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영원할까? 사라진 혹은 사라질 뻔한 걸작들의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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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고 찢기고 도둑맞은 / 릭 게코스키

그레이엄 서덜랜드의 음침한 초상화 아래 서 있는 윈스턴 처칠. 처칠은 이 초상화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르네상스 제공

1954년 영국 의회는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로 인정받던 그레이엄 서덜랜드에게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의 초상을 의뢰했다. 이 그림은 2차 세계 대전의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명작. 실물 크기로 제작된 처칠의 초상화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림 속의 처칠은 의자에 앉아서, 오른쪽으로 몸을 약간 기울인 상태로 앞을 바라보면서 뭔가 당혹스럽고도 성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는 그의 전성기 특징이었던 달변과 쾌활함과는 거리가 멀었다.처칠과 그의 부인 클레멘타인 처칠은 초상화 속의 처칠이 늙고 성질 나쁜 노인처럼 보인다며 싫어했다. 결국, 처칠의 초상화는 세상에 공개된 지 한두 해가 지난 뒤 파괴되고 말았다. 이 같은 사실은 1977년 클레멘타인 처칠이 세상을 뜬 후에야 알려졌다.

처칠 초상화·바이런 회고록 등
훼손·파괴된 예술 작품 통해
예술의 상실이 갖는 의미 고찰
문화유산 보전의 중요성 일깨워


불타고 찢기고 도둑맞은 / 릭 게코스키
그렇다면, 이 소식을 접한 서덜랜드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는 "윈스턴 경이 내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고 시인했지만, 그래도 이런 조치는 "반달리즘 행위"라고 반발했다고 한다.

'불타고 찢기고 도둑맞은'은 처칠의 초상화처럼 사라진 예술이나 문학 작품의 수난사를 다뤘다. 사라진 예술작품의 배후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인 셈이다.

저자는 상실에 얽힌 문화적 탐욕과 어리석음을 하나하나 들추어낸다. 그러면서 예술작품의 훼손을 통해 예술 작품의 본질을 설명한다. 이를테면,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가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을 때에도 주목을 받았지만, 도난당한 이후에는 오히려 더 주목받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예술 작품의 상실이 갖는 의미를 고찰한다.

1911년 루브르박물관에 걸려 있던 '모나리자'가 갑자기 사라졌다. 2년 후에 발견되었는데, 이탈리아 액자 제작자가 큰돈을 벌 욕심에 그림을 훔쳐다가 침대 밑에 감춰 두고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루브르박물관 관람객들은 '모나리자'가 걸려 있던 공간으로 계속 몰려들었다. '모나리자'는 그 자리에 걸려 있을 때보다 사라진 뒤에 더 큰 인기를 누렸다. 

바이런의 회고록을 불태운 곳으로 알려진 난로. 난로 앞에 서 있는 이는 이곳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머리 출판사 관계자. 르네상스 제공
비슷한 경우는 또 있다. 시인 바이런의 친구들은 바이런이 죽자 시인의 사후 명성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회고록을 불살라 버렸다. 그런데, 이 소문이 밖으로 새 나가기 시작하자 회고록은 본래 가치보다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게 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저자는 이에 대해 유물이 지닌 가치 때문이라고 자답한다. "한 예술 작품의 가치는 단순히 재료와 제작자만이 아니라 이후의 이력까지 포함한 총체적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이런 가치를 획득한 예술 작품이야말로 존중받아야 마땅한 대상"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예술 작품에 대한 저자의 톺아보기는 계속된다. 이번엔, 처칠의 초상화나 바이런의 회고록처럼 이렇게 가치 높은 예술 작품의 소유와 처분, 심지어 훼손과 파괴를 결정할 권리를 한 개인이나 국가가 행사하는 것은 정당한지에 대해 묻는다.

이런 저자의 물음은 마치 우리와는 무관한 외국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외관상 열다섯 장에 걸친 사례가 그렇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요컨대, 숭례문이 어이없이 불타 버렸을 때,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제주도에 세운 카사델아구아가 불법 임시건축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되었을 때에도 똑같은 상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문화재 절도범이 일본의 사찰에서 훔쳐 한국으로 밀반입한 두 점의 국보급 불상을 일본에 돌려줘야 할지, 아니면 원래 한국의 것이었음을 이유로 삼아 한국에 그대로 남아 있도록 조치해야 할지도 같은 범주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매우 조심스럽다. 저자는 오늘날 제국주의적 약탈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엘긴 대리석상'이며 '베냉 유물'에 관해서도 단순히 '반환'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지적한다. 약탈의 결과로 문화 유물이 안전하게 보전되었으며,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자칫 논란이 있을 법한 주장이지만, 문화재의 소유권을 둘러싼 국가 간의 갈등 해결이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저자는 예술 작품의 본질과 가치를 연약함에서 찾는다. 저자는 한 번 망가지면 회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예술 작품은 생명에 버금가는 연약함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 어떠한 불멸의 걸작이나 고전도 영원불멸은 아니며, 자연적이거나 인공적인 재난 앞에서 버티지 못하고 그만 상실되고 만다는 것.

"오늘날 전해지는 작품들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데, 이는 그토록 많은 작품 가운데 이토록 적은 작품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유산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그리고 우리가 이런 유산을 보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증거인 셈이다." 이게 저자가 이 책을 쓴 궁극적 이유일 터이다. 릭 게코스키 지음/박중서 옮김/르네상스/332쪽/1만 7천 원.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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