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의 새벽 풍경] 쉼과 일상 사이 또 하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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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월드컵 시즌이니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보통의 직장인들이 저녁 회식에 '2차'를 간단히 했다고 하더라도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자정 혹은 새벽 1시. 그렇다면 불과 3시간 후의 세상은 '잠' 이외에 상상하기 힘든 거 아닐까? 하지만 결론은 아주 좋았다.

이른 새벽에 산책을 나가면 아직 채 날이 밝지 않아 어둡다. 손전등이나 랜턴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가자. 손전등을 들고 다니면 어두운 길에서 차량 등이 보행자를 미리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장마철은 길이 미끄럽다. 특히 어둑어둑한 길에서는 주의해야 한다. 등산용 스틱을 가지고 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 보통 운동시간이 2시간을 넘지 않으므로 특별히 간식을 챙겨갈 필요는 없겠다. 다만, 물 한 병 정도는 챙겨 가는 것이 좋겠다.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방풍 옷을 여벌로 가지고 가는 것도 괜찮다. 다만, 이렇게 자잘한 물건을 가지고 갈 때는 작은 배낭을 가져가자. 걸을 때 손은 늘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야간과 달리 새벽 산책은 곧 어둠이 가시기는 하나 치안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혼자보다 둘이 낫다. 좋은 풍경도 좋은 사람과 같이 즐기면 더 황홀하다. 이재희 기자

송상현광장

어둠과 빛 사이에

송상현광장은 도심 속에 있어 심신이 지친 사람이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이른 새벽 푸른 잔디가 융단처럼 깔린 길을 시민들이 걷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주차할 곳을 찾다가 용케 빈자리를 발견했다. 송상현광장 주변은 아직 정비가 다 이뤄지지 않아 공터가 있었다. 도로와 도로 사이에 섬처럼 존재하는 광장에 가기 위해선 횡단보도를 찾아야 했다. 한참을 걸으니 신호등이 설치된 횡단보도에 이른다.

광장의 잔디는 어둠 속에서도 푸른 빛을 띠었다. 잎이 무성한 메타세쿼이아가 열병식을 했다. 새벽 시간에는 실개천을 가동하지 않았다. 그래도 물 흐르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둠 속에서 뭔가 희끗한 게 보였다. 도심 빌딩의 간판 아래로 금강소나무가 줄지어 섰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사람들이다. 서로 어깨와 머리를 기대고 앉은 연인들이다. 저들은 어째서 이 시각에 저기에 앉아 있을까.

문화광장은 넓다. 살짝 돌아서서 온 길을 되돌아 갔다. 이번에는 우측 산책로다. 그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풍경보다 먼저 포착됐다. 한 할아버지가 뭔가를 비닐봉지에 주워 담고 있었다. 얼핏 봐도 맥주캔과 커피캔이다. 주변에는 간단한 술자리를 즐긴 듯한 흔적이 꽤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 시간에 나오면 이런 재활용품들이 꼭 있다고 말했다. "많이 나옵니까?" "아니, 별로. 그냥 운동 삼아 하는 거지, 뭐."

저기 멀리서 나이가 지긋한 여성이 걸어 왔다. 인터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보조를 맞춰 걸으며 물었다. "아침 운동을 나오셨나 봅니다. 어디서 오셨죠?" 그는 힐끗 쳐다보더니 "운동하러 왔다"며 간단히 답했다. 2년 전 뇌졸중을 앓아 재활훈련을 하고 있는데, 집이 마침 송상현광장과 가까워 가끔 새벽에 나온다고 했다. 이름과 나이를 물으니 "그런 것을 왜 묻느냐. 작업 거는 것을 아니고"라며 정색했다. 허걱~. 아주머니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우리 아저씨도 곧 나올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네~ 운동 잘 하세요.

