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블부블-부산 블로그] 도다리 vs 문치 가자미, 수적 열세에 밀려 '문치'에게 이름 내준 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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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vs 맛 - 영양 vs 영양

진짜 도다리(아래)는 체형이 둥글고 마름모꼴에 가까우며, 외피의 표범 무늬가 특징이다. 반면 문치가자미(위)는 도다리에 비해 체형이 길쭉하다.

우리는 본래 소수 종족이었다. '도다리'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지키며 우릴 찾는 이들에게 천상의 회 맛을 자랑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문치'라는 녀석들이 물량공세를 하더니 어느새 우리의 이름을 빼앗아 갔다.

물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매년 3~4월이면, 배 엔진 소리로 동네 전체가 시끄러웠다. 하루는 자고 있는데 바로 옆까지에 그물을 내리더니 우리는 물론, 옆집 '문치 아가씨'를 마구 잡아갔다. 도대체 그걸로 뭘 만들어 먹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본래 횟감이지만, '문치 아가씨'들은 산후조리 중이기 때문에 횟감은 아닌 듯 보였다. 문치는 정말 흔했다. 해마다 봄이면 문치가 수천 마리 들어와 닥치는 대로 지렁이며, 새우며 잡아먹었다. 너무 많다 보니 가끔은 내 등짝을 밟고 지나가면서 힐끗 쳐다보기만 하더라. 그들이 그렇게 들어와 난장판을 만들 때 우리 종족은 구석에서 쥐 죽은 듯이 살아야 했다.

물량 공세로 전국구 된 문치
쑥국으로 일약 스타덤 올라
진정한 회맛은 6~9월이 절정


어느 날부터인가 문치가 유명해졌다고 하더라. 그때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치를 '도다리'로 부르더니 이제는 진짜 도다리인 우리를 '담배쟁이'나 '담배 도다리'같은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어딜 봐서 담배를 닮았단 말인가? 이름 빼앗긴 것도 서러운데 엉뚱한 이름까지 붙여놨으니 기분이 무척 억울하다. - 어느 진짜 도다리의 한탄

재미로 썼지만, 실제 도다리는 억울할 만합니다. 반대로 물량공세를 퍼부으며 쑥과 궁합을 맞춘 문치가자미는 '도다리 쑥국'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면서 전국구 '도다리'란 명칭을 얻었습니다. 세상이란 게 그런 거 같아요. 누구 입에 좀 들어가 줘야 입소문이 날 텐데, 진짜 도다리는 수적으로 열세에 놓여 주목을 못 받는 동안 문치가자미는 수적 우위를 점하면서 오늘날 도다리로 굳혀져 버렸습니다.

참 억울한 녀석이죠. 문치가자미에게 도다리란 타이틀을 빼앗겨버린 진짜 도다리. 이 녀석들은 개체 변이가 있어 무늬가 오락가락합니다. 등에 무수히 난 점박이는 마치 표범 무늬를 연상시키는데 이게 개체에 따라 굵은 게 있고, 자잘한 게 있습니다. 고로 도다리를 구별할 때는 그런 무늬의 변화를 고려하여 마름모꼴 체형을 보고 판단하는 게 가장 빠릅니다.


#회의 제철과 맛의 근간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진짜 도다리도 맛이 들려면 두어 달 지나야 합니다. 제철은 뜻밖에도 가을이라는 사실. 왜냐하면, 산란을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하기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생선의 회 맛은 살과 지방이 들었을 때가 가장 맛있으므로 산란을 준비하는 시기가 제철이 됩니다. 예를 들어, 4월에 산란하는 물고기가 있다면 그보다 2~3달 전인 12~1월에 회 맛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봄에 산란하는 물고기의 제철은 겨울이고, 겨울에 산란하는 물고기의 제철은 가을이 됩니다. 농어나 민어처럼 가을에 산란하면, 그 물고기의 제철은 여름이 됩니다. 물론, 모든 어류가 다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고 예외도 있습니다.

제철이라 함은 '회 맛이 가장 좋을 때'를 기본으로 하지만, 지금의 문치가자미처럼 어획량이 많아서 제철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도루묵처럼 회로 안 먹는 생선은 알이 꽉 들어찰 때를 제철이라 합니다.

알이 꽉 차면 지방을 비롯한 대부분 영양분이 알과 이리(정자 주머니)로 집중되기에 살 맛이 밍밍합니다. 또한, 산란 직후에는 몸이 홀쭉하고 살밥이 안 차 회가 볼품없습니다. 결국, 산란 전후 어느 쪽이든 횟감은 별로입니다.

최상의 횟감은 산란을 위해 살을 찌우는 시기로 이때가 되면 살이 탄탄하고 만져보면 두껍습니다. 비육 상태가 좋아 썰어보면 살점이 두껍게 나오고 적당한 기름기도 있어 씹을 때 맛이 나죠.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오래 씹지 않고 대충 씹어 식감만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먹으면 회 맛의 반밖에 못 보는 셈입니다.

회 맛이 들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찍지 말고' 그냥 먹는 것입니다. 간장도 찍으면 안 됩니다.

그냥 드시되 서른 번은 씹어보세요. 살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침과 섞여 죽이 되었을 때 그제야 내어주는 맛이 있습니다. 그 맛이 해당 어종이 가지는 본연의 맛입니다. 이는 '분쇄'를 통한 '숨은 맛 끌어내기'로 원리는 단순합니다.


# 진짜 도다리 vs 문치가자미, 어느 게 더 맛있나?

이건 말할 것도 없이 진짜 도다리의 압승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도다리도 지금은 살이 덜 찼고 제철이 아닙니다. 문치가자미 역시 산란 직후라 살을 찌우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두 어종은 모두 여름부터 맛이 들기 시작해 가을로 이어집니다.

진짜 도다리든 문치가자미든 회 맛이 가장 좋을 때는 최소 5월은 돼야 하고 6~9월이 좋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10월부터는 맛이 빠집니다. 이유는 다른 어종과 달리 월동과 산란을 준비하면서 살에 든 지방을 소비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12월에 먹은 문치가자미는 질기고 밍밍합니다.

이번에 맛본 문치가자미도 오래 씹어보았으나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고 싱거웠으며, 살은 씹히지 않고 끝까지 남아 질겅거렸습니다. 씹다가 씹다가 넘기기 어려워 뱉어낼 정도였는데 이는 살이 아직 덜 여물어서 물컹거리는 현상입니다.

반면, 진짜 도다리는 고탄성이지만 잘 씹혀 부드럽게 넘어갔습니다. 아직 살이 덜 찼는데도 단맛이 느껴졌고요. 둘 다 이대로라면 6월 이후가 더 기대되는 횟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두 어종의 승부는 둘 다 제철일 때 맛을 봐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으므로 잠시 유보해 두기로 합니다. 


김지민(입질의 추억) 

바다낚시와 생선회 칼럼을 쓰고 있는 블로거

바다가 주는 이야기 속으로

http://slds2.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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