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맛, 생멸치] 꼬릴 잡고 막 흔들지 마소 꼬신 봄 비린내 달아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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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이 말했다. 굳어지기 전까지 저 딱딱한 것들은 물결이었다. 파도와 해일이 쉬고 있는 바닷속 지느러미 물결 사이에 끼어 유유히 흘러다니던 무수한 갈래의 길이었다. 그물이 물결 속에서 멸치를 떼어냈다. 부드러운 물결은 팔딱거리다 길을 잃었다. 그리고 그 멸치는 오늘도 우리에게 온몸을 내준다. 봄 멸치를 맞으러 기장 대변항에 나갔다가 회와 찌개, 구이가 되기 직전의 생멸치를 카메라에 담았다. '거북이횟집' 밥상에서다. 김병집 기자 bjk@

다시, 멸치의 계절이다. 부드러운 육질과 감칠맛을 자랑하는 봄 멸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3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 젓갈용과 횟감용으로 주로 잡히는 봄 멸치는 어쩌면 이 시기에만 맛볼 수 있는 '특별 한정판'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크기라고 해 봐야 겨우 12~14㎝, 다 자라도 15~16㎝ 정도밖에 안 되는, 수명 1년 반의 그것이 떼지어 몰려다니며 거센 파도와 큰 물고기들에 온몸으로 맞서는 것을 상상만 해도 고개가 숙여지는 다부진 생선, 멸치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장렬한 최후는 있는 법. 산란기를 맞아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 연근해까지 들어온다는 게 그만 그물에 걸려 내장이 터지고 살점이 찢어지도록 탈탈 털리는 신세를 맞게 된다.

국립수산과학원 윤나영 해양수산연구사는 "봄 멸치는 살이 연한 것이 특징이며 기장군 대변에서 잡히는 멸치는 대멸(77㎜ 이상)로 젓갈 원료로도 사용하지만 회와 구이, 찌개 등 다양한 형태로 멸치의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다"고 특징을 콕 집어준다.

그렇다면 기장 멸치는 왜 맛있을까?

대변어촌계 이동길 어촌계장은 "대변 멸치는 남해, 충무 멸치와는 또 다르다"면서 "수심이 깊은 기장 앞바다에서 자라기 때문에 기름기가 없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엔 선장 나이도 점점 많아지고, 인력난도 겹쳐 대변 어촌계 소속 멸치잡이 배는 14척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기장멸치축제위원회 이한우 위원장은 기장 멸치가 맛있는 이유로 먹이를 언급했다.

"멸치 산란기인 4~5월 기장 앞바다에는 가장 좋은 플랑크톤과 멸치가 좋아하는 '곤지'(새끼새우)가 가득하다. 때론 멸치 알집에서 조그마한 새우가 들어있는 것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그게 참 맛있다."

계획대로라면 24∼27일 대변항 일대에선 기장멸치축제가 시끌벅적하게 벌어지겠지만 때가 때인 만큼 일체의 행사를 중지하기로 했다.

다만, 기장 대변항에선 여전히 펄떡이는 싱싱한 봄 멸치를 건져 올리고,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생멸치회·멸치회무침·멸치찌개·멸치구이·멸치튀김·앤초비파스타가 부산 사람들의 봄 식탁을 한층 풍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칼슘의 제왕' 봄 멸치의 맛에 빠져 보기로 한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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