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환상의 섬' 소매물도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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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이주민 '으르렁'… 고소·고발전에 '두 동강' 난 섬

한 해 60만 명 이상이 찾는 '환상의 섬' 소매물도에는 '고소·고발의 섬'이란 부끄러운 꼬리표가 붙었다. 지금의 소매물도를 만들어 준 등대섬 풍경. 김민진 기자·통영시 제공

남해 바다를 수놓은 보석 같은 섬들 중에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곳. 경남 통영의 소매물도다.

지금은 철새도 쉬어가게 만든다는 절경으로 한 해 60만 명에 가까운 방문객을 끌어 모으는 '환상의 섬' 소매물도에 최근 부끄러운 꼬리표가 붙었다. '고소·고발의 섬'이다.

찾는 이들에게 절로 감탄사를 토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섬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남해 바다 으뜸가는 절경
지난해 60만 명 찾은 명소

최근 3년간 송사만 110건
가구당 평균 7건 이상

땅 지분 싸움서 비롯
부잔교 막아 뱃길 끊기기도

■쿠크다스 섬


경남 통영시 서호동 여객선터미널에서 뱃길로 1시간20분여를 달리면 한려해상국립공원 끝자락에 자리 잡은 한산면 매죽리 매물도에 닿는다.

소매물도는 말 그대로 매물도에 딸린 작은(小) 섬이다. 썰물 때 물이 빠지면 소매물도에서 두 발로 걸어갈 수 있는 부속섬이 있는데 바로 등대섬이다.

과거 정기여객선조차 없던 외딴 섬이었지만 1986년 한 과자 광고의 배경지로 소개돼 '쿠크다스 섬'이란 애칭이 붙었고 각종 광고와 영화에 잇따라 등장하면서 방문객이 폭증했다.

지난해 하루 평균 방문객 수 700여 명, 한 해 60만 명 이상이 찾았다.

특히 지난해 한국관광공사가 뽑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100곳'에도 이름을 올렸다.



■갈등의 시작

소매물도 사람이 살기 시작한 지는 줄잡아 100여 년. 친인척 관계로 얽힌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섬 내 모든 땅과 건물은 지분을 나눠 공동으로 소유했다.

1989년 ㈜남해레데코라는 업체에서 섬을 통째로 사들여 자연관광단지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당시 섬에 터전을 일궜던 주민은 총 36가구. 주민들은 '계약자 당대에는 그대로 살아도 된다'는 조건으로 땅과 집을 팔았다.

그 때 뒤늦게 단 한 사람만이 매매를 반대했다. 현 어촌계장 김 모 씨다. 개발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고 2005년 남해레데코를 인수한 공동대표 차 모 씨는 김 씨와 지분 소송을 벌인다.

당시 차 씨의 지분은 무려 92%, 김 씨는 8%에 불과했다. 합의는 무산됐고 법원은 경매로 땅을 처분해 지분만큼 돈을 나눠 갖도록 결정했다.

이에 김 씨는 원주민 3명과 손잡고 경매에 직접 참여한다. 그리곤 2010년 소매물도 전체 임야의 절반가량인 22만 6만882㎡를 10억 5천500만 원에 낙찰 받는다.

김 씨 일행의 지분이 순식간에 50%에 육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섬을 원주민과 이주민, 두 세력으로 두 동강 내는 계기가 된다.



■고소·고발의 섬

2014년 3월 현재 소매물도에 주민등록한 주민은 29가구 55명, 실제 거주자는 14가구 35명 남짓이다. 이 중 원주민은 9가구 19명, 이주민은 5가구 15명이다. 이주민은 차 대표를 포함해 펜션 영업을 위해 정착한 외지인들이다.

남의 땅에 얹혀사는 신세로 20년 가까이 숨죽였던 원주민들은 경매를 계기로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이주민과의 다툼이 잦아졌다. 편가르기에서 시작된 감정 대립은 원주민과 이주민간 고소·고발 사태로 번졌다.

펜션 성업으로 빗물과 지하수로 충당해 온 공용 식수탱크가 자주 바닥을 드러내자 화가 난 원주민이 물탱크 밸브를 부쉈고 펜션 측은 이를 고소했다. 공용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기에 연료용 기름을 붓던 펜션 직원이 실수로 기름을 쏟아 일부가 바다로 흘러들자 원주민 측은 해양오염이라며 해경에 신고한다.

전기 무단 사용 신고로 벌금 200만 원을 물게 된 일부 펜션 업주는 물질한 해산물을 방문객들에게 판매한 원주민 해녀들을 '무허가 영업'으로 고발하며 응수했다. 이밖에 쓰레기 처리와 같은 시시콜콜한 사안까지 수사기관을 찾았다.

경찰, 해양경찰, 검찰 등 통영 관내 수사기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소매물도에서 제기된 고소, 고발, 각종 진정이 110여 건에 이르고 있다.실 거주 1가구당 7건 이상의 송사에 휘말려 있는 셈이다. 최대 15건에 얽힌 이도 있다. 소송이 불기소나 무혐의 처리되면 그 상대가 무고죄로 다시 고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고소·고발에 연루되지 않은 집이 단 한 집도 없다.

통영시와 관할 한산면에서 화해를 위해 수차례 중재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최근 고발사건이 불거진 부잔교. 김민진 기자·통영시 제공

■뱃길까지 끊어

감정의 골이 깊어진 주민들은 결국 섬과 육지를 잇는 여객선 접안시설 사용 문제를 두고 충돌했다.

소매물도의 유일한 선박 접안용 부잔교는 원주민인 어촌계원들에게 권리가 부여돼 있다. 어촌계가 시설 사용을 금지하거나 사용 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여객선 운항이 중단돼 주민이나 방문객 모두 꼼짝없이 발이 묶인다.

실제로 이런 사태가 2012년까지 외부로 알려진 것만 3차례다. 이주민들은 펜션 영업을 방해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라고 비난했고 원주민들은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맞섰다.

한동안 잠잠하던 부잔교 논란은 올해 다시 재연됐다. 지난달 통영시가 소매물도 물량장 전반에 대한 보수·보강공사를 위해 어촌계와 협의 후 부잔교를 50m가량 임시 이설했는데 이를 한 주민이 '불법시설'이라며 해경에 고발한 것이다.

해경이 현장 조사에 나서자 어촌계는 여객선 접안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지난 14, 15일 양일간 여객선 접안 불가로 또 뱃길이 끊겼다. 통영시는 부랴부랴 이설 지점에 신규허가를 냈고 사흘만에 여객선 운항은 정상화 됐다.

통영시 관계자는 "그동안 쌓인 주민 갈등의 연장선에서 불거진 사태다. 주민갈등에 공공의 이익마저 내팽개쳐진 것 같아 못내 안타깝다"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뱃길 중단 사태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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