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음식 이야기] 고기를 먹나, 기름을 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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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미생물학과 명예교수

한국사람은 기름기를 좋아한다. 기름기에 대한 집착이 잘 드러나는 게 소고기 마블링(marbling)이다. 마블링이란 붉은 소고기 육질 사이에 하얀 눈꽃이 핀 것처럼 빼곡히 박힌 지방질이 마치 대리석(marble)의 문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등심, 안심. 갈빗살이 이에 해당된다. 동물성 포화지방(산)에 대해 온갖 협박성 방송과 정보가 넘쳐나도 국민의 기호성은 요지부동이다.

마블링이 많은 고기가 영양학적인 측면에서 질이 좋은 것도 아닌데 단지 소비자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좋은 고기로 취급된다. 축산농가도, 도체등급제도 이런 수요에 맞추어 사육하고 등급을 매긴다. 지방질이 골고루 박혀야 높은 등급이 나오고, 그래야 소를 비싸게 팔 수 있으니 축산농가도 어떻게 하면 지방질을 높일까에 관심을 갖는다. 방목을 피하고 밀식 사육과 고에너지 사료로 지방의 축적에만 올인한다.

방목해 풀을 먹이면 마블링이 생기기 어렵다. 그래서 방목하던 소를 출하 몇 달 전부터 우리에 가둬 놓고 고열량 사료를 먹여 마블링 제조과정(?)에 들어가기도 한다.

꼼수도 등장했다. 질 나쁜 고기에 기름을 주입해서 질이 좋은 것처럼 둔갑시킨다. 소고기를 손질할 때 폐기하는 유지를 수거해 녹인 기름을 주사바늘로 소고기에 주입하는 방법이다. 스테이크 크기의 고기를 이동하는 컨베이어에 올려 놓고 수십 개의 주사바늘이 동시에 내려와 자동으로 조밀하게 기름을 주입하면 짝퉁 등심이 만들어진다. 기름투성이 가짜 등심을 실컷 먹으면 질 나쁜 기름으로 포식을 하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도체등급제가 시행되기 전까지 마블링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본인의 독특한 소고기 사랑이 우리에게 전염된 게 마블링이다. 축산기술을 일본에서 배우면서 그들의 기호까지 배워 온 결과이다. 도체등급제 실시 이후 한우는 온통 지방 범벅의 소고기가 됐다. 지방 함량이 높아야 높은 등급을 받는 현재의 등급기준은 국민 건강을 고려할 때 문제가 많다. 대체 고기를 먹는 것인지 기름을 먹는 것인지 모를 정도다.

저등급이라도 숙성에 의해 질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저온에서 1주일 정도 숙성을 거치면 맛이 좋아진다. 소고기 세포의 자가소화에 의해 단백질의 일부가 분해되고 아미노산이 나와 맛을 좋게 하고 질긴 근육을 분해하여 부드럽게 만드는 효소가 작용한 결과다. 비싼 돈 주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고기를 먹느니 냉장고에 넣어 두고 숙성한 고기가 훨씬 위생적이고 좋을지 모르겠다. leeth@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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