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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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에서 키스를 표현한 문장은 기막히다. '입과 입을 마주하니 呂(여) 자가 되더라.' 그림 그대로다. 불이 번쩍, 빛 光(광) 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 NBA 농구장에서 카메라에 잡힌 남자가 '키스 타임'이라며 옆자리 여자에게 키스를 했는데 뺨을 철썩 얻어맞았다. 다른 경우도 있다. 영국 야구장에서 키스 타임 이벤트가 시작됐다. 좋아하는 여자와 달리 남자는 모르는 척 전화 통화를 계속 해 대다가 화가 난 여자의 맥주 세례를 받는데 이는 비 雨(우) 자 꼴이 난 경우다.

깊을 深(심) 자에 들어맞는 건 클림트의 그림 '키스'다. 그 키스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가는 순간의 경험"이라 했던 키스에 대한 플라톤의 정의에 거의 부합한다. 한국 영화에서 키스 장면이 처음 나온 건 1954년 '운명의 손'. 대단한 문화 충격을 던졌으니 접문(接吻)은 새 시대에 대한 입맞춤이었다. 어릴 적 TV 외화를 보다가 키스 장면이 나오면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던 일이 있었으니.

TV 드라마에서 최초의 키스 장면은 1991년 '여명의 눈동자'에 나왔다. 철조망을 사이에 둔 그 키스 장면은 처연하고 아련하고 아득했다. 그렇게 금기가 깨진 이후 90년대 TV에서 키스 장면들은 늠름하게 행진했다. 그게 90년대 후반 야구장의 관람석으로 옮겨졌고, 처음에 부끄러워하던 사람들도 2000년대 들어 점차 과감해졌다. 요즘은 중년들도 키스 타임을 거뜬히 소화한다고. 사전 조율(?)을 통해 2011년 이명박 대통령도 잠실야구장에서 키스 타임을 소화한 적이 있다.

매월 보름 경주의 보문호 달빛 걷기에도, 지난해 서울미술관의 한 전시에도 키스 존이 설치돼 좋아들 했단다. 해운대구가 수영강변의 APEC나루공원에 연인을 위한 '키스 존' 설치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란다. 멍석을 깐 키스의 전진이다. 영어 약어 중 'KISS'(Keep It Short and Simple)는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는 뜻인데 두고 볼 일이다. 최학림 논설위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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