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본 평화교역 상징 '초량왜관' 아십니까?"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새띠벌의 메아리' 창간 표지 사진. 부산초량왜관연구회 제공

왜관(倭館)은 조선 시대에 왜인(倭人)들이 머물면서 외교적인 업무나 무역을 하던 곳이다. 조선 정부가 일본과 선린 우호 정책을 유지하면서 우리 의지대로 일본 상인들을 통제했던 공간으로 지금의 서울과 부산, 울산 등에 있었다.

부산의 경우, 지금의 용두산 자락에 있었는데, 흔히 말하는 '초량왜관'이 바로 그곳이다. 초량왜관은 1678부터 1873년까지 200여 년간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부산에 있으면서도 왜관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설령, 안다더라도 정확하게 어느 곳에 있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량왜관을 연구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인 ㈔부산초량왜관연구회가 최근 소식지 성격의 계간지 '새띠벌의 메아리'를 창간, 초량왜관 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새띠벌의 메아리' 창간
부산초량왜관연구회
왜관 알리기 본격 나서


'새띠벌'은 초량(草梁)의 옛 이름으로 '억새와 띠풀이 우거진 벌판'이란 의미. 1678년 왜관이 들어서기 이전 용두산 주변 벌판은 억새가 띠를 이룬 넓은 벌판이었는데 여기에서 가져 왔다.

초량왜관 연구 모임으로 시작돼 올해로 창립 5년째를 맞는 부산초량왜관연구회는 지난해 '초량왜관 복원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한일 공동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지속해서 초량왜관 바로 알리기에 주력해 왔다.

부산초량왜관연구회 최차호 회장은 "초량왜관의 시대는 조·일 간에 가장 평화스러웠던 교역의 시대였다. 그런데도 양국 간의 쓰라린 기억 때문에 200년 이상 지속한 평화 교역의 역사를 팽개쳐서는 안 될 일이다. 패배주의 몽상에서 벗어나 이제는 부산 시민들이 초량왜관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창간호는 '초량왜관을 아시나요'(최해진), '초량왜관의 복원은 원도심 재생의 특별한 지름길이다'(강동진), '변박은 초량왜관도를 어떻게 그렸을까' 등 초량왜관 특집으로 꾸몄다. 정달식 기자 dosol@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