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종의 해운대, 그 태양과 모래] 1. 바다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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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바다에는 높은 파도가 일고 있었다. 광포하게 울부짖으며 높이 치솟은 파도는 무서운 기세로 해변으로 밀려와서는 사정없이 모래밭을 덮쳤다가 형체도 없이 흩어져 버리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태풍이 남해안 일대를 막 휩쓸고 지나간 뒤였고, 해안에는 아직 비가 뿌리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쓴 채 태풍에 무참하게 찢기고 짓이겨진 해운대 바닷가를 따라 천천히 동백섬 쪽으로 걸어갔다. 바람과 파도에 밀린 모래는 호안 도로를 뒤덮고 있었고, 호안 도로 뒤쪽의 소나무 숲은 뿌리까지 드러낸 채 뒤집혀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두세 시쯤이면 나는 언제나 해운대 바닷가를 산책하곤 했다. 말이 산책이지 한쪽 다리를 절고 있기 때문에 걸음걸이가 몹시 느렸고, 그러다 보니 별로 운동이 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운동이 되든 안 되든 그런 것 하고는 상관없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온몸에 받으며 맨발로 젖은 모래를 밟으며 걷는 기분이란 그 무엇보다도 상쾌했다.

해운대 바닷가에 세워진 105층짜리 리조트 건물은
중간 부분이 꺾여 있었다
꺾여 들어간 부분은 흉측하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끔찍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부산을 떨고 있었다


동백섬을 가로막고 있는 J호텔 가까이 이르자 나는 발에 달라붙은 모래를 대충 털고 호안 도로 위로 올라선 다음 호텔 후문 쪽으로 다가갔다.

호텔 안은 휑한 느낌이 들 정도로 한산해 보였다. 바다가 잘 보이는 바 안으로 들어가 맥주 한 잔을 시켜 놓고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대형 창을 통해 광란하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비가 오고 있는데도 집채 더미 같은 파도를 구경하기 위해 꽤 많은 사람이 바닷가에 나와 있었다.

그런데 맥주 한 잔을 다 비우고 멍하니 앉아 있을 때였다. 갑자기 탁자가 심하게 흔들렸고, 그 바람에 맥주잔이 밑으로 굴러떨어져 박살이 났다. 다른 탁자 위에 있는 것들도 굴러떨어졌고, 여기저기서 여자들의 비명도 들려왔다. 나는 직감적으로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몸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탁자를 움켜잡으면서 상체를 웅크렸다.

"지진이에요! 조심하세요!"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또 한 차례의 강한 충격에 나는 바닥으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나는 몸을 툭툭 털면서 일어서려다가 다시 한 번 나가떨어졌다. 머리를 심하게 부딪치는 바람에 의식이 몽롱해지면서도 이건 보통 지진이 아닌데 하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 본 지진하고는 그 정도가 확연히 다른 강력한 지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웨이터가 뛰어와 나를 부축해 일으켜 주는 바람에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의자와 탁자들은 한쪽으로 처박혀 있거나 쓰러져 있었고, 깨진 컵과 재떨이 조각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안쪽은 더 엉망이었다. 장식장에 놓여 있던 그릇들과 예쁜 소품들은 모두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선반에 가득 놓여 있던 비싼 양주병들도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져 내렸는지 한쪽 바닥을 덮치듯 점령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더 놀라운 광경이 나타났다.

젊은 여자 손님 하나가 바깥쪽을 멀리 가리키면서 일행으로 보이는 같은 또래의 여자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어머머, 저기 좀 봐! 아파트가 기울어졌어!"

"어디 말이야?!"

"저기! 달맞이언덕 말이야!"

나는 놀라서 달맞이언덕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괴이한 광경을 보고는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어머머, 정말이네! 저거 정말 기울어진 거 맞아?"

실내에 있던 사람들은 이제 모두 창가로 다가서서 놀란 눈으로 달맞이언덕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기우뚱하니 한쪽으로 기울어진 아파트를 보고 그것을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는 듯 웅성거리고 있었다.

달맞이언덕 언덕 위에는 최근에 새로 완공된 고층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 있었는데, 그 가운데 두 동이 기우뚱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잘못 본 것 같아 두 눈을 부릅뜨고 한참 동안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랫부분은 안개에 싸여 있었고 위쪽부분만이 안개 위로 기우뚱하게 솟아 있었기 때문에 마치 안개가 장난을 부려 시각을 교란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현대 전위미술의 환영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안개의 장난도, 전위미술의 환영도 아닌, 겁도 없이 언덕 위에다 마구잡이로 수십 층씩 쌓아 올린 아파트 건물이 지진에 견디지 못하고 마치 피사의 사탑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분명했다. 기울어지지 않은 다른 건물들과 비교해 볼 때 그 기울어진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안개는, 지진 같은 것은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라는 듯 딴청을 부리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언덕을 휘감고 있었다. 적어도 소용돌이치거나 놀라서 도망치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안개는 눈 하나 까닥하지 않은 채 여전히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안개란 놈이 그렇게 무신경하고 냉정한 놈일 줄은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어떡해? 금방 무너질 것 같아!"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떡하지?"

