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옥의 시네마 패션 스토리] 39.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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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상징' 아르마니 슈트, 1980~90년대 월가 패션의 전형

자신감으로 가득 찬 조단 벨포트(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 권위적인 느낌의 줄무늬, 널찍한 어깨 패드와 라펠, 그리고 폭이 넓은 실크 넥타이에서 1990년대 금융계 인사들의 파워 슈트를 엿볼 수 있다. 진경옥 씨 제공

미국 증권가 최고의 승부사들이 즐겨 입던 옷이 엄청나게 나오는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4년)는 1980년대 후반,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고 정보가 공유되지도 못할 때 주가 조작으로 뉴욕 월스트리트 최고의 억만장자가 된 주식 사기꾼, 조단 벨포트의 실화를 다뤘다.

조단(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은 수려한 외모에 화려한 언변, 명석한 두뇌로 쓰레기 주식을 비싼 값에 팔아 성공 신화를 써 내려 간다. 그러나 그의 성공 신화는 마약과 술, 섹스와 함께했다. 섹스와 마약을 제외하면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이 영화는 매우 난잡하다. 욕설을 맛깔스럽게 잘 버무리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답게 육두문자 '퍽(fuck)'이 무려 506차례 나온다. 물론 이 말은 욕설보다 '제기랄' '빌어먹을' 정도의 추임새로 해석할 수 있지만 말이다.

디캐프리오는 1980∼90년대 시대상과 그때 월가 남성 패션의 전형을 보여 준다. 당시는 패션이 확고한 권위를 나타내던 때였다. 특히 아르마니 슈트는 성공의 상징이었다. 조단의 성향과 지위, 야망은 아르마니 의상의 어깨선을 강조한 재킷과 주름 잡힌 바지, 대담한 패턴의 타이 등으로 표출됐다.

그런데 영화 속 의상 중 잘못 알려진 것이 있다. 1990년대 남성복 스타일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아르마니 스타일은 사실 상징적인 부분만 영화에 살짝 끼쳤을 뿐, 영화 의상의 대부분은 영화 '영 빅토리아'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세 차례나 수상한 베테랑 의상디자이너 샌디 파월의 작품이다. 심지어 아카데미 시상식 관계자들도 아르마니가 전체 의상을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영화에 등장한 아르마니 옷은 극 초반 조단이 사업 파트너인 도니 아조프(조나 힐 분)와 함께 있을 때 잠깐 걸치고 나온 라이트 그레이 색상의 슈트를 포함해 2벌이 전부다.

1980∼90년대 주식 붐 시기에 은행가와 주식 브로커들은 자신들의 새 지위를 뽐내기 위해 신사복을 즐겨 입었다. 특히 프렌치 커프스와 대담한 패턴의 멜빵이 인기였다. 그러나 이 스타일은 세련미보다 이른바 '돈 자랑'에 가까웠다.

한편 넓은 어깨 패드와 라펠을 가진 권위적인 줄무늬 슈트와 실크 넥타이는 1990년대 파워 슈트의 상징이었다. 1990년대 여성복 스타일에서 붕대 의상도 빼놓을 수 없는 패션이다. 조단의 두 번째 아내인 나오미(마고 로비 분)는 이 붕대 스타일의 드레스 선구자 격인 '에르베 레제'의 옷으로 자신의 미모를 한껏 과시했다. 디자이너 파월은 나오미의 신흥 부자 스타일을 나타내기 위해 초반에는 에르베 레제, 지아니 베르사체, 돌체 앤 가바나같이 도발적인 스타일의 옷을 입도록 했고, 조단과 멀어진 나중에는 프라다와 구치로 또 한 번 스타일을 정제시켰다.

관전 포인트 하나 더! 이 영화에서 마약에 찌든 표정을 잘 표현해 골든 글로브 남우 주연상을 거머쥔 디캐프리오 외에도, 감칠맛 나는 연기로 주목 받은 조연이 많다. 장 뒤자르댕과 매튜 매커너히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2012년 영화 '아티스트'와 2014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통해 각각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kojin1231@naver.com


진경옥

동명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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