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 '판'] 범방산을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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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신부

구포성당에 부임한 이래 틈이 나면 인근 범방산에 오르는 편이다. 범방산은 백양산 자락의 야산이다. 구포성당에서 산 정상까지 왕복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라 오후에 여가가 있을 때 오르곤 한다. 얼마 전 산수유와 진달래가 수줍은 듯이 하나둘 꽃을 피우더니만 이상고온 현상으로 산수유, 진달래, 산벚꽃이 한꺼번에 활짝 꽃을 피우다 지난 비바람에 모두 졌다. 이제 철쭉이 봉오리를 내민다.

범방산은 오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작년 말에 나무 덱(deck)으로 무장애 숲길을 조성해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나의 경우 무장애 숲길보다 사람 발길에 자연스레 생겨난 산길을 주로 이용한다. 그 길은 이용하는 사람이 드물고 약간 가파르기에 한적하기 때문이다. 혼자 산에 오르다 보면 자연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최근에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내 존재를 묻게 되기도 한다. 정상에 오르면 내가 일하고 거처하는 성당도 한눈에 볼 수 있기에 내 삶의 자리를 거리를 두고 보게도 해 준다. 이 산을 오르는 시간은 내게는 휴식이요, 짧은 피정의 시간이기도 하다.

사실 현대인들은 홀로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더구나 요즘에 와서 우리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태블릿PC, 노트북 등 전자기기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전자기기는 거의 누구나 가지고 있기에 몸은 홀로 있지만 그 전자기기를 매개로 하여 외부세계와 연결되어 살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열에 일곱 내지 여덟 명은 스마트 폰에 얼굴을 묻고 있다. 어떤 이는 게임을 하고, 어떤 이는 SNS 서비스로 채팅을 하고, 또 어떤 이는 정보 검색을 하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보기도 한다. 밥을 먹을 때도 스마트폰 화면에 얼굴이 고정되어 있거나 혹은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을 때가 많다. 몸은 혼자 있지만 실상은 혼자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우리는 홀로 있는 시간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 홀로 있는 시간이 없으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자신만의 고유성을 잃어버린다. 스스로 생각하고 깊이 들여다보는 힘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와 깊이도 잃어버리게 된다. 가끔은 일부러라도 전자기기에서 해방되어 자연과 교감하며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 어떨까? 점점 짧아져 가는 이 찬란한 봄에 자연과 교감하며 자기 자신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좋겠다.

문성호 신부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 사제로 광주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1986년 2월 사제 서품을 받았다. 현재 구포성당 주임신부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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