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 갈등 어떻게 풀까, 대화·스킨십으로 '갑갑한 소통' 훌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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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내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을 푸는 첫 단추는 지속적인 의사소통이다. 한국어 실력보다 자녀와 대화하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 사진은 부산여성사회교육원의 다문화가정 교육 프로그램 장면. 부산여성사회교육원 제공

자녀를 키우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와 자녀 간에 갈등이 발생한다. 다문화가정 또한 다를 바 없다. 다만, 갈등의 양상이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여느 가정과 달리 한쪽 부모가 다른 나라 사람이어서다. 한국어 능력에서 비롯된 문제가 많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언어구사력이 늘지는 않을 터. 부모로선 속이 상하기 마련이다. 다문화가정 내 부모와 자녀 간에 흔하게 일어나는 갈등의 유형과 해법을 들어봤다. 부산여성사회교육원 석영미 교육위원이 도움을 줬다. 다문화가정이라면 이번 여름방학 때부터 한번 실천해 보자.


자녀들 언어·학업 문제 실망이 원망으로

■어떤 갈등 겪나


"아이들이 저보다 훨씬 말을 잘하죠. 제가 글을 써 놓고 이게 맞느냐고 물어보면 '엄마는 한국어도 안되고 베트남어도 안되느냐'며 짜증을 내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아이들이 절 무시해요. TV나 영화를 볼 때도 궁금한 게 생기면 아예 저를 찾지 않아요. 아빠에게만 묻죠. 자연히 아이들과의 대화가 줄어들어요."(A 씨)

비단 A 씨뿐만이 아니라 언어문제로 시작된 부모와 자녀 간 갈등은 그 사례가 적지 않다. 그나마 자녀가 초등학교 저학년생일 때는 형편이 조금 낫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자녀를 둔 다문화가정에선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말이 서툰 부모와 대화를 나누려 하지도 않는다. 부모는 부모대로 서운하고, 자녀는 또 그들대로 갑갑하다.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읽는 것은 괜찮은데 쓰는 것이 힘들어요. 아이가 숙제를 도와 달라고 내밀어도 제가 해 주기 어렵죠. 집안이 학원 보낼 형편도 안 되고. 아이 입장에선 제게 불만이 쌓이는 것 같아요. 저도 아이를 옆에 앉혀 놓고 공부를 가르치고 싶죠. 그렇게 못하니 다른 부모들이 부럽죠. 아이의 성적이 떨어져도 달리 방법이 없네요. 영어는 자신이 있어요. 아이가 중학교 들어가면 엄마 노릇을 할 수 있겠죠."(B 씨)

B 씨 사례는 언어 문제와 자녀의 학업 부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갈등이 누적되는 사례다. 공부에 흥미를 가지도록 책을 읽어 주려 해도 언어가 부담된다. 괜히 더듬거리며 읽어 주다간 있던 흥미도 달아날까 겁난다. 자녀는 숙제를 도와주지 못하는 부모에게 실망하기 쉽다. 거기다 숙제를 제대로 못한 채 학교에 가니 야단맞기 일쑤다. 자녀의 실망감은 원망으로 바뀌어 간다. 이뿐이 아니다. 다문화가정 부모의 경우 한국에서 몇 년을 살았다 해도 자녀 연령대에 필요한 학습 정보를 잘 모른다. 자신이 줄 정보가 없는 탓에 다른 한국인 학부모와 어울리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

"초등학교 고학년 딸이 있어요. 딸 친구들이 제가 일본인이란 걸 알게 된 후 딸을 놀렸나 봐요.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왜 엄마는 일본 사람이냐'고 심통 부리듯 따지더군요. 할 말이 없었어요. 그날 이후로 아이 신경질이 늘고 사소한 일을 두고도 저와 다퉈요."(C 씨)

C 씨는 자녀가 바깥에서 받은 차별 스트레스를 집안으로 끌어들이면서 갈등이 생긴 사례다. 다문화가정의 자녀 상당수는 자신의 엄마 혹은 아빠가 외국인이란 사실을 웬만해선 밝히지 않는다. 뒤따라올 사회적 편견을 눈치껏 알기 때문이다.


서툴러도 말문 닫지 말고 꾸준히 시도해야

■갈등 줄이는 방법은


한국어 실력보다는 자녀와의 대화 빈도가 중요하다. 석 교육위원의 조언이다. 한국어가 미숙하다고 대화를 기피하다 보면 결국 말문을 영영 닫는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선 부모가 자녀와 꾸준히 대화를 해 나가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러나 계속 얘기하다 보면 자녀가 엄마의 대화법에 익숙해지고 그 대화법을 이해하게 된다. 이때 한국인 배우자가 곁에서 지원사격을 하면 더 효과적이다. "엄마가 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네. 열심히 들으려고 하는 너도 참 보기 좋아" 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부모의 나라를 알려 나가는 작업은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가령 외국인이 엄마라고 하자. 자녀가 엄마 나라의 친척이나 동료들과 자주 만나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 자녀는 그 속에서 필리핀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베트남이 얼마나 강한 국가였는지를 배우게 된다. 그러다 보면 엄마 나라를 좋아하게 되고 자부심까지 생겨 친구들이 놀려도 당당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자녀가 부모 나라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학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모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클수록 아이의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하고 학업과 학교생활 적응력이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다.

평소 자녀와의 스킨십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자녀가 지쳐 보일 때 다가가서 살짝 안아주거나 목덜미를 가볍게 주물러만 줘도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을 느낀다. 스킨십도 소통이다. 온 가족이 함께 여가를 보내는 시간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외부 체험 활동에 같이 참여해도 좋고, 시간을 정해 놓고 자녀와 운동 삼아 산책하는 것도 괜찮다.

임태섭 기자 tslim@busan.com


■더 알고 싶으면…

부산여성사회교육원은 오는 29일부터 내달 28일까지 매주 화·목요일(오전 10시~오후 1시) 총 10회에 걸쳐 다문화가정 부모·자녀 관계증진 프로그램 '울퉁불퉁 소통교실'을 진행한다. 대상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다문화가정. 석 교육위원과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조은주 강사가 나와 '성격 유형 검사와 미술치료' '의사소통 기술 익히기'를 알려 준다. 오는 22일까지 선착순 마감. 051-802-6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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