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이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기 위해 28일 경기도 안산 수원지법 안산지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재판부는 그동안 광주에서 재판을 해왔으나 미성년자인 학생들이 사고 후유증으로 광주에 와서 증언을 하긴 어렵다고 판단해 이날 안산지원에서 증인신문을 했다. 연합뉴스

"학생들은 줄 서 구조를 기다리다 파도 에 휩쓸렸고, 해경은 손닿는 거리에서 바라만 봤습니다."

'세월호' 승무원에 대한 재판에서 생존 학생들은 침몰사고 당시 선실에서 빠져나와 비상구로 이어지는 복도에서 구조를 기다렸지만, 승무원이나 해경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28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임정엽) 심리로 열린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공판에서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생존 학생 6명이 처음 증인으로 나서 사고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28일 생존 학생 6명 증인 나서
"복도서 줄 서 구조 기다렸지만
아무도 안 와 바다로 뛰어내려"

"평소 화물차·승용차 고박 부실
배에 갇힌 여학생 눈빛 못 잊어"

■학생들 침착하게 서로 도와

세월호 4층 선미쪽 왼편 SP1 선실에 머물던 A 양은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90도로 섰다"며 "옆에 있던 출입문 위로 가 구명조끼를 입고 물이 차길 기다렸다가 친구들이 밑에서 밀어주고 위에서 손을 잡아줘 방에서 빠져나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A 양은 "배가 기울자 반장이 친구들에게 구명조끼를 입으라고 소리쳐 친구들이 하나 둘 입었으며, 창가의 애들이 물이 점점 차오른다고 소리 지르자 반장이 침착하게 구명조끼가 있으니 기다렸다가 물이 차면 나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A 양이 말한 반장은 SP1 선실에 머물던 학급의 반장 유 모 양으로 끝내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A 양은 이어 "선실에서 나와 보니 비상구로 향하는 복도에 친구들 30여 명이 줄을 선 채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구조대가 오지 않아 한 명씩 바다로 뛰어들었는데, 내가 뛰어든 뒤 파도가 비상구를 덮쳐 나머지 10여 명의 친구들은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A 양과 같은 선실에 있던 B 양 등 4명도 친구들끼리 서로 도와 A 양과 같은 방법으로 탈출했고, 이 과정에서 승무원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다. B 양은 "손 닿으면 닿을 거리에 있던 고무보트에 탄 해경은 비상구에서 바다로 떨어진 사람들을 건져 올리기만 했다"며 "비상구 안쪽에 친구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는데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고 진술했다.

사고 당시 친구를 만나러 선체 중앙 왼편 B22 선실에 갔던 C 양은 배가 기울어져 위쪽에 위치한 오른편 선실에서 누군가가 커튼으로 만든 줄을 던져줘 탈출했지만 도움을 준 사람이 승무원이나 해경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다른 학생들은 "'특히 단원고 학생들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반복됐다"며 "탈출 방송이 나왔다면 캐비닛 등을 밟고 많은 인원이 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은 재판부를 향해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을 엄벌에 처해달라고 호소했다.



■선장 등 승무원 무책임

생존 학생에 이어 증인으로 나온 일반인 생존자 D 씨는 사고 당시 뜨거운 물이 담겼던 물통이 쏟아지며 화상을 입어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탄 채 법정에 나왔다.

화물차 운전기사로 세월호를 자주 탔다는 그는 "화물차를 적재할 때 보니 파도가 약한 날은 고박을 바퀴 네 개 가운데 앞뒤로 하나씩 두 군데에만 하고 승용차에는 아예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사고 당시 승무원 박지영 씨가 학생들을 달래고 있기에 이 배에서 제일 책임있게 행동해야 할 선장한테 무전을 쳐보라고 했는데 선장 쪽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3층 안내데스크에 있다가 바다로 뛰어내렸는데 일부 학생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공포심에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며 "배에 남아있던 여학생 3명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괴로워했다.

지난해부터 공연을 위해 세월호에 오르다 사고 당시 조타실로 이동해 일부 승무원과 함께 탈출한 필리핀 가수 부부는 "한 승무원이 선장에게 어떻게 할지 물었는데 선장이 대답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 부부는 "선장은 파이프를 잡고 선 채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고 한 승무원은 계속 울고 있었다"며 "나머지 승무원도 패닉에 빠진 상태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고 덧붙였다.

생존 학생과 일반인 생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는 동안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적힌 노란 팔찌를 찬 학생 부모들은 한숨 섞인 탄식을 내쉬었다.

앞서 재판부는 생존 학생들이 미성년자이고 대부분 안산에 거주하며 사고 후유증으로 장거리 이동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지난달 24일 그동안 재판이 열린 광주가 아닌 안산에서 재판을 열기로 결정했다. 전대식 기자 pr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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