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맨' 이명우의 웃음 뒤 숨겨진 차가운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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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퀴즈 하나, 지난 시즌 리그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투수는?

2년 연속으로 무려 74경기에 출장하며 묵묵히 공을 던진 선수가 있다. 하이라이트 영상만 챙겨보는 팬이라면 맞힐 수 없는 이 퀴즈의 정답. 바로 불펜의 '믿을 맨' 이명우다.

작년 74경기 최다출전 20홀드
올 시즌 10경기 방어율 1.93

이명우는 2002년 부산공고를 졸업하고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동기 이대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이 3번이나 수술대에 올랐다. 결국 '100구를 넘게 던지는 선발은 힘에 부친다'며 불펜 투수로 전향했다.

그러나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불펜 투수다. 돌발 상황에 대비해 몸을 풀어야 하니 출전을 못 해도 늘 불펜에서 공을 던져야 한다. 감독도, 관중도 마운드에 올라 가지런히 발을 모으고 투구를 준비하는 이명우의 모습을 봐야 마음이 놓이는 탓이다. 이명우는 "'홀드 22개 기록을 경신하자'는 이야기가 많은데 '작년에 20홀드 할 때 2개 더 보탤 걸 그랬네' 하는 생각이 드네요"라고 웃는다. 22홀드는 SK 임경완이 롯데 시절 세운 구단 최다 홀드 기록.

오히려 홀드보다 올해 이명우가 더 탐을 내는 기록은 출장 수다. 그는 "홀드보다 오히려 출장 수가 더 욕심이 나요. 작년에 74경기 나갔는데 올해는 구단에도 80경기 출장하고 싶다고 이야기도 했지요. 무엇보다 안 아프고 꾸준히 던지는 게 목표니까요"라고 말했다.

사실 2년 연속으로 엄청난 출장 수를 소화하다 보니 혹사 논란이 나오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실제로 시범경기에서는 2개의 홈런을 허용해 팬들의 우려도 샀다. 이명우는 "사실 시범 경기 때도 컨디션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는데 희한하게도 홈런을 많이 맞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 "보통 1년에서 홈런을 1~2개 정도 맞는데 나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면서 겸연쩍은지 씩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그의 엄살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여전히 이명우의 건재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명우는 벌써 10경기에 출전해 방어율 1.93으로 올해도 준수한 불펜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다.

상위권 성적을 거두기 위해 불펜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게 현대 야구다. 특히 경기 중후반 위기 상황에서 마무리 투수에게 안정적으로 마운드를 인계하는 좌완 스페셜리스트인 이명우의 가치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그 덕에 매년 2만 여 명의 관중 앞에서 경기가 뒤집힐지 모르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수십 차례 마운드에 올라야 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견디기 힘들 중압감을 떨치기 위해 그는 어떤 생각을 할까.

이명우는 "마운드 올라가기 전에는 '이 타자에게는 이 구종을 던져야지'라는 계산도 하지만 막상 올라가면 그런 거 없어요. '무조건 틀어 막는다'라고 생각하고 포수 미트만 보고 던지죠. '볼넷 주느니 안타 맞는 게 낫다'는 생각에 빨리빨리 승부를 가져가려고 해요"라고 말했다.

허허실실. '거토(거대 토끼의 준말)'라는 별명으로 사랑받으며 마운드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주무기는 미소 뒤에 숨긴 차가운 심장이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사진=윤민호 프리랜서 yunmi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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