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문화재 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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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빛이 난다.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토양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남의 나라 문화재를 전시해 놓은 박물관은 포로수용소에 다름 아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유출된 문화재를 돌려받는 일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유네스코가 체결한 '불법 반출 문화재 반환 촉진 협약'에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적 국제주의자들의 반론도 만만찮다. '문화재는 인류 전체의 유산인 만큼 가장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영국·프랑스 등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문화재 반환은 이해 당사국 사이에 합의가 있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가 무려 15만 2천915점에 달하는 데도 달리 힘을 쓸 방도조차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를 돌려받은 과정도 그렇다. 문민정부 시절, 프랑스정부는 경부고속철도에 TGV를 도입하는 조건하에 의궤를 반환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무려 18년에 걸쳐 밀고 당기는 우여곡절을 거듭한 끝에 '5년 단위 임대' 형식으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이처럼 멀고도 험난하기 짝이 없는 문화재 반환 운동에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오는 25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국새인 '황제지보' 등 국보급 약탈 문화재 9점을 가지고 오겠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6·25 전쟁 때 미군들이 빼돌린 문화재를 장물로 압수한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에 돌려주겠다고 통보해 온 것이다. 그 바탕에는 최근 동북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공조가 절실하다는 현실적인 이해가 깔려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약탈당한 문화재를 되돌려 받는 일에 국책사업에 이권을 제공하고 안보 논리까지 고려되어야 하는 현실. 나라는 무조건 힘이 있고 볼 일이다. 정순형 논설위원 jun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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