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탈출] 청송 계곡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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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놀던 계곡… 산빛도 물빛도 돌빛도 고와라

백석탄은 한 폭 그림이다. 신선이 놀았을, 속되지 않은 기암괴석이 객의 발을 붙든다. '청송 일경'으로 불렸던 신성계곡의 절정도 백석탄이다.

청송은 첩첩하다. 사방이 높은 재로 둘러싸였다. 들어감도 나옴도 아득하다. 군지(郡誌)는 그 옛날 버려졌던 산하라 적었다. 청송은 창창하다. 손때 덜 탄 숲이 빽빽하다. 녹색의 빈틈이 없는 땅에도 시련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참나무가 뽑혔고, 1960년대엔 소나무가 잘려 나갔다. 무참한 톱질은 1970년대 중반을 넘어서야 진정됐다. 청송은 기기하다. 기암괴석이 도처에 널렸다. 화산과 비바람이 조화 부린 암석은 도무지 속된 땅의 것이 아니다. 덕분에 터무니없는 전설이 그 땅에선 사실로 떠돌아다닌다.

그리고 청송은 청청하다. 보현산과 주왕산이 맑은 물을 내리며 비경을 펼쳐 놓는다. 좌신성 우절골. 둘을 일러 '청송 일경'이라 했고, '작은 주왕산'이라 했다. 골짝물은 수천 년 그래왔듯 흘러갔고 그저 흘러온다. 유유했다 여울지는 계곡에서 세상살이는 참으로 허허롭다. 관수세심(觀水洗心). 흐르는 물 보며 마음을 씻다. 여름이 완연한 날, 봄 진 자리에 열매가 제 색깔대로 익어갔다.


■신성계곡 & 백석탄

남쪽 보현산에서 발원한 길안천은 바위 만나 갈라지고 합쳐지고 굽이져 신성계곡을 이룬다. 그 길이는 상류 방호정에서 하류 백석탄까지 약 15㎞. 얼마 전 주왕산과 더불어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바로 옆으로 차도가 달려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신성계곡 휘감아 도는 붉은 절벽 '장관'
도처에 널린, 신비롭고 기이한 기암괴석
주왕산 속살 '절골'엔 원시림 고스란히
맑은 물소리 음악 삼아, 숲 풍경 그림 삼아…
'별유천지비인간'이 이곳이 아닐런가


신성계곡 물줄기인 길안천은 거꾸로 흐른다. 아니, 그렇게 여겨진다. 지형 탓이다. 통상 물줄기는 북에서 남으로 흘러야 한다. 그런데 여기선 남에서 북으로 향한다. 청송의 해발고도가 인접 땅보다 높고 보현산은 더 높아서다. 착각 일으키는 물줄기는 안동 임하댐에 이르러, 그제야 남으로 흘러간다.

벼랑에 걸터앉은 방호정.
방호정은 절벽 위 정자다. 그러나 아찔한 느낌은 전혀 없다. 1619년 산림처사인 방호 조준도가 건립했다. 모친 삼년상 치른 조준도는 방치된 옛 정자를 사들여 거기에 새 건물을 올렸다. 뒷산 모친 묘소가 잘 보이는 자리였다. 사친당이라 호명한 조준도는 조석으로 문안 올려 효를 실천했다. 건물로 부른 사모곡이다. 훗날 방호정으로 개명됐다.

검붉은 벼랑에 걸터앉은 방호정 아래 길안천은 무심히 흐른다. 한 폭 잘 그린 산수화다. 그러나 쉬리가 살았던 길안천은 탁했다. 비가 적었던 탓이다. "장마철 지나면 달라질 겁니다." 청송지질공원 장연실 해설사 설명이다. 큰물이 한차례 강바닥을 뒤집고 더러운 것을 쓸고 가야 맑아진다. 8월은 지나야겠다.

방호정 가는 철교가 눈에 거슬렸다. 원래는 운치가 쏠쏠한 출렁다리였다. 2003년 태풍 매미로 무너져 대체됐다. 철교가 동호정과 주변 경치를 눌렀다. 동호정이 자연이라면 철교는 생뚱맞은 인공물일 터. 조화를 깨버린 섣부른 손댐이 안타깝다.

