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중지 키운 치어 어떡하나" 양식어민 울린 책상머리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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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조수산 정남수 대표가 경쟁입찰 원칙만 고수하는 일부 시군의 융통성 없는 탁상행정으로 갈 곳을 잃은 쥐치 치어를 떠 내 보이고 있다. 김민진 기자

"혼자 성공해서 입찰을 할 수 없다니, 이런 억울한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경남 거제시 둔덕면에 위치한 금조수산 정남수(64) 대표는 바다 위 가두리양식장을 바라보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양식장에는 성인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어린 쥐치가 원을 그리며 헤엄치고 있었다. 줄잡아 60만여 마리. 올해 초 발표된 경남도 시·군의 '2014년 시군별 어패류 방류계획'에 근거해 지난 석 달간 애지중지 키워낸 것들이다.

당초 거제시와 창원시, 고성군 등 3곳이 총 36만 5천 마리의 쥐치를 방류키로 하고 1억 9천800만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거제·창원·고성
쥐치 36만 마리 방류사업
거제 금조수산 양식 성공
다른 생산업체 4곳은 실패

창원·고성 "경쟁입찰해야"
수의계약 가능하나 거부
치어 절반 풀어줘야 할 판

정 대표를 포함해 도내 치어 생산업체 5곳이 이를 감안해 쥐치 치어 생산에 나섰다. 정 대표는 일반 양식장 공급량과 방류 사업량 등을 고려해 60만 마리를 목표로 잡았다. 그런데 방류 가능한 4㎝ 내외 크기로 키워내는데 성공한 곳은 정 대표뿐이었다.

정 대표는 치어의 경우 이송 거리가 멀면 폐사율이 높아져 지역 제한 입찰이 이뤄지는 만큼 3개 시군의 사업물량을 모두 낙찰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이내 물거품 됐다. 치어 방류가 국비 지원 사업이라 반드시 2명 이상이 참여하는 경쟁입찰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시군을 찾아 하소연을 해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경쟁 입찰이라 한 명이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행정 실무자들이 '규정 탓'만 하며 머뭇거리는 사이 쥐치 방류에 배정됐던 사업비는 다른 어종 사업비로 변경돼 버렸다.

정 대표는 "쥐치는 우럭이나 돔 같은 일반적인 양식 어종이 아니라 수요가 극히 제한적이다. 수십만 마리나 되는 것을 직접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갑갑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치어 생산을 위해 지난겨울부터 어미 쥐치를 단련시키고 월동시키는 등 투자한 비용이 7천만 원 상당에 달하지만 현재로선 기본 운영비조차 건지기 힘든 처지가 됐다.

결국 거제시가 나서 당초 계상된 예산의 절반인 4천440만 원이라도 수의계약을 통해 쥐치방류 사업에 집행키로 방침을 정했다.

거제시 관계자는 "회계과로부터 단독 입찰 등으로 2회 이상 유찰될 경우, 수의계약도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어민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절반 예산이라도 당초 계획대로 진행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창원시와 고성군은 별다른 고민 없이 이미 다른 어종으로 배분을 완료해 버렸다.

창원시 관계자는 "규정상 어쩔 수 없었다. 수의계약도 가능하지만 굳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현장에서도 쥐치보다는 소득에 보탬이되는 돔류나 볼락 등을 원해 선호 어종으로 바꿔 배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식업자 한 관계자는 "어민들은 죽어나는 데 일부 행정 실무자들은 천하태평이다. 방법이 있는데도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며 "또 다른 피해가 없도록 예외규정을 두든,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든 적극적인 보완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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