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대변, 생멸치] 축제 없어도 대번에 안다… 요놈들, 맛 들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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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메루치(멸치)는 머리가 떨어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야 좋은 기라. 그기 대변 메루치고, 그래야 젓갈도 억수로 잘된다카이~ 멀쩡한 생메루치 숙성할라카마 얼마나 오래 걸리겠노!"

기장 대변항 난전에서 '멸치까기' 일만 25년째 했다는 '수영이 엄마' 서태숙'(57) 씨. 그가 말하는 '멸치까기'란 멸치의 내장은 꺼내고 뼈는 추려낸 뒤 이를 횟집으로 보내거나 소매로 파는 일. 멸치 1상자(24~25㎏)를 까는데 보통 사람은 6시간쯤 걸린다면 서 씨는 1시간 40분~2시간으로 족하단다.

평소 멸치회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한 번쯤은 멸치회 생각이 나서 대변항을 찾는다면 바로 이 시기일 것이다. 또한 김장을 위한 멸치 젓갈을 직접 담글 경우에도 대변 나들이는 필수이기 때문에 이맘때의 대변항 일대는 복작댈 수밖에 없다.

기장멸치축제가 전격 취소되긴 했지만 일상의 행위는 그대로 진행 중인 기장 대변항을 다녀왔다. 


■멸치 젓갈 10여 초면 OK!

"전국 유자망 어획고의 60%가 기장 멸치라고 하잖아요, 대변항에서 거래되는 멸치의 80%는 젓갈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은 멸치도 알이 많이 차 있는 시기여서 이 상태로 멸치 젓갈을 담그게 되면 가을에 맛이 아주 구수할 겁니다."

'동해수산' 조무용 대표의 말이다. 조 대표는 이날 30㎏짜리 60통에 달하는 멸치 젓갈을 오전 중에 다 팔고 다시 들어올 멸치털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 대표의 안내로 '기장식품'으로 이동해 멸치 젓갈 담그는 작업을 지켜봤다. 스테인리스 사각 통에 내장 등이 다 떨어져 나간 생멸치(대멸·77㎜이상)를 붓고 분량의 소금을 넣어 양손으로 버무리는 게 끝이었다. 10여 초나 걸렸을까, 정말 간단했다.

"멸치 1상자(24~25㎏)에 간수 빠진 천일염을 3되(5㎏) 정도 넣어서 버무려서 용기에 담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그리고 집에 가져가서 3개월 정도 지나면 숙성되고, 1년 정도 지나면 진국이 됩니다."


■멸치회 vs 멸치회무침

본격적으로 생멸치를 시식하기로 했다. 대변항 중간쯤에 있는 '거북이횟집'으로 이동했다. 거북이횟집 강숙자(66) 대표는 18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횟집을 운영하면서도 주방을 떠나지 않고 식재료 수급에서 음식 장만까지를 직접 책임지고 있었다. 그래서 홀 서빙 등 카운터 일은 그의 동생 숙희(59) 씨 몫이었다. 숙희 씨가 말했다.

"아무리 언니지만 옆에서 지켜보면 정말 대단하면서도 안타까워요. 이젠 좀 다른 사람 손도 빌려서 편하게 생활해도 될 텐데 절대 안 맡겨요. 허드렛일이야 도움을 받겠지만 음식 맛만큼은 한결같아야 한다는 게 언니의 생각인 거죠. 아 참, 언니는 멸치요리 대회에서도 1등상(담백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고 한 번은 2등을 했어요."

동생과 이야기를 하는 사이 어느 틈엔가 주방에 들어간 언니가 생멸치회를 장만해 왔다. 갓 잡은 싱싱한 멸치의 뼈와 내장을 제거한 뒤 은빛 살만 발라서 참깨와 어슷썰기한 잔파와 대파를 뿌려 왔는데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이때 강 대표가 거들었다. "보리 팰 때쯤 멸치가 가장 맛있는 것 아시죠? 지금이 산란기다 보니 기름기나 살이 최고로 부드러울 때입니다."