두부판 절리가 뚜렷한 적벽.
길안천 좇아 북쪽으로 거슬러 오르면 적벽에 닿는다. 길안천을 두고 이쪽으로 개망초꽃이 풀밭에서 하늘거리고 저쪽으로 적벽이 당당하게 섰다. 다슬기 채집하는 사람도 꽤 보인다. 청송에서 다슬기는 골부리다. 이 일대 골부리국은 깔끔하고 시원하다.

적벽은 그 색이 붉어 지어진 이름이다. 자암으로, 혹은 붉은 덤으로 통한다. 수십 척 절벽에 두부판 절리가 뚜렷하다. 해 질녘 빛이 불그스름하게 벽을 물들일 때가 장관이란다. 문화해설사 최인서 씨 말이다. 적벽 하단부는 깊게 팼다. 풍화에 깎이고 강물에 쓸려 침식이 이뤄져서다. 팸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신성계곡의 절정은 백석탄에서 맞는다. 백석탄(白石灘). 하얀 돌 여울. 화산 활동의 부산물이다. 7천만 년 전 화산재가 날렸고 용암이 분출했다. 응회암은 세월 거치며 단단한 놈만 남았다. 그 암석이 쪼개져 백석탄을 이뤘다. 하얗고 매끈한 암석 위에 구덩이가 팼다. 세월이 만든 생채기다. 지질 용어로 돌개구멍이다.

백석탄은 세상 풍경과 거리가 멀다. 구름 조각을 떼내 계곡물에 툭툭 던져놨다. 신선 놀던 바위가 이럴 테다. 백석탄 여울은 가물어도 세찼다. 세상 소리를, 새 울음을 덮었다. 백석탄 정취를 두고 방호정 주인 조준도는 속세 격리시킨 천상암이라 했고, 선조 때 고두곡이란 이는 백석탄 일대를 고와동이라 했다. 돌빛이, 물빛이, 산빛이 고와서였다. '고와'는 지금도 마을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

백석탄변 마을 정자는 어김없이 바람이 좋다. 바람 드는 자리에 정자가 앉았는지, 정자 앉아 바람이 드는지, 세상 모든 정자엔 바람이 머문다. '이 몸이 신선인 듯 신선이 이 몸인 듯/ …/ 좌우에 층암절벽 면면이 기이하다/ 별유천지 비인간은 이곳이 아닐런가.' 작자와 연대 미상인 한 규방가사는 이렇게 주왕산을 예찬했다. 신성계곡 또한 그러하다.


■절골계곡 & 주산지

주왕산의 속살로 불리는 절골계곡은 감춰져 왔다. 아는 이가 드물었다. 세상 밖을 꿈꾸는 자만 제 품으로 받아들여 원시림을 선사했다. 청송에선 절골계곡 안 보고 주왕산 봤다 하지 말란다.

주왕산의 속살이라는 절골계곡.
절골계곡은 절 있는 골짜기라 절골이다. 작명 배경인 절은 오래 전 폐사돼 터만 남았다. 옛날엔 계곡변으로 두서너 집이 점 박혀 살았다. 197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의 일이다. 이후 사람이 끊겼고 자연이 그대로 보존됐다.

들머리부터 물소리가 시원하다. 양옆 바위가 웅장하다. 화산 흔적 뚜렷한 바위는 검초록 이끼로 세월을 입었다. 이끼 꽃은 피어도 너무 피었다. 바위 틈새 비집고, 척박함 가리지 않는 회양목이 자리했다. 위태롭게 흔들리며 뿌리 내렸을 게다. 수달래와 송이와 더불어 청송 4대 명물로 꼽히는 그 이끼고, 그 회양목이다.

