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 남자의 제의로 모델이 된 여자, 괴물이 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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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플러스에프픽쳐스 제공

세상의 따스함과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낀 스물일곱의 한 여자. 삼류대 출신이기에 이미 취직은 포기했다. 3년째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지만 이런 자신이 밉다. 세상과의 소통이 싫어 마음의 문마저 닫아 버렸다. 그런 그녀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모델 좀 서 주시겠어요"라고 제의한다. 여자는 "왜 저에요?"라고 말하면서 그를 따라간다.

이로이 감독의 데뷔작 '멜로'는 우연히 만난 남자 태인(이선호)의 모델 제의로 모든 일상이 바뀌어 버린 윤서(김혜나)의 이야기다. 계층 간의 단절에서 오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담담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윤서의 삶은 답답하다. 번번이 떨어지는 공무원 시험에 대한 두려움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떠나지 않는다. 유일한 탈출구는 남자친구 지훈(김효수)과의 습관적인 섹스뿐. 남친이라기보다 섹스파트너에 가까운 지훈과의 섹스는 단지 살아 있다는 증거 정도다. 커피전문점에서 알바를 하던 어느 날, 손님인 태인이 그림 모델이 되어 달라는 부탁을 한다. 태인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매력으로 인해 제안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 윤서는 태인의 집을 찾아가게 되는데….

영화는 이렇듯 세상과 소통하기 싫고, 마음의 문마저 닫아 버린 윤서의 외로운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3평 남짓한 허름한 자취방에 자신을 가두고 절망과 원망, 증오를 마치 자신의 화초처럼 키우는 그녀. 따스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찾기 어렵다. 이따금 남친과의 섹스는 쾌락보단 물리적 온기 정도만 느낄 뿐. 극 중 윤서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어쩌면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이해와 소통의 단절이 아닐까.

메가폰을 잡은 이 감독은 이를 두고 '괴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괴물이 사랑이란 낯선 감정을 만났을 때 어떤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스크린에서 그려 내고 있는 것. 윤서의 광기 어린 집착과 소유는 과감한 노출로 도드라진다. 그리고 극 후반 외롭고 고통스런 절망의 자리로 돌아갈 자신이 없는 윤서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이 감독. 그런 까닭에 연출은 다분히 프랑스 풍이다. 차분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인물을 조망하고, 화려함보단 정제된 모습으로 공간을 채워 나간다. 언듯 보면 영화 '몽상가들'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과 닮아 보인다.

충무로 블루칩 김혜나가 주인공 윤서 역을 맡아 영화 전체를 이끌어 나간다. 세상과 단절된 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아온 윤서를 섬뜩하리만큼 실감나게 뽑아낸다. 지난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이 작품은 약 2년 만에 일반 관객과 만난다. 24일 개봉. 김호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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