여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여자들이 걱정한 대로 기울어진 건물들은 금방이라도 폭삭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았다.

놀라운 일은 그 뒤에도 연속해서 일어났는데, 조금 후 그때까지 바다 안개에 가려져 있던 105층짜리 리조트 건물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 괴이한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다. 나는 좀 더 가까이서 그것을 보려고 호텔 밖으로 허둥지둥 나갔다

해운대 바닷가에 세워진 105층짜리 리조트 건물은 중간 부분이 꺾여 있었다. 꺾여 들어간 부분은 흉측하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어느새 그 끔찍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부산을 떨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 광경에 나는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으로 한참 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멍청하게 서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귀에다 갖다 댔다.

"괜찮으세요?"

카페 '죄와 벌' 여주인인 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요. 아파트가 기울어졌던데 그쪽은 어때요?"

"카페는 괜찮아요. 저도 다친 데 없어요. 지금 어디 계세요?"

"해운대 바닷가에 있는데 105층짜리 리조트 건물 중간 부분이 꺾어졌어요. 기막힌 광경이니까 내려와서 좀 보라고요."

"이야기 들었어요. 오리온시티에 있는 아파트 건물 하나도 기울어졌다고 하던데요."

"그래?"

"전 지금 갈 수 없어요. 실내가 엉망이 돼서 치워야 해요. 이게 무슨 변이죠? 세상의 종말이 다가온 것 같아요."

포의 목소리는 사뭇 떨리고 있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 오리온시티 쪽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어 올라간 초고층 아파트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찬 오리온시티는 그 중간 부분이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그 안개 사이로 가장 높아 보이는 아파트 건물 하나가 기우뚱하니 기울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날따라 안개는 달맞이언덕의 위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바닷가 쪽으로 퍼져 내려가 동백섬을 지나 오리온시티 일대까지 뒤덮고 있었다.

경찰 병력이 도착해서 105층짜리 리조트 건물 일대 통행을 차단하는 것을 보고 나는 발길을 돌렸다.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안개 위로 꺾어진 부분을 내보이고 있는 리조트 건물이 마치 무슨 거대한 괴물처럼 보였다.

이 세기적인 장면을 놓칠세라 바닷가에는 이미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 기울어지고 꺾어진 건물들을 찍어 대느라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높은 건물들이 기울어지고 꺾어졌으니 그것은 분명 충격적이고 놀라운 모습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 비극적인 장면이 사람들을 매혹시킨 것은 그것이 짙은 안개 위에 마치 신기루처럼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비극적이면서도 신비로운 환영 때문에 사람들은 다투어 사진을 찍어 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 더 자극적이고 괴이한 광경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발길은 오리온시티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80층 높이의 기울어진 아파트 건물 가까이 갔을 때 그 일대에도 경찰이 배치되어 통행을 막고 있었다. 그 아파트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거나 울부짖거나 하고 있었다. 건물 안에는 아직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텔레비전 방송에는 이미 스폿 뉴스로 지진 피해 상황이 보도되고 있었고, 특히 기울어지고 꺾어진 초고층 건물들의 흉하고 위태위태한 모습들이 집중적으로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기 전에 전 세계 방송사들이 그 장면들을 다투어 내보내고 있었다. 전 세계 특파원들이 그 괴기스러운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겸 현지 방송을 위해 부산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진도 7.5에 가까운 지진은 해운대에서 송정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두 차례에 걸쳐 수분 동안 계속되었는데 주로 수십 층에 달하는 고층 건물에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힌 것 같았다. 강한 지진이 별로 없는 한국에서는 내진 설계에 따라 지은 건물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고층 건물들이 충격에 견디지 못하고 기울어지고 꺾어진 것은 이미 예견된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오갈 데가 없어진 수천 세대의 주민들은 날벼락을 맞은 기분으로 이곳저곳에 분산 수용되어 절망감과 분노에 차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분노한 것은 건물이 내진 설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또한 기울어지거나 꺾어진 건물들은 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폭파해서 해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들을 절망케 했다.

