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어처구니없는 대형 참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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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대형 여객선 참사가 발생했다. 유족과 실종자 가족은 물론 전 국민이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인천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을 포함해 모두 475명을 태운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해상에서 침몰했다. 세월호는 이날 오전 8시 40분께 진도군 관매도 남쪽 3㎞ 지점을 지날 때 뭔가에 부딪혀 기울기 시작했고, 2시간 40분 만인 11시 20분께 침몰했다. 이 사고로 17일 오전 10시 30분 현재 9명이 숨지고, 287명이 실종 상태다. 구조 인원은 179명에 그치고 있다. 해경과 해군, 어선들까지 합세해 이틀째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지만, 거센 조류와 흐린 시계로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다. 선실에 갇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박해진다. 구조대원들의 활약이 큰 성과를 거둬 실종자들이 모두 살아 돌아오길 모든 국민이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참사는 의문점투성이다. 어제 날씨도 괜찮았고 파도도 잔잔한 편이었다. 사고 원인이 아직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인재(人災)가 확실하다. 선박에 물이 들어차고 가라앉기까지 2시간여 동안의 탈출시간이 있었다. 그런데도 탑승자들이 무더기 실종됐다. 초동조치가 너무나 부실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선체가 기울어 사방에서 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컨테이너들이 무너져 승객이 깔리는 급박한 상황인데도 "객실에서 움직이지 마라"는 방송만 10여 차례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금쪽같은 시간을 1시간 이상 허비한 뒤에야 "여객선 침몰이 임박했으니 탑승객은 바다로 뛰어내리는 상황에 대비하라"는 방송을 했다. 이런 방송을 믿고 객실에서 기다리던 승객들은 대개 변을 당했다. 실제로 목숨을 구한 승객들은 방송을 믿기보다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뛰어든 쪽이었다. 선장과 선원들이 그 절박한 순간에 왜 엉터리 판단을 내렸는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의 책임의식도 도마에 올랐다. 이번 참사의 첫 사망자로 확인된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22·여) 씨는 마지막 순간까지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양보하는 희생정신을 발휘했다. 한 여학생이 "언니는 구명조끼 안 입느냐"고 묻자 박 씨는 "선원들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들 다 구해 주고 나중에 난 나갈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책임자인 선장 이준석(69) 씨는 일찍 사고 선박을 떠났다. 비교적 일찍 구조돼 구명보트에 오른 승객은 "선장이 나보다 먼저 보트에 타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구명조끼를 나눠 주는 다른 승무원들을 잘 보지 못했다는 학생들의 증언도 잇따랐다.

정부도 보기 민망할 정도로 우왕좌왕했다. 중앙대책본부는 어제 오후 2시에 368명이 구조됐다고 했다가 오후 4시 30분 164명, 오후 11시 175명으로 오락가락했다. 그에 따라 실종자 수도 춤을 췄다. 탑승인원조차 477명에서 459명, 462명 등으로 왔다 갔다 했다. 가장 기본적인 사람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무능한 대책본부를 우리 국민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구조활동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런 한편으로 재발 방지 조치를 취해 나가야 한다. 우선 해경은 사고 선박 선장과 승무원, 선사를 상대로 항로 이탈, 안전조치 미흡 등 규정 위반 여부를 정확히 수사하고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려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지난 2월 17일 부산외국어대 학생 등 10명이 숨진 경북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고 이후 전국적인 안전 점검을 해 놓고도 이런 참사가 왜 재발됐는지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거슬러 올라가 292명이 떼죽음당했던 1993년 10월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이후 20여 년이 지났는데도 후진국형 대형 참사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야말로  총체적인 안전불감증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게 박근혜 대통령이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꿀 정도로 국민 안전을 강조한 취지에도 부합하는 길이다.

우리는 참담한 심정으로 비명에 간 넋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청소년들을 제대로 지켜 주지 못하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국민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사회에는 미래도 없다는 점을 우리 모두 깊이 되새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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