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책] "얘들아 좋은 전쟁이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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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와 폭격으로 생긴 구덩이가 그대로 남아 있는 프랑스 베르됭 격전지 모습. 서해문집 제공

외할아버지가 한쪽 다리를 잃은 날을 기념해 파티를 벌이는 가족이 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지은이의 외할아버지는 개전 3주 만에 포탄에 왼쪽 다리를 잃었다. 이런 불행을 자축하다니.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유럽과 아프리카의 지도를 바꿔놓은, 아니 단순히 지도만 바꿔 놓은 것이 아니라 이후 세계사의 물줄기를 돌려 놓은 이 전쟁에 대해 우리는 깊이 알지 못한다.

한국인에겐 일제의 만행과 동족 상잔의 비극이 더 큰 상처이므로. 그럼에도 주요 열강이 온 국력을 집결해 영토를 넓히고 자원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뛰어 들었던 세계적 규모의 전쟁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합니다/ 니콜라우스 뉘첼
100년 뒤 현재 동아시아에서,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긴장과 국지전이 언제 세 번째 세계 대전으로 번질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본때를 보여야 한다'거나 '말만 하지 말고 붙어보자'며 은근히 퍼뜨려지는 전쟁 불가피론을 어떻게 봐야 할지,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합니다'는 설명해준다.

지은이의 외할아버지는 1차 대전에도 참전했고, 나치당원으로도 활동했다. 1차 대전 무렵 유럽은 땅은 넓지만 편파적인 신문과 구전되는 이야기가 세상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위정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세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내·외부의 위험을 과대 포장하고 전쟁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내세우는 데 평범한 국민들은 동조했다.

익히 1차 대전의 원인으로 지목된 사라예보 사건은 사실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기다리고 있던 개전의 명분이었을 뿐이다. 전쟁은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기업에게도 자양분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적 명차를 생산하는 BMW나, 세계적 제약회사 Bayer, 화학회사 Basf가 세계대전을 통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전쟁을 일으키고 이익을 챙기는 쪽이 위정자와 기업들이라면, 피해를 입는 쪽은 철저히 평범한 국민들이었다. 1차 대전 군인 사망자는 900만 명, 민간인 사망자는 800만 명에 이르며, 참전 군인 가운데 1천900만 명은 부상을 당하거나 장애인이 되었다. 이 군인들 중에는 유럽 국가의 식민지에서 징발된 이도 많았다.

지은이는 좋은 전쟁은 없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우리에겐 다른 기념비들이 없다/우리에겐 이런 기념비가 없다/여기 동료 인간을 쏘아 죽이기를 거부했던/한 남자가 살았노라/그에게 경의를!' 작가 쿠르트 투콜스키가 1차 대전 직후 프랑스 마을에 있는 기념비들을 보고 분개하며 쓴 글을 지은이는 인용했다. 다시 전쟁의 광기가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동아시아에서, 청소년들에게 들려줘야 할 이야기다. 청소년용. 니콜라우스 뉘첼 지음/유영미 옮김/서해문집/256쪽/1만 1천900원.

이호진 기자 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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