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초등학교 운동장에 조선시대 '곡물 출납기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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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초등학교 증개축부지(운동장 부지)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 결과, 조선 전·후기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발견됐다. 건물터 바닥에는 10~20㎝ 크기 내외의 할석이 조밀하게 깔려 있다.

"조선시대 건물터가 전·후기로 나뉘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옛 지도에 곡물 출납 및 저장을 담당하는 사창(司倉)이 그려져 있어 뭔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건물터가 이렇게 넓게 나올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국문물연구원 문물조사부 김상현 과장이 기장초등학교 운동장 북동쪽(기장읍성 동문지 근처)에 펼쳐진 발굴지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발굴지엔 조선 전·후기 건물터를 말해 주는 초석과 담장, 축대, 할석(割石)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다. 지난 29일 찾은 기장군 기장읍 기장초등학교 증개축부지 내 유적 발굴현장이다.

지난 4월부터 (재)한국문물연구원이 부산시교육청 의뢰로 기장초등학교 증개축부지(운동장 부지)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를 한 결과, 이곳에서 조선시대 읍성의 중추 시설인 곡물 출납 및 저장을 담당하는 기관인 사창 추정 건물터를 포함해 조선시대 전·후기 건물터 4동과 타다 남은 곡물, 대량의 기와 및 명문 자기편 등 유물이 발굴됐다.

한국문물硏, 증개축 부지 조사
'사창' 추정 건물터·탄화곡물 발굴
교육청 예산 타령에 추가 조사 애로


앞서 한국문물연구원은 올해 1월부터 이곳에서 시굴조사를 시행, 조선시대 관아 흔적 등을 밝혀냈으나 사업 주체인 부산시교육청에서는 발굴 예산이 잡혀 있지 않다는 이유로 정밀 발굴조사를 거부(본보 지난 3월 3일 자 21면 보도)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시교육청에 정밀 발굴조사를 권고, 지난 4월 14일부터 현재까지 조사가 진행됐다.

이번에 조사한 발굴 부지는 기장읍성 내 중추 시설인 기장현 관아 건물이 조성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한 지역이었다. 1872년 제작된 '군현지도' 중 '기장지도'에는 현재 발굴지 근처에 곡물 출납 및 창고 역할을 했던 사창이 있었던 것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발굴조사의 최대 성과는 이 사창 건물로 추정되는 건물터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건물터에서 나온 탄화곡물. 검게 탄 상태로 뭉쳐져 있다.
실제로 조사지역에서 확인된 유구는 크게 조선시대 전기와 후기로 구분되는데, 전기 건물터 폐기층 위에 후기 건물터가 축조된 형태로 확인됐다. 일부 건물터 바닥에는 난방 시설 없이 10~20㎝ 크기 내외의 할석이 조밀하게 깔렸고 내부에서 다량의 탄화곡물이 노출된 상태로 발견됐다. 이는 결국, 이곳이 관아의 곡물창고였던 사창이었음을 의미한다. 발굴지에선 신령 령(靈)자의 약자가 새겨진 접시 형태의 분청자기와 동래(東래)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편도 나왔다.발굴 현장을 돌아본 한국성곽학회 고용규 이사는 "비록 조선 전후기 건물터가 뒤섞여 있지만, 초석이라든가 기와 크기로 봤을 때 큰 규모의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성벽 중심의 연구가 주를 이루는 조선시대 읍성 연구에서 이번 발굴 결과는 대단히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향후 발굴 추이도 관심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건물터 범위가 발굴하면 할수록 점점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물연구원 정의도 원장은 "중요한 유물이 나왔지만, 정해진 조사 구간과 실조사 30일(문화재청 제시)이라는 한계는 기장읍성의 내부 구조와 건물터의 역할을 밝히는 데 제약 요소가 된다"며 "좀 더 조사 구간을 확장해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업 주체인 부산시교육청은 지난 1월의 시굴조사 때처럼 예산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더 조사하게 되면 예산이 필요한데, 추가 예산이 책정돼 있지 않고, 또 현재 발굴 부지에는 앞으로 별다른 건물이 들어서지 않기 때문에 다음에 얼마든지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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