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 의혹·진술 번복… '소신 직원' 파면, 해경의 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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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이 지난해 낚싯배 선주를 수사하던 한 직원을 감찰 후 파면시킨 것을 두고 부실·표적 감찰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당시 해경 직원이 소속된 남해지방해양경찰청 건물 모습. 김경현 기자 view@

지난해 9월 30일 파면된 해경 A 경위(본보 지난 21일자 6면 등 보도)는 "지역 유지의 낚싯배를 단속한 후 각처로부터 봐주라는 청탁이 있었는데, 이를 거절하자 금품수수 혐의로 해경의 표적감찰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A 경위에게 돈을 줬다는 낚싯배 선장 황 모(50) 씨는 "돈을 준 적 없다"며 진술을 번복했다가 "돈을 줬다"고 다시 번복했다.

해경은 황 씨 말을 그대로 믿고 순식간에 A 경위에 대한 징계를 밀어붙였다. 이에 A 경위는 억울함을 주장하며 해양경찰청장을 상태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진실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A 경위에 뇌물 제공 주장 선장
투서자 형에 사전 부탁 받아
"각계 각층서 전화 와 미치겠다"
A 경위 상관이 하소연 증언도

돈 줬다는 시간·장소 오락가락
법조계 "파면은 무리한 처분"

■사전 모의, 단속 무마 청탁 정황

A 경위 파면사건의 발단은 그가 남해해양경찰청 창원해양경찰서 신항파출소 용원출장소에 근무하던 지난해 8월 5일 S낚시점 소속 W호(3.5t) 선주 이 모(62) 씨를 항만운수사업법 위반과 불법 면세유 사용 혐의로 입건하면서 시작됐다. 단속 이틀 뒤인 8월 7일 오전 10시께 이 씨의 작은 아들(32)이 해경청장과의 대화방에 '어민 피 빨아 먹는 A 경위'라는 제목으로 투서를 올린 게 해경 본청의 감찰로 이어졌다.

그런데 투서가 접수되기 전 이 씨의 큰아들(35)이 평소 알고 지낸 낚싯배 선장인 뇌물 공여자 황 씨와 사전 모의한 정황이 드러났다.

투서 접수 전인 지난해 8월 5일 오전 7시께 이 씨 큰아들이 황 씨에게 전화를 걸어 "A 경위가 금품을 수수한 사실과 술접대를 받은 사실을 진술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 같은 진술은 지난해 8월 21일 큰아들이 해경 감찰에 제출한 진술서에 기록돼 있다. 진술서에 따르면 큰 아들은 또 "겁(만) 줘선 안 된다. 확실히 보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큰아들 이 씨와 황 씨는 낚싯배 영업을 하면서 10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A 경위가 W호 선주를 단속하자 각계각층에서 A 경위에게 청탁했음을 암시하는 진술도 나왔다. 당시 A 경위의 직속상관이던 신항파출소 K 경감은 지난해 11월 13일 감찰조사에서 "네가 그 배(W호)를 안봐주고 거기서 계속 근무할 수 있겠나…각계각층에서 전화 오고 미치겠다…너도 약점이 있고 할 건데"라고 진술했다.

A 경위는 "W호 선주을 단속하자 여러 군데에서 봐주라는 청탁이 왔는데 거절하자 선장의 아들들이 사전에 황 씨와 짠 뒤 투서를 했고, 곧이어 해경 본청 감찰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K 경감은 "단속사건의 처리절차가 규정에 맞지 않아 몇 가지 조언한 것이지 봐주라고 청탁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돈을 줬다고 주장하는 황 씨 역시 "A경위가 하도 부탁을 하길래 진술을 번복했다"고 말했다.

해경 감찰팀 관계자는 "해경 직원이 금품을 받았다는 투서가 접수돼 감찰을 시작했을 뿐이다"며 "하급 간부에 대한 표적감찰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줬다 " vs "안 받았다"…누구 말이 맞나

A 경위에 대한 해경 감찰자료에 따르면 황 씨는 지난해 8월 7일 1차 조사에서 "2011년 2~3월께 경남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 U메밀국수집 주차장에서 100만 원, 같은 해 5~6월 김해시 삼방동 자택 근처 공원에서 100만 원을 A 경위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본보 확인 결과, 황 씨가 첫 번째로 금품을 줬다는 시점인 2011년 2~3월께 금품 전달 장소로 지목된 U메밀국수집은 개업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U국수집 업주 박 모(45) 씨는 "2011년 8월 중순에야 국수집이 개업했다"고 말했고, 진해구청에 접수된 영업신고서에도 2011년 8월 개업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 때문인지 황 씨는 지난해 10월 15일 남해해경청의 재조사에서 "2011년 3~4월 김해에서 돈을 준 것이 먼저고, 용원에서 돈을 준 것은 그해 6~7월인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을 변경했다.

하지만, 바뀐 진술 역시 당시 상황과 부합되지 않고 있다. 김해시청에 확인 결과 황 씨는 해당 주소지로 전입한 기록이 전혀 없고, 황 씨 아내는 2011년 5월 중순 김해 삼방동으로 전입했다. 돈을 줬다는 날짜에 황 씨가 해당 주소지에 거주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된 것.

황 씨 진술이 오락가락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황 씨는 지난해 8월 16일 A 경위와 대질심문을 마친 후 갑자기 태도를 바꿔 그해 10월 초까지 "A 경위에게 돈을 준 적이 없다"고 수차례 주장했다. 심지어 대질심문 이틀 뒤인 8월 18일 해경 본청 감찰팀 B 경위에게 전화를 걸어 "돈 준 사실도 없고…사건이 잘못 됐으니 바로 잡아야…"한다며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해경은 A 경위에 대한 징계를 밀어붙였다. 해경 감찰팀 관계자는 "황 씨가 정확하게 금품을 준 시기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금품액수와 받은 사람에 대해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며 황 씨 진술을 신뢰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뇌물공여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파면시킨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진국 기자 gook7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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