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학림의 예술과 사랑] 15. 모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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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 모리소(1841~95·마네의 그림)는 인상파 화가 코로의 제자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모리소는 20대 초반에 살롱전에 6번이나 입선하면서 상당한 주목을 끌었다. 날카로운 코와 깊은 눈을 갖춘 이지적이고 매혹적인 얼굴로 그녀는 인상파의 뮤즈가 되었다. 20대 중반에 그녀는 '인상파의 아버지'가 될 30대 중반의 마네(1832~83)를 만난다. 주류 화단과 싸우는 마네를 그녀는 존경했다. '마네의 그림은 언제나 야생의 열매, 혹은 아직 덜 익은 과일 냄새가 나서 참으로 좋아.'

당시 마네는 유부남이었다. 그러나 누가 쥐도 새도 모르게 당도하는 사랑을 알 수 있을 터인가. 마네는 32세 때 두 살 연상의 네덜란드 여인 수잔과 이미 결혼한 터였다. 거기에 '집안의 비밀'이 있었다. 마네 집안의 피아노 선생이었던 수잔은 마네 아버지의 애인이었다. 그녀는 이미 12살짜리 아들 레옹이 있었다. 마네는 작고한 아버지의 애인과 배다른 아우를 '결혼'으로 떠맡은 것이다. 세상의 눈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수잔은 착하고 좋은 품성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러나 마네와 수잔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다리가 있지 않았겠는가.

이지적 매혹의 화가 '인상파 뮤즈'
마네 제수씨였으나 마음속 여인

그런 마네에게 모리소가 나타난 것이다. 마네의 유명한 그림 '풀밭 위의 점심' '올랭피아'에서 모델은 빅토린이란 여인이었다. 그녀는 벗었고, 도시의 세속 냄새 나는 이미지로 마네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모리소는 달랐다. 빅토린처럼 벗지 않고도 충분히, 아니 더 이상으로 도발적이었고 매혹적이었다.

마네의 사랑이 택한 이상야릇한(?) 방법은 모리소와 동생 외젠 마네를 결혼시키는 것이었다. 모리소도 이를 받아들였다. 모리소는 마네의 제수씨가 된 것이다. 아주버니 마네는 모리소를 그리고 또 그렸다. 검은 흑진주처럼 그린 1872년 모리소의 초상에 시인 폴 발레리가 감탄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그림은 마네 예술의 정수다. 저 검은색의 완전한 어둠….' 1875년 모리소가 그린 그림에서 남편 외젠 마네는 거실에서 혼자서 창밖의 부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참으로 사랑은 알 수 없는 방정식으로 쓰이는 것이다. 아니 알 수 있을 것 같은 방정식으로 이뤄져 있다. theos@busan.com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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