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세월호 1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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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세월호 참사 100일째. '숫자 100'은 '소망'과 '성취'를 뜻한다. 어머니의 간절한 백일기도에 자식은 성공으로 보답한다. 단군신화 속의 곰은 사람이 되고 싶어 동굴 속에서 백일을 견뎌냈다. 성취는 곧 '재출발'로 이어진다. 갓난아이의 백일잔치가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행사인 것처럼.

세월호 100일은 이처럼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전환점이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휑뎅그렁하다. 가족들의 애타는 소원이 담긴 기도에도 실종자 10명은 아직도 찬 바닷속 선실에 갇혀 있다. 특별법 제정은 정쟁에 휘말려 있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출항일은 아득히 멀다. 단식 농성 중인 유가족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다. 유병언은 변사체로 발견돼 실상이 미궁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 '소망'과 '성취'가 아닌 '절망'과 '상실'의 100일이 되어 버렸다. 이런 뒤틀린 모습은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나 다를 바 없다. 정부는 사고 발생 후 국가개조를 외치며 기세 좋게 나갔지만 제대로 된 결실을 찾아볼 수가 없다. 문제를 개선할 능력이 부족한지, 의지가 약한지, 아니면 굼뜬지 답답한 노릇이다.

이제 우리는 다른 의미의 '숫자 100'을 떠올려야 한다. 그건 '영원'이다. 백년가약(百年佳約)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평생을 같이 하겠다며 새끼손가락을 거는 일이다. 백겁(百劫)은 헤아릴 수 없는 매우 긴 시간이다. 그래서 24일은 온 국민이란 뜻을 가진 백성(百姓)이 "너희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며 약속하는 날이다.

전국 여러 곳에서 100일 맞이 준비로 분주하다. 이날 단원고 희생자 수인 '262송이 시네마 천국'이 상영된다. 종교계는 종단과 종파를 초월한 행사를 계획 중이다. 한국작가회의 소속 대표 시인 69명은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시집 출간에 동참했다. '네 눈물을 기억하라'는 주제로 추모공연도 열린다. 희생 학생들이 불쌍하게 죽은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꾼 아이들로 기억되길 바라며. 이준영 논설위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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