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노후 원전 해체산업 메카로] ③ 준비되지 않은 원전 폐쇄 대혼란 예고
고리1호기 해체에 수십 년 걸려… "로드맵 마련 서둘러야"
국내 최초의 원전인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1호기는 오는 2017년 6월이면 수명이 끝난다.
하지만 이 해에 정부가 고리1호기에 대한 본격적인 해체작업에 들어가 몇 년 뒤 원전이 있던 땅을 본래 모습으로 복구해 지역 주민들에게 되돌려 줄 것으로 기대하면 오산이다.
원전 1기를 폐쇄해 해체하는 데 통상 15~60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원전 해체 경험이 전무하고 해체기술이 부족해 고리1호기를 해체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폐쇄 뒤 닥칠 상황 고민 부족
법령 미비·담당 기관 안 정해
해체 비용 1기당 6천억 이상
고준위 폐기물 갈 곳 없어
"12기 모두 수명 끝나가는데…"
또 원전 해체에는 기술적인 문제에 앞서 법률과 제도 준비 부족 등 사회적 문제도 산적해 있다.
그동안 고리1호기 폐쇄에 대한 찬반 논의만 치열했지 폐쇄 뒤 상황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지금부터 폐쇄를 위해 착실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2017년에는 고리1호기가 가동만 중지된 채 방치되는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준비 안 된 로드맵=원전 폐쇄가 곧바로 원전 해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즉시 해체'를 시작하더라도 5년 정도 준비기간을 거쳐야 한다. 본격적인 해체과정만 15년 정도가 소요된다. 원전은 방사능 노출 위험 등이 크고 폐기물량도 많아 30~60년가량 느리게 진행되는 '지연 해체'가 필요할 수도 있다.
현재 고리1호기가 몇 년에 걸쳐 어떤 방식으로 해체될지 짐작하기 어렵다. 해체를 위한 로드맵이 없기 때문이다. 또 관련법 등이 있어야 로드맵을 그릴 수 있지만, 법령마저 미비한 상황이다.
현행 원자력안전법 제28조를 보면, 원자력시설 해체와 관련해 해체계획서 제출과 승인, 해체상황 확인 및 점검 등 일반적인 내용만 규정돼 있다. 구체적인 하위 내용들이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이다.
승인기준, 제출시기 등 세부 규정이 미비하다. 특히 해체계획 조기 수립이나 주기적 갱신요건 등도 빠져있다. 이 때문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우리 정부에 "원자력시설 해체에 대한 규정과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폐쇄된 원전 관리와 해체를 어느 기관이 담당해야 할지도 정해진 바가 없다.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별도의 관련 부서를 만들지, 폐쇄된 원전 관리 및 해체를 주관하는 특별기관을 만들지도 결정해야 한다. 폐쇄 원전 관리 및 해체 과정에서도 사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안전관리 규정과 사고 책임에 관한 법령 정비도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법령 정비와 가이드라인 제시 작업을 이끌어갈 주체 선정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다만, 지난해 원전해체안전연구센터가 개소하고, 한수원 원전사후처리실을 신설하는 등의 움직임이 고작이었다.
■갈 곳 없는 고준위 폐기물=고리1호기가 폐쇄된 뒤 해체가 시작되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를 처분해야 한다. 원자로를 폐쇄하는 이 작업은 원자로 냉각(4~5년)을 거쳐 제염과 해체 순으로 절차가 진행된다. 사용 및 보관 중인 핵연료봉을 빼낸 뒤 처리하는 작업이다.
문제는 이렇게 빼낸 사용후 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이다. 콘크리트 창고 등에 '중간 저장'을 한 뒤 50년 가까이 보관했다가 최종 처리를 해야 하는데, 중간 저장시설이 곧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이다. 이 처리장은 현재 부지 선정도 안 된 상태다.
2003년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유치하려던 전북 부안에서 주민들간에 심각한 갈등이 장기간 벌어진 바 있어 향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립은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고리1호기의 경우 원자로와 임시 저장된 사용후 핵연료는 놔둔 채 보조시설만 해체하는 '부분 폐로' 가능성도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등도 고리1호기 부지 내에 상당 기간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원전 폐쇄 뒤에도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크게 부족한 해체비용=산업통상자원부는 원전 해체비용을 1기당 6천33억 원으로 추정하고, 한수원은 원전 사후처리 복구비용으로 이를 충당하고 있다. 이 충당금은 부채 형태로 적립되고 있다. 다만, 현금으로 적립되지 않고 장부상의 부채로만 기록돼 있는 실정이다.
고리1호기가 폐쇄 후 해체까지 6천33억 원으로 가능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드물다. 준비 부족 등으로 해체기간이 연장되고, 해체작업에 다양한 변수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용후 핵연료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비용을 포함할 경우, 총 비용은 원전 1기당 1조 원 이상으로 대폭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고리1호기가 가동되는 기간에는 정부가 가동에 따른 지역민 지원비 등을 책정해 집행했으나 폐쇄 뒤의 주민 지원금은 책정돼 있지 않은 점도 문제이다.
원전 폐쇄 후에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해체과정의 사고 위험성에 늘 노출돼 있어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한 해체비용 조달계획도 필요한 상황이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최수영 사무국장은 "원전 폐쇄 뒤의 상황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어 지금 이대로라면 여러 가지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2020년대 말까지 모두 원전 12기의 수명이 끝나기 때문에 고리1호기를 계기로 미리 착실하게 준비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다"고 지적했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