부산시민공원

새벽을 걷는 사람들
부산시민공원 새벽 산책은 만개한 꽃들이 뿜어내는 향기와 다양한 수목들이 주는 녹색의 향연을 즐기면서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어 더욱 좋다. 김경현 기자 view@
1972년 4월 13일자 한 신문에 시민들의 새벽 산책을 장려하기 위해 창경원(궁)을 새벽 4시에 개방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42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부산시민공원은 이보다 1시간이나 늦은 새벽 5시에 개장한다. 물론 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입장을 그때부터 허락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요즘처럼 날이 일찍 밝는 계절에는 개장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기자가 찾은 날도 새벽 4시가 조금 지나 어둠이 거의 걷혔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원 주변에 있었다. 그중 일부는 개장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슬쩍 공원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공원 한쪽의 운동기구가 있는 곳에서 박경현(75) 씨를 만났다. 그는 사진을 찍는 취재진을 보고 말을 걸어 왔다. "촬영 중이네. 취재하나요?" 그렇다고 하니 자신은 시청 행정동우회(퇴직공무원 단체)에 있는데, 거의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이곳으로 운동을 하러 나온다고 답했다. 그의 옆에서 기구를 이용하던 배청순(57) 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공원 입구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매일 풀을 뽑아요. 시민공원이니 시민인 우리가 잘 챙겨야지요." 그는 한 달에 한 차례라도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스스로 잡초를 뽑고 쓰레기를 줍는 행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즉석에서 제안했다. 아동 캐릭터 조형물이 있는 곳에 이르니 7세의 권영윤 양이 외할아버지와 함께 산책하고 있었다. 외할아버지인 최외용(64) 씨는 "영윤이가 어쩐 일인지 오늘은 5시에 일어나더라고. 그네를 타고 싶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영윤이가 타는 그네는 하나뿐이라서 낮에는 20분 이상 줄을 서야 한다는 게 최 씨의 설명이었다.

가시거리가 길어지면서 사람들이 불어났다. 공원 산책로를 걷는 워킹족들은 물살을 따라 유영하는 버들치처럼 한 방향으로 달렸다. 어디선가 짙은 여인의 향기가 났다. 치자꽃 냄새였다.

이기대공원

적요한 새벽 바다

새벽의 이기대공원 해안길은 찾는 이가 적어 고요한 바다를 온전하게 즐길 수 있다. 멀리 광안대교와 해운대 고층 아파트들도 희미하게 보인다. 이재희 기자
이기대 공원 입구 주차장에는 단 한 대의 차도 없었다. 텅 빈 주차장에 주차한 뒤 희미한 가로등불 아래에서 길을 찾았다. 이기대 입구에 도착해도 주변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때 얼굴을 막는 것이 있어 화들짝 놀랐다. 거미줄이었다. 아침에 거미줄을 보면 날씨가 맑다고 했는데, 다행히 비는 오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해운대'에 나왔던 바로 그 자리에 섰다. 형식과 희미가 광안대교 불빛을 배경으로 '이기대가 뭔 뜻이냐'고 물으며 데이트를 즐기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의기 두 명이 적장을 껴안고 이곳에서 투신한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풍경은 적요했다.

산책로를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여명이 밝아 오면서 햇살이 비친다. 나리꽃이 바다를 향해 꽃잎을 열었다. 꽃잎에 달린 청초한 물방울은 새벽에만 볼 수 있다. 치마바위 쪽으로 계속 걸었다. 배 한 척이 출렁이는 바다를 가로질렀다. 그 순간 경이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하루종일 흐리고 가끔 비라고 하더니 이곳의 하늘은 지금 활짝 열렸다.

산책로에는 인동초꽃과 원추리꽃, 갯수국이 폈다. 조금 더 걸으니 아무도 손 대지 않은 듯한 옹달샘이 하나 나왔다. 도로에 올라서니 택시가 보였다. 택시기사는 "좋은 공기를 마시고 퇴근하려고 왔다"며 웃었다. 공원 입구에는 또다른 택시기사가 있었다. 여성이었다. "운동하러 오셨나요?" "대기하고 있어요." "예?" "손님 대기중이라니까." 뭔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니 아래쪽에서 여성 한 분이 톳 한 줌을 쥐고 올라왔다. "손님이 오셨네. 가야겠네요." 새벽 바다를 보러 온 손님을 기다리는 중인 모양이었다.

날이 밝으니 조깅복 차림의 사람들이 하나둘 보였다. 아직은 오전 5시 30분. 산책을 다 마쳐도 아침 시간이 넉넉했다. 오륙도를 구경하고도 출근하는데 시간이 많이 남겠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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