그 다음 날 나는 방송국에서 마련한 긴급 좌담 프로에 나가게 되었다. 그것은 지진 피해에 속수무책인 무책임과 무대책을 점검하고 그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대학교수 두 명과 고위직 공무원 한 명, 그리고 피해주민 한 명과 나, 이렇게 다섯 명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두가 뻔한 이야기들만 늘어놓고 있었다. 나는 기다리고 있다가 내 차례가 오자 분노에 차서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이번 피해는 건설업자, 주민들, 행정당국, 이렇게 셋이서 공모해서 저지른 범죄입니다."

작가라는 자가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는 듯 그들은 의혹에 찬 눈으로 일제히 나를 응시했다.

"달맞이언덕 위에 5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를 짓게 된 경위부터 살펴봅시다. 그 높은 언덕배기에다 그렇게 높은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 자체가 상식에 어긋나는 짓이었습니다. 애초에 아무리 높아도 20층 이하로 밖에 지을 수 없도록 규제가 되어 있었는데 재개발 주민들이 넓은 평수를 차지하기 위해 시 측에 규제를 풀고 50층 이상까지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고 연일 시청에 몰려가 데모를 하고, 건설사 측은 고층으로 지을수록 이익이 많이 남으니까 당연히 높이 지어야 한다고 옆에서 부추기고…. 이런 줄다리기가 얼마쯤 계속되는 가운데 시 측은 못 이기는 체하고 마침내 규제를 풀었고, 그래서 그 높은 언덕배기에 흉물스럽게도 50층이 넘는 높은 아파트 건물들이 세워지게 된 겁니다. 시 측은 양식 있는 시민단체들의 반대를 감안해서 처음부터 허가를 해 줄 수는 없고 해서 슬슬 시간을 끌다가 결국 슬그머니 허가를 내준 것입니다. 결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주민과 건설사, 그리고 행정당국, 이 3박자가 서로 맞아 떨어져서 생겨난 것이 바로 달맞이언덕 위의 고층 아파트인 셈이고, 그것은 바로 인간 탐욕의 상징물이 되어 버린 셈입니다. 무엇보다도 고층 아파트 때문에 달맞이언덕의 아름다움이 사라진 것이 애석합니다."

교수들은 얼굴을 붉혔고, 주민 대표는 나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항의했고, 고위 공무원은 얼굴 근육을 씰룩거리면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나서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달맞이언덕은 땅을 파보면 알겠지만 바위 하나 없는 흙뿐인 버석버석한 땅입니다. 거기다가 내진 설계도 없이 고층 건물을 지은 것입니다. 내진 설계를 했다고 하지만 이번에 그것은 거짓말로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진을 이웃 일본에나 있는 것으로 여겨 왔고, 그래서 경험이 전무합니다. 따라서 대비책이 전혀 없었고, 내진 설계 같은 것은 그저 형식적으로 흉내나 내는 정도로 그쳤습니다. 그 결과 오늘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부슬부슬한 땅 위에다 내진 설계도 없이 고층 아파트를 지었습니까? 바닷가에 지은 105층짜리 리조트 건물을 보면 더 기가 막힙니다. 거기다가 105층짜리 건물을 짓다니, 정신병자가 아니고는 그런 짓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리온시티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닷가에다 80층이 넘는 아파트를, 그것도 내진 설계도 없이 짓다니, 제정신을 가지고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거기에는 20층 정도로 500세대를 수용키로 계획했었고, 나머지 땅에는 공원을 조성키로 했는데 달맞이언덕처럼 슬그머니 계획을 바꾸어 80층 높이로 허가가 나고 공원도 없어지고 해서 3천 세대로 확장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오늘의 비극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누구한테 이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주민들은 업자에게 보상하라고 요구하고 시 쪽에도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탐욕의 바벨탑을 쌓아 올린 책임은 주민들과 업자, 그리고 시 당국에 똑같이 있다고 봅니다. 이들 셋에게 책임이 있고, 이들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민대표가 소리를 지르면서 발딱 일어섰지만,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방청석에서는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날 밤 내 휴대폰에는 불이 이는 것 같았다.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쉬지 않고 전화가 걸려왔는데 하나같이 개새끼, 아니면 죽여 버리겠다는 살벌한 욕설들뿐이었다. 참다못해 나는 전화기를 꺼 버렸다.



다음 날도 아침부터 안개 속에 비가 내렸다.

나는 캠핑카를 해운대 바닷가에 세워 놓고 출입문과 차창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렇게 광란하던 바다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잠잠해져 있었고, 날씨는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바람 한 점 없이 후텁지근했다. 해수욕장에는 태풍에 할퀴고 찢긴 상처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모래밭에는 군데군데 비치파라솔이 세워져 있었고, 그 밑에서 비를 피하며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포가 끓여 준 커피를 마시면서 차창 밖으로, 중간 부분이 꺾어져 있는 105층짜리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것은 괴이한 광경이었다. 포와 나는 꺾어지고 기울어진 건물들을 다시 자세히 보아 두려고 해운대 바닷가로 내려온 것이었다.