이어서 멸치회무침(이하 회무침)이 준비됐다. 마늘을 듬뿍 넣은 초장과 야채 덕에 비린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회무침은 밥에 비벼 먹기도 하고 쌈을 싸서 먹기도 했다. 그런데, 멸치회와 마찬가지로 회무침도 어차피 초장에 버무려 먹는 건데 굳이 두 가지 음식으로 나누는 이유가 궁금했다.

"두 가지는 분명 다릅니다. 멸치회는 초장과 회 맛으로 먹는 거고요, 회무침은 과일, 야채, 땅콩가루 등이 혼합된 갖은 양념 맛도 즐기는 것이니까요. 미식가들은 회 그 자체를 선호하기도 하지만 멸치회의 비릿함이나 물컹거림이 싫은 사람들은 회무침을 찾는 편이죠."


■멸치찌개 vs 멸치 시래깃국

이번에는 보글보글 끓는 멸치찌개가 올라왔다. 무청을 말려 놓았다가 삶아서 넣었고, 우거지도 들어 있다. 맛국물은 멸치를 기본으로, 다시마, 양파 등을 넣고 맛을 냈다. 찌개 안에는 들깨가루와 태양초도 포함됐다. 젓가락을 휘저었더니 포동포동한 멸치살이 올라왔다. 자작하게 졸였다. 진국이 된 국물을 홀짝홀짝 떠먹었다. 얼큰하면서도 시원했다. 시래기에는 한결 깊은 맛이 더해졌다. 일반적으로 멸치찌개가 인기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이날 음식 장만에선 빠졌지만 고춧가루 등을 뺀 채 시래깃국을 끓이듯 생멸치를 넣었다면 멸치 시래깃국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찌개용 멸치와 튀김용은 모양이 그대로 살아 있는 통멸치가 사용됐다.


■멸치구이 vs 멸치튀김

다른 음식을 시식하는 동안 숙희 씨 남편이 가게 바깥에서 숯불을 피워서 멸치구이를 가져왔다. 거의 동시에 주방에선 멸치에 튀김가루를 묻혀서 살짝 튀긴 멸치튀김이 나왔다. 하나는 굽고, 하나는 튀겼는데 전혀 다른 음식 같았다.

특히, 구이의 경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자 동생 숙희 씨가 말했다. 머리와 뼈를 발라서 먹으면 된다고 했다. 통째로 먹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가시에 민감한 사람은 뼈를 발라 먹는 게 좋겠고, 머리 또한 함께 먹으면 약간 쌉싸름할 수 있어 그렇게 먹으라고 권한 것이었다.

반면, 튀김은 통째로, 뼈째 씹어 먹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따끈따끈한 멸치튀김을 통째 먹다 보니 제대로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생각난 김에, 강 사장에게 대변 멸치 자랑을 부탁했다. "대변 멸치는 유자망으로 잡는 데다 멸치털이를 하는 과정에 멸치 핏물이 빠진 채 공급되기 때문에 정말 부드럽고 담백합니다."

한편 국립수산과학원 윤나영 해양수산연구사는 멸치에 칼슘이 많은 이유와 관련, 어육과 뼈를 다 먹을 수 있는 '뼈째 먹는 생선'이라는 점을 들고, 멸치에 함유돼 있는 칼슘은 골다공증 예방과 어린이 및 청소년의 골격 형성과 성장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 기장해안로 539-1 거북이횟집. 대변항 중간쯤 위치. 멸치회, 멸치찌개, 멸치무침 1인분(小)에 각 2만 원. 멸치구이는 1만 원. 그 밖에 다른 횟감도 취급 중. 오전 9시~오후 10시30분 영업. 2·4주 수요일 휴무. 051-721-3340.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사진=김병집 기자 b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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