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특효약' 알고 보니 톱밥·깻묵 중금속 중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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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톱밥과 깻묵을 중탕해 '항암 특효약'이라고 속여 팔아 10여 년간 수십억 원을 가로챈 일당이 검거됐다. 사진은 경찰이 확보한 증거품들. 부산금정경찰서 제공

중금속에 오염된 톱밥과 깻묵을 중탕해 '항암 특효약'이라고 속여 판매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무려 13년 전에 구매한 원료를 지속적으로 사용했으며, 검증되지 않은 액체를 '기적의 신약'으로 광고해 왔다. 또 단속을 피하기 위해 창고 안에 비밀 제조실까지 차려 놓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부산 금정경찰서는 24일 중금속이 검출된 원료로 만든 액체를 항암 치료제로 둔갑시켜 전국에 판매한 혐의(부정식품 제조판매)로 김 모(62) 씨를 구속하고, 김 씨를 도운 허 모(56) 씨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기적의 신약'으로 광고
다단계·인터넷몰과 연계
13년간 32억 원어치 판매
비밀 제조실로 단속 피해
경찰 1명 구속 6명 입건


김 씨 일당은 2001년 1월부터 지난 3월까지 톱밥과 깻묵을 물에 넣고 끓인 액체를 수천 명의 암 환자에게 항암치료제로 속여 판매해 약 32억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 등은 2000년 인천의 한 업체에서 미루나무 톱밥과 깨를 짜내고 남은 찌꺼기인 깻묵 약 9t을 사들여 지하창고에 쌓아두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중탕해 팔았다. 미루나무와 깻묵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정한 식품 목록에 포함돼 있지 않다.

이들이 '먹는 즉시 암세포가 사멸한다'고 광고한 이 액체의 정체는 톱밥과 깻묵을 중탕기에 넣고 물을 부어 1시간 동안 끓여 만든 것이다. 무허가로 만든 제품이어서 제조과정과 항암효과 등이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김 씨 등은 이 액체를 암환자에게는 L당 22만 원, 판매상들에게는 3만 5천 원을 받고 판매했다. 이들이 13년간 판매한 양은 1L짜리 1만 병으로 추정된다. 이 액체는 부산 등의 대리점과 온라인 블로그, 다단계회사를 통해 전국으로 팔려 나갔으며, 심지어 일부 약국에서 버젓이 팔리기도 했다.

김 씨는 그동안 단속을 피하기 위해 지하창고를 이중으로 만들어, 밖에서 제조실이 발견되지 않도록 했다. 온라인 블로그 등에 가짜 사용후기를 올려 암환자들을 현혹하기도 했다.

경찰은 "톱밥과 깻묵 성분을 조사한 결과, 납과 크롬 등 중금속이 기준치 3배 이상 검출됐다"며 "김 씨 일당은 근거도 없이 유해 액체를 '항암 효과가 탁월하다' '암세포 수치가 낮아졌다'는 식으로 소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말만 믿고 액체를 복용한 암환자들은 썩은 지푸라기 냄새 등을 호소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이 지하창고에 보관 중이던 7.5t가량의 톱밥과 깻묵을 전량 폐기하고 유통 중인 제품을 회수 중이다. 식약처는 원료뿐 아니라 완제품의 중금속 검출 여부도 조사 중이다.

금정경찰서 여동호 지능팀장은 "김 씨 일당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암 환자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했다"며 "유해 중금속 오염이 심각한 만큼 현재 복용 중인 사람들은 즉시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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