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가족' 대지진과 원전 사고 속에 피는 가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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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사회적 울림 큰 수작

동경가족. 오드 제공

큰 재난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가족들을 생각하고 찾는다. 미국에서 여객기 사고가 났을 경우 국제전화가 빗발치고,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사고 시 혹시 우리 가족이 있지 않을까 전화통에 불이 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 일본이 그랬다. 워낙 큰 참사였기에 일본의 사회나 가정이 뿌리채 흔들렸고, 가족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베를린영화제에서 특별공로상을 받은 거장 야마다 요지 감독의 '동경가족'이 그렇다. 이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명작 '동경이야기'(1953년)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동경이야기'가 2차 대전 패전 후 경제성장기에 접어든 일본 내 한 가족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렸다면, '동경가족'은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그로 인한 원전사고를 겪어야 했던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은 섬에 사는 히라야마 부부는 자식들과 만나기 위해 도쿄로 상경한다. 의사인 큰아들과 미용실을 운영하는 둘째 딸은 갑작스러운 노부부의 방문을 부담스러워 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에게 호텔 숙박을 권유하는 등 소홀히 대한다. 노부부의 철없는 막내아들 쇼지(츠마부키 사토시)만이 여자 친구 노리코(아오이 유우)와 함께 노부부를 따뜻하게 보살피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이 가족에게 커다란 위기가 닥친다는 것이 큰 줄거리다.

이렇듯 영화는 오랜만에 자식들과 대면한 노부부의 도쿄 여행기를 통해 삶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렇게 요란하지도 않고,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다. 그저 하루하루를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잊고 지내던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하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녹여 내면서 대참사를 겪은 일본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결코 작지 않다.

영화 제작에 얽힌 이야기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요지 감독은 '동경가족' 촬영 준비에 쫓기던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그로 인한 원전사고를 겪어야 했다. 촬영 시작 날이 임박해 왔지만, 그는 "이대로 영화를 만들 경우 현재의 일본을 그릴 수 없다"고 판단해 촬영을 연기했다.

이에 따라 극의 설정도 변했다. 자신을 부담스러워 하는 자식들에게 서운함을 느낀 아버지 슈키치(하시즈메 이사오)는 술에 취해 "이 나라는 어디서부턴가 잘못됐어. 이대로는 안돼. 다시 돌이킬 순 없을까?"라고 말한다. 또 동료 교사의 조문을 하러 간 슈키치는 죽은 동료 부인의 가족이 쓰나미에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며, 극 중 연인 사이인 쇼지와 노리코는 재해 지역의 봉사활동에서 만난 사이로 나온다. 일본의 톱스타 츠마부키 사토시와 아오이 유우가 사랑스러운 커플로 등장하며 잔잔하면서도 은근하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수작이다. 31일 개봉.

김호일 선임기자 tok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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