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차 불붙고, 매캐한 연기 가득 차도 안내방송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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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5시 41분께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시청역에 진입하던 노포동행 전동차의 에어컨에서 연기가 발생해 승객들이 철로를 따라 대피하고 있다. 부산소방안전본부 제공

지난달 10일 견인전동기 고장으로 운행 중 교대역에서 멈췄던 부산도시철도 1호선에서 이번엔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대피 안내방송 등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퇴근길 수백 명의 승객들이 10여 분간 불안에 떨어야 했다.

잦은 사고로 '사고철'이란 오명이 붙은 도시철도 1호선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퇴근길 아수라장 된 도시철도=17일 오후 5시 41분께 노포동 방면으로 가던 부산도시철도 1호선 2232호 전동차가 양정역을 출발한 지 1분여 만에 '쾅' 소리와 함께 전동차 위쪽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발생한 연기가 전동차 실내는 물론 양정역과 시청역 사이 구간을 메우면서 경찰과 소방서에는 '도시철도에 큰불이 난 것 같다'는 시민들의 신고가 잇따랐다.

어제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양정~시청 운행 중 화재
수백 명 아수라장 탈출
'사고철' 부실 대응 여전
노후 전동차 특단 대책 필요

그러나 기관사나 부산교통공사 측은 별다른 상황 안내나 대피 방송도 없이 전동차를 시청역으로 운행해 승객들이 불안에 떨어야 했다. 승객 이 모(45·여) 씨는 "양정역을 지나자마자 전동차 안에 연기가 들어와 승객들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며 "안내방송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전동차는 계속 움직였다"고 말했다.


     
화재가 발생하자 소방대원 180여 명이 현장에 출동해 진화 작업을 펼쳤으며, 화재는 10여 분 만인 오후 5시 53분께 진화됐다.

전동차는 시청역에 진입해 총 8량 중 6량만 승강장 정위치에 멈췄다. 나머지 2량은 승강장에 미처 닿지 못해 승객 100여 명이 시청역으로 대피했다. 이 과정에서 승객 강 모(20·여) 씨 등 9명이 연기를 흡입하거나 발목을 삐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늑장대응 부산교통공사, 상황 파악도 혼선=도시철도 1호선 양방향 운행은 이 때문에 1시간가량 중단된 뒤 오후 6시 55분부터 재개됐다. 하지만 양정역~시청역 사이의 매캐한 냄새가 가시지 않아 도시철도 이용객들이 한동안 불편을 겪어야 했다.

상황 발생부터 대피까지 부산교통공사의 대응은 허술하기만 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양정역 부근부터 연기가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전동차의 화재감지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기관사나 부산교통공사 관제실 역시 화재 발생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전동차가 시청역에 도착할 무렵에야 화재감지시스템이 작동해 전동차가 멈춰 섰다. 기관사는 그제야 대피 방송을 해 늑장·부실대응이란 비난을 자초했다.

사고 발생 후 부산교통공사는 정확한 화재 발생 지점 및 안내방송 시점 파악, 탑승자·부상자 파악에도 혼선을 빚었다. 게다가 사고 당시 승객 대피 장면이 찍힌 CCTV 화면조차 공개하지 않아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부산교통공사 관계자는 "4호 차의 주 퓨즈와 고속도회로차단기 사이 고압 회로의 과전류로 추진장치가 손상되면서 불이 난 것 같다"며 "1호선 전체 전동차의 고속도회로차단기를 점검하고, 추진장치 제어회로 개조 등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또다시 불거진 도시철도 노령화=사고가 발생한 전동차는 1994년에 도입된 노후 차량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전동차 노령화에 대한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산교통공사의 경제성 위주 정책도 사고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현재 1호선의 전동차는 총 360량. 이 중 186량이 1985~1988년에 도입됐다. 절반 이상이 25년이 넘는 노후 차량으로 분류된다.

전동차 노령화는 허술한 법률이 주 원인이다. 지난 1996년 도시철도법 개정으로 당초 15년이었던 전동차 수명이 25년으로 늘었고, 2009년 다시 15년을 추가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제가 풀리면서, 최대 40년까지 전동차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올해 초 철도안전법과 도시철도법 개정으로 내구연한 관련 규정은 삭제됐다. 따라서 5년마다 실시하는 '계속 사용 여부 평가'만 통과한다면, 전동차의 무기한 사용도 가능해졌다.

부산교통공사는 2년마다 전동차 부속품을 완전분해하는 '중간검수'를 한 뒤 부품을 교체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기존 전동차에서 쓴 부품을 재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신규 차량 구매가 이처럼 더딘 것은 결국 경제성 문제 때문. 부산교통공사는 노후 차량 교체비용이 3천억 원가량 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도시철도 전문가들은 "부채에 시달리는 부산교통공사로서는 경제적 효율성 위주의 정책을 펼 수밖에 없어 정부나 부산시 등의 재정지원 없이는 도시철도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은 쉽게 해소될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대식·김백상 기자 pro@busan.com

http://youtu.be/fi6L-p9gBW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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