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경량급 최강 꿈꾸는 삼정고 여자 유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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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DNA' 장착… "거침없는 신예돌풍 기대하세요"

삼정고 유도부 학생들이 학교 내 체육관에서 기술시범을 보이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부산시민들은 '부산은 야구도시'라는 말에 누구나 동의한다. 부산의 화려한 야구 역사와 달리 아쉽게 잊혀진 것도 있다. 시민들 가운데 국내 최초 여자 레슬링팀이 부산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1992년 동래여상이 창단한 레슬링팀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레슬링팀이었지만, 레슬링의 인기가 사그라지고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2001년 해체됐다. 그 사이 동래여상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차례 교명이 바뀌어 현재의 삼정고등학교가 됐고, 위치도 북구 구포동으로 이전했다.

한국 최초 여성 레슬링팀의 DNA가 올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삼정고가 올해 창단한 유도부 7명의 소녀를 통해서다. 정년을 앞둔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유도복을 입고 맹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면 옛날 레슬링 선수들이 땀 흘리던 기억이 난다"며 미소를 지었다.

92년 국내 첫 여자 레슬링팀 '명성'
선수 수급 안돼 9년 만에 해체 아픔
올해 유도팀 창단, 코치와 동고동락
매트 위 누르고 비틀고 업어치고…
새벽부터 밤까지 굵은 땀방울


■"우리는 경량급 유도 최강자"


지난 3월 창단된 삼정고 유도부는 주장 윤희정(18) 양 등 7명이 부원이다. 이들은 모두 57㎏ 이하 경량급 선수들. 부산에 여자 유도부가 있는 학교는 부산체고와 삼정고뿐인데, 부산체고가 중량급 중심의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면 삼정고는 경량급 선수들 중심이다.

유도부 창단의 배경에는 실력파 윤 양의 전국체전 부산대표 '깜짝 발탁'이 계기가 됐다. 윤 양은 원래 체육관에서 혼자 운동하던 선수였다. 그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지난해 6월 전국체전 부산대표 52㎏급 선발전에서 당당히 대표로 뽑혔다.

윤 양의 활약이 알려지자 학교에서 난리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체육특기생도 아닌 일반 학생이 전국체전 대표가 됐기 때문. 여자 레슬링팀의 명맥이 끊긴 게 늘 아쉬웠던 학교 측은 윤 양의 활약에 고무돼 윤 양을 주축으로 유도특기생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에 유도선수들이 하나둘 삼정고로 모였다. 지난 1일 전국체전 선발전에서 윤 양과 김여경(16) 양이 부산대표 자격을 따냈다.


■훈련도, 생활도 코치와 함께

유도부 학생들은 오전 6~7시와 오후 3~5시에 주로 훈련하며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야간훈련을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50m 정도 떨어진 합숙소에서 매주 월~금요일 함께 생활한다.

특이한 점은 합숙소로 가는 하굣길에 박성희(28·여) 코치도 함께한다는 것. 사실 유도부 합숙소는 정식 합숙소가 아니다. 박 코치 개인 집이다. 팀 창단 후 부산 북구청 소속인 박 코치가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학교 앞에 방을 잡았다. 그리고 유도부 아이들을 이곳에 모아 함께 지내고 있다.

박 코치는 아직 미혼이다. 한창 자유를 느낄 때다. 때문에 고교생들과 함께 사는 게 불편할 수도 있지만, 박 코치는 '아이들이 예뻐 죽겠다'는 반응이다. 그는 "유도는 힘든 운동이라 인기가 없다"며 "유도선수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고 성장하길 바란다"고 자기 방을 합숙소로 삼은 이유를 설명했다.

유도부원들은 합숙소에서 매일 잠들기 전 영어단어 100개씩을 외워야 한다. 훈련일지도 매일 써야 한다. 온종일 힘들게 운동한 뒤 쓰는 일지가 귀찮을 법도 하지만 학생들은 "교환일기 같은 거예요"라며 즐거워 했다. 훈련일지 밑에는 박 코치가 정성스럽게 의견을 적어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했다.

지난 3월 14일 화이트데이에는 부원들이 박 코치를 위해 사탕을 주기도 했다. 한 달 전 밸런타인데이에 박 코치에게서 받은 초콜릿에 대한 선물이었으나 자신들을 많이 아껴주는 스승에 대한 작은 보답이기도 했다. 학생들은 살짝 걱정도 있는 듯하다. "내년에는 우리 미인 코치님이 남자들로부터도 초콜릿과 사탕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어요."


■유도부, 여자 레슬링팀의 DNA를 깨우다

삼정고는 2년 전 인문계 고교로 전환했다. 1·2학년은 인문계고 학생이지만, 3학년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절반가량 있다. 학교가 자주 변화하는 과정을 겪다 보니 학생들을 결집시킬 삼정고만의 무엇인가가 늘 2%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 학교 황병석 교장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다들 성실하고 착한데 무언가 일체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도부가 짧은 기간에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학교와 학생들 사이에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 황 교장의 설명이다. 유도부 여학생들의 기강 있고 절도 있는 운동 모습과 기합 소리에 학교 분위기가 활기차게 바뀌는 게 느껴지고 있다는 것.

유도부 학생들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을 보이다 보니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이들의 투지와 열정이 옮겨붙은 모양새다.

황 교장은 "그동안 학교의 급변과 함께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전국 최초의 여자 레슬링팀이라는 DNA가 후배들에게 남아있는 것 같다"며 "사라진 여자 레슬링 최초의 팀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유도 명문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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