절곡계곡은 오솔길 걷는 재미가 있다. 제멋대로 생긴 자연석길인가 하면 이내 나무 덱(deck)길이 나타나고, 바위길이 깔린다. 그 길 따라 낯선 사람은 친구가 되고, 친구는 연인이 된다. 삿됨 없는 길에서 마음이 넓어진다. 공자는 길을 사람이 넓히지 길이 사람을 넓히지 않는다 적었다. 절골계곡 오솔길은 '공자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

가랑이처럼 갈린 골짜기는 이쪽과 저쪽이 적당하게 벌어졌다. 무심한 듯 세심한 그 간격이 포근하다. 그래서 전체 질감이 따뜻하다. 여울물엔 빛이 너울댔다. 계곡 바닥 돌은 제 몸을 굴리고 굴려 몽돌이 되었다. '햇빛이 부서져서 그물눈으로/ 일렁거리는 물 속/ 고운 빛깔로 눈 깜박이는 돌빛'에 시간을 뺏겼다. 잠자리가 골바람에 더운 줄 모르고 열심히 날개질이다. 여름이 흘러간다.

절골계곡 근처 주산지로 길을 잡았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후 길이 넓어졌다. 그 전엔 경운기 오가던 농길이었다. 2003년 무렵의 얘기다. 주산지는 1720년 조성됐다. 아랫마을 가뭄을 막기 위한 장치였다. 한쪽에 빗돌이 섰는데, 축조 당시 애썼던 이의 공덕비다. 주산지는 지난해 11월 보수됐다. 능수버들과 왕버들 잎이 말라서였다. 올 초 폭설로 물이 채워졌으나 최근엔 농번기인데다 다소 가문 탓에 안쪽이 바닥을 드러냈다.

주산지에서는 침묵을 배운다. 봄꽃이 소리 없이 피고 지고, 물안개가 소리없이 왔다 흩어진다. 새벽 풍경도 침묵해야 황홀하고,칠월 햇볕도 침묵으로 더 따갑다. 뿌리 허옇게 드러낸 왕버들 이파리만 치마끝단 마냥 골바람에 살랑대는 침묵. 문득 그리워질 그 침묵은 무겁고 깊다. 글·사진=임태섭 기자 tslim@busan.com

TIP

■교통


부산∼신성계곡(청송군)은 자가용으로 3시간 안팎 거리다. 경부고속도로 영천IC를 나오거나, 대구부산고속도로와 익산포항고속도로를 이어가다 북영천IC에서 내리면 35번 국도를 연결해 신성계곡에 이른다. 신성계곡(방호정)∼절골계곡은 50분 걸리는데, 청송자연휴양림~주왕산휴식소~이전사거리(좌회전) 순.

송소고택 전경.
대중교통:부산동부시외버스터미널(1688-9969)에서 청송시외버스터미널(054-873-2036)까지 3시간 걸림. 오전 7시 40분, 오후 1시 20분 출발. 요금 1만 9천100원. 청송 읍내에서 신성계곡과 절골계곡으로 가는 버스는 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택시를 타는 게 낫다. 택시비는 대략 8천∼1만 원 안팎. 송소고택은 청송시외버스터미널에서 덕천 방면 버스로 10분 걸린다. 하루 6차례(오전 7시~오후 6시 10분). 요금 1천200원.

■둘러볼 곳

송소고택(054-874-6556)은 '덕천동 심부자댁'으로 불린다. 1880년 청송 심씨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건립. 청송 심씨는 조선조 500년간 왕비 4명과 정승 13명을 배출한 명문가로 청송이 본향이다. 심처대는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렸다. 경주 최부자와 함께 영남 대부호로 명성 높았다. 송소고택은 2002년 고택 체험시설로 개방. 큰사랑채 앞마당 회양목도 유명하다. 수령이 300년을 넘겼는데, 코를 대면 복숭아 향이 살짝 난다. 큰사랑채와 별채를 잇는 중문을 여닫을 때 끼이익 거리는 소리가 정겹다. 1박 5만∼15만 원.

문화유산 해설은 청송군청 문화관광과(054-870-6247)에 신청하면 된다.

■먹거리

'청맥식당'(청송군 청송읍)의 청국장이 먹을 만하다. 1인분 7천 원. 밑반찬은 그날 만들어 그날 소비한다. 골부리국도 판다. 054-874-8300. 임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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