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상. 태동하는 세대친화 마을
마을 현안 함께 고민하고 함께 결정… 노인도 청년도 '好好好'
경성대 '초고령사회 대응 한국형 신공동체 모형 개발 SSK(Social Science Korea)팀'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 응답 노인들의 절반 이상(56.8%)이 개인적인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가족 또는 친척은 2~4명이라고 답했다. 절반 이상(53.1%)은 이웃 친구 수를 3~8명으로 꼽았다.
노인들은 가족보다 이웃 친구에게서 친밀감을 더 많이 느끼는 것이다. 노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중심으로 '고령친화 공동체'를 형성해야 하는 이유다.
노인들, 가족보다 이웃에 더 친밀감
삶 지속할 거주지 중심 공동체 형성
고령사회 적합한 마을 모델로 주목
부산 영도 '동삼LH 1단지 좋은마을'
벼룩시장 통한 세대간 소통 큰 호응
■고령친화 공동체로
고령친화 공동체는 단순한 공동체의 개념이 아니다. 노인이 그동안 살아온 지역과 집에서 이웃과 함께 삶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를 바탕으로 한다.
그렇다고 노인들만을 위한 공동체도 아니다. 노인들과 지역 내 다른 연령집단이 더불어 살아가면서 세대간 소통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한 자립시스템을 통해 모든 세대가 공동체 내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나누면서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일종의 '세대친화 마을'이다.
경성대 SSK팀은 "고령친화 공동체는 노인을 포함, 모든 연령대 구성원이 함께 거주하면서 공동체적 가치와 요소를 공유하는 지역사회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고령친화 공동체는 여러 유형이 있을 수 있다. 주도집단이 중고령 또는 노인만으로 구성되거나 젊은 세대가 포함되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하지만 △노인들이 주도하면서 혜택이 젊은 세대를 포함한 지역민에게 가는 유형 △노인들이 주도하며 그 혜택을 자신들이 누리는 경우 △노인들이 주도하며 혜택이 주로 취약노인에게 가는 유형 △노인들이 주도하면서 혜택이 젊은 세대에게 가는 유형 등 여러 조합으로 나눌 수 있다.
경성대 SSK팀 장수지 공동연구교수는 "공동체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세대가 재화와 노동력을 주고 받으면서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나 동질성 등의 심리적 결속을 다진다면 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연령층 교류의 장
고령친화 공동체가 과연 만들기 어려운 것일까. 아니다. 이미 부산에서 태동하고 있다. 영도구 동삼동 '동삼LH 1단지 좋은마을'은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져 마을공동체를 형성한 좋은 예다.
2010년 첫 출발한 '좋은마을 만들기' 사업은 지난해 위탁운영을 맡은 부산복지개발원이 주민들 스스로 활동영역을 정하고 예산 사용처까지 책정하는 등 주민 주도의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시작됐다. 통장 송재태(65) 씨는 "관 주도의 마을모임이었을 때는 데면데면하던 주민들이 스스로 뭔가를 결정할 수 있게 되자 참여가 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을공동체가 주민 주도로 이뤄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민들이 모여들었고, 서로에 대한 불신의 벽도 조금씩 허물어졌다. 동삼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마을회의가 활발하게 열린다.
주민들은 직접 나서 마을공동체에서 주축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도 했다. '의제찾기' 회의에서 함께 고민해 찾은 것은 전 세대 소통을 위한 벼룩시장 개최와 단지 주변 환경개선이다.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니 마을도 변했다. 쓰레기 투기나 고성방가로 지저분하고 소란했던 마을이 깨끗하고 쾌적해졌다. 길에서 술을 마시거나 싸우는 사람은 찾을 수 없게 됐다. 청년회를 주축으로 매일 펼치던 방범순찰활동이 필요없게 된 것.
마을에서 열린 벼룩시장은 대히트를 쳤다.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던 주민들이 물건을 서로 사고팔면서 소통 기회가 된 것이다. 호박죽 나누기 행사 역시 노인뿐만 아니라 가족단위 주민들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신성자(52·여) 씨는 "평소 주변을 돌아보거나 이웃을 만날 기회조차 없던 주민들이 벼룩시장과 나눔행사를 통해 많이 가까워지고 마을에 대한 애착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젊은 층과 교류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연자(70·여) 씨는 "젊은 세대와 함께 일하며 상부상조하다 보니 나이차를 못 느끼고, 젊은 층의 열정과 애정 등을 느낄 수 있게 됐다"고 좋아했다. 젊은 세대 역시 노년을 이해하는 기회가 늘어났다.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김문수(40·여) 씨는 "오히려 어르신들과 함께 일하면서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