커피를 두 잔째 마시고 있을 때 한 떼의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캠핑카를 에워싸더니 일제히 나를 노려보았다. 어림잡아 스무 명은 되는 것 같았고, 남녀 수가 반반은 되어 보였다.

"이 새끼, 여기 앉아서 한가하게 커피 마시고 있네."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더니 차 안으로 들어와서는 내 멱살을 움켜잡고 흔들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나는 얼이 빠져 상대방을 쳐다보기만 했다. 사람들은 거침없이 안으로 밀고 들어왔고, 그 가운데 나이 든 여편네 하나가 "개새끼, 이거나 처먹어라!"하면서 커피 잔에 남아 있는 커피를 내 얼굴에다 확 끼얹었다. 그것을 보고 포가 거세게 항의했다.

"이게 무슨 짓들이에요? 왜 남의 차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거예요? 나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를 거예요!"

"경찰 좋아하네, 씨팔년!"

사내가 포를 확 밀어버리자 그녀는 내 몸 위로 쓰러졌고, 그 바람에 우리는 한데 뒤엉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이 년이 바로 늙은 작가 놈하고 붙어먹은 년 아니야?"

여자들이 포의 머리칼을 움켜잡고 마구 흔들어대는 동안 사내놈들은 나를 발로 짓이겨 대기도 하고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갈겼다. 나는 금방 코피를 쏟았고, 그 바람에 내 얼굴과 옷은 커피와 코피로 뒤범벅되어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이 새꺄, 우리는 들어갈 집이 없어 밖에서 잤다. 그런데 우리한테 죄를 물어야 한다고? 개새끼!"

사내의 욕설에 이어서 늙은 여편네가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너만 글 쓰냐? 나도 시인이다! 작가 새끼가 소설이나 쓸 것이지 왜 남의 일에 나서서 지랄이야? 소설도 좆같이 쓰는 것이 말하는 것은 더 형편없잖아! 앞으로 소설가 행세하고 다니지 마! 소설가 행세하고 다니면 죽을 줄 알아? 알았어?"

더러는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하는 것이 더 악랄했다.

"늙은 놈, 그러다가 죽겠다. 그만하고 옷을 벗기라고. 이런 놈은 모욕을 줘야 한다고. 평생 씻지 못할 모욕을!"

"살날도 얼마 안 남았잖아."

그들은 더 이상 나한테 가하던 폭행을 그만두고 그 대신 내 옷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팬티까지 찢을 수는 없었던지 그것만은 남겨 둔 채 바닷가로 끌고 나갔다.

어느새 구경꾼들이 잔뜩 몰려와 있었다. 팬티 바람으로 끌려가는 내 모습을 좋은 구경거리인 양 스마트폰으로 마구 찍어 대는 사람들도 보였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고개를 돌려 달맞이언덕 위의 고층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기우뚱하니 기울어진 아파트 윗부분이 안개 위로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사과해! 잘못했습니다 하고 사과해!"

사내들이 뒤에서 내 엉덩이를 냅다 걷어차면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쩔뚝거리며 그냥 걸어가자 그들은 나를 가로등에다 묶었다. 이미 그럴 작정이었는지 튼튼하게 생긴 나일론 줄까지 가지고 있었다.

나는 비참하게 비를 맞으며 참담한 몰골로 서 있었지만 그들의 요구대로 결코 사과하지는 않았다. 나는 반드시 누군가가 했어야 할 말을 한 것뿐이었다.

"이게 무슨 짓들이에요?!"

뒤늦게 경찰을 대동하고 나타난 포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묶은 것을 풀어 줄 때까지 나는 비를 맞으며 안개 속에 그렇게 서 있었다. 경찰이 나타나자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사내들과 여편네들은 슬슬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야만인들! 악마들!"

포는 그들을 향해 분노에 차서 쏘아붙였다.



이튿날 신문에는 내가 팬티 바람으로 해운대 바닷가 가로등에 묶인 채 비를 맞으며 서 있는 참담한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내가 그렇게 모욕을 당하게 된 이유도 소상히 기사화되어 있었는데,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노작가에게 가해진 참담한 모욕-시민의식의 부끄러운 자화상'

포와 나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그것은 눈물로 바뀌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손으로 머리를 매만졌다.

"머리가 모두 빠졌어요."

"바다가 저주를 내린 거예요."



김성종

소설가

■후원: 부산 해운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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