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파이어볼러 하준호 이젠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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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의 나이에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며 인생을 건 도박을 시작한 롯데 자이언츠의 하준호. 올시즌 퓨처스리그에서 48경기 0.211의 타율을 기록하고 1군 무대를 밟은 그는 잠실원정에서 성공적인 타자 데뷔를 마쳤다. 강원태 기자 wkang@

롯데 자이언츠 팬은 하준호를 작은 체구의 좌완 파이어볼러로 기억한다.

하지만 2009년 1군 무대를 두드린 이후 2년간 25경기에 출전해 2패 4홀드.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평범한 성적표를 받아든 그는 곧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작년 소집 해제 후 인생 건 도박
상동구장서 1년간 인고의 시간
잠실원정서 생애 첫 타점 기록
"타자로 성공한다는 생각뿐"

그리고 4년이 지난 2014시즌, 하준호가 다시 잠실 원정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들어선 곳은 마운드가 아니라 타석이었다.

2013년 공익근무를 마친 하준호는 글러브 대신 방망이를 잡았다. "학창시절에 많이 던졌죠. 중학교 시절부터 일단 올라가면 볼넷이 10개라도 내가 다 던지고 내려왔으니까. 하지만 프로에 와서 불펜 투수를 해보니 적응이 안 되는 거에요. 구속은 자신 있었는데 제구가 안 됐어요."

경남고 시절부터 외야수를 보며 타격에도 출중한 소질을 보였다. 하지만 3학년이 되면서 굳이 방망이를 잡을 필요가 없어진 그는 투수에 올인했지만 프로 무대는 녹록하지 않았다.

2010년에 선발 등판한 두산전에서 하준호는 1회 아웃카운트 하나 잡을 동안 7점을 내줬다. "아마 대호 형이 9경기 연속홈런을 기록하던 당시였을 겁니다. 1회 스리런을 얻어맞으니까 멍해지더라고요. 갓 입단했을 때야 나도 10승, 20승 할 것 같았죠. 하지만 승준이 형이나 원준이 형이 아닌 이상 어중간한 사람은 그 문턱 넘기도 힘들어요. 잘될 때까지 기회를 준다는 보장도 없고."

'막히면 돌아간다'는 말이 있지만 투수에 올인했던 선수가 프로에 와서 타자로 전향한다는 건 인생을 건 도박이다. 투수로 바닥을 친 터라 전향 자체는 겁이 안 났지만 문제는 6년 만에 다시 잡은 방망이였다.

주눅이 들어 있던 그를 다잡아준 이가 퓨쳐스 김민호 타격코치다. "김 코치님이 소집해제 전에 불러서 '스윙 한번 보자'시더니 '괜찮네, 넌 이제 제대하면 죽었어' 그러시더라고요. 아직도 챙겨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어요.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퓨처스리그에 출전하며 외야에 선 하준호의 눈에는 야구가 다시 보였다. 투수할 때 야수가 실책을 범하면 짜증도 내고 했었는데 정작 본인이 땅볼을 놓치니 투수 눈도 못 마주친다고.

그래도 투수 출신이니 수 싸움에는 유리하겠다는 질문에는 손사래를 쳤다. "전혀 도움 안 돼요. 100% 예상 가능한 상황이라는 건 없잖아요. 전 지금 완벽한 백지 상태입니다. 공 오는 대로만 쳐요"

한 때 직업이 야구선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 적도 있었다. '야구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은 시간이 약이었다. "'난 그저 사회인 야구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자괴감도 들었죠. 하지만 이제는 '무조건 타자로 성공한다'는 생각뿐입니다."

1년 동안 상동구장에서 묵묵히 방망이를 돌린 인고의 시간이 끝났다. 하준호는 결장한 손아섭 대신 27일 우익수로 출격해 타자 데뷔전에서 첫 안타를 뽑아냈다. 28일에는 첫 타점과 득점을 기록했다.

25살 '타자 하준호'의 새 인생을 알리는 축포였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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