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대왕 메기 이야기] 강태공들 '전설'을 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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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파란 인광을 켜고 물밑에서 사람 덩치만 한 검은 물체가 일렁거리는 것을 누군가가 봤다면 틀림없이 강에 괴물이 산다고 했을 것이다. 목격담은 부풀려지고 윤색되어 구전되면서 전설이 된다. 경남 창녕군 남지철교 절벽바위 밑이나, 밀양시 초동면 곡강리 새랑바위 아래, 양산시 원동면 가야진사 앞 용소는 수심이 깊어 예나 지금이나 대형 메기가 서식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메기는 수염이 고양이의 그것과 비슷해서 영어로 '캣피시(Catfish)'로 불리며, 강계의 대표적 최상위 포식자 '몬스터 물고기'다.


■몬스터를 만난 사람들

라팔라 필드 스태프 박성준 씨는 2년 전 이맘때 배스 낚시를 하기 위해 대구 화원 유원지 인근 낙동강으로 갔다. 일요일 늦은 오후에 낚시를 시작해서 이미 해가 기울었다. 루어 채비 몇 개가 밑걸림이 생겨 떨어졌다. 밤 10시가 되었을까. 직벽 쪽으로 캐스팅을 했다. 제법 무게가 있는 28g짜리 스피너베이트로 채비를 바꿔 던진 박 씨는 천천히 릴을 감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밑걸림이 생긴 것이다. '채비 하나 또 해먹는구나'하는 생각으로 릴을 감는데 '꿈틀'거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상상도 하지 못한 거대한 힘과 맞겨루기를 시작했다. 릴에 물을 뿌려가며 30분을 버틴 끝에 물 밖으로 끌어올린 놈은 배스도, 잉어도 아닌 1.28m급 메기였다. 낚시로 잡은 최대어 메기가 탄생한 순간이다.

낙동강 하류지방의 창녕과 밀양 인근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오메기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주남저수지에서 쪽배를 타고 심심풀이로 주낙을 놓아 붕어와 뱀장어를 잡던 노승규(74) 씨는 주로 새벽에 주낙을 걷으러 나간다. 한번은 노를 살살 저어 낚시를 둔 곳으로 가는데 뭔가가 물밑에서 일렁였다. 눈에 인광을 켠 검은 물체가 꼬리를 치자 쪽배가 기우뚱했다. 그길로 혼비백산 뭍으로 나온 노 씨는 다시는 쪽배를 타지 않았다고 했다. 40년 전의 경험담이다.

낙동강에서 어선으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은 최근 들어 종종 오메기를 잡는다. 잘하면 1년에 한 마리 정도는 볼 수 있다고 한다. 지난 2006년 밀양시 하남읍 수산대교 아래에서 그물로 1.15m짜리 오메기를 잡았던 강봉태 씨는 지난해에도 미터급 대형 메기 2마리를 잡았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큰 대형 토종메기는 있을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북미에서 양식을 위해 도입한 찬넬메기가 대형어로 성장하기 때문에 이를 오인한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 이완옥 박사는 토종메기도 얼마든지 대형어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토종메기는 유럽산 대형 메기와 같은 종으로 서식 조건만 맞으면 얼마든지 성장을 한다는 것이다.

서울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살고 있는 1.17m 길이의 대왕 메기. 지난 2008년 루어낚시인이 잡아 기증했다. 30㎝ 길이의 배스를 매일 3마리씩 잡아먹을 정도로 식성이 좋다. 코엑스 제공

■오메기의 실체를 밝힌다

이 박사는 "메기는 보통 30~40㎝면 성체가 되어 알을 낳는데 10년 이상 자라면 1m까지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 종의 유럽산 메기 중에는 최대 3m 크기도 포획됐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 박사는 "몇 년 전 러시아에서 잡힌 대형 메기를 '체르노빌 메기'라며 방사능 오염의 돌연변이종이라고 각종 매체들이 소개했는데 이는 메기를 잘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 엉터리 기사였다"며 "국내 메기도 2m 이상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간혹 발견되는 대형 찬넬메기는 북미에서 양식하기 위해 기른 도입종으로 한국에서는 자연 부화하지 않는다고. 동자갯과의 찬넬메기는 수염이 3쌍으로 2쌍인 토종메기나 4쌍인 동자개와 생김새가 다르다.

메기는 이빨이 상어처럼 안으로 굽어 먹이를 좀체 놓치는 법이 없다. 긴 수염은 촉수 역할을 해서 어두운 밤이나 흐린 물에서도 사냥이 가능하다. 뛰어난 사냥 실력은 덩치가 커지면서 육상동물을 공격할 정도가 된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는 한국의 오메기 전설과 유사한 식인 메기 이야기가 있다. 인도의 식인메기 '군츠'가그렇고, 프랑스 툴루즈 시의 탄 강에 사는 대형 메기는 비둘기를 쉽게 낚아챈다고 한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대형 웰스 메기를 잡을 때 고양이를 미끼로 쓴다고 한다. 다 자라면 크기가 3m에 무게가 300㎏ 이상 나가는 이 메기는 들짐승은 물론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의 괴물이다.

'메기 효과'는 미꾸라지가 들어 있는 어항에 메기를 집어넣었을 때, 미꾸라지들이 피해 다니느라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생기를 유지하는 현상을 기업 경영에 빗대, 강력한 경쟁자가 생겼을 때 기존 기업들의 경쟁력이 더 강해지는 현상을 설명한 용어인데, 이래저래 메기가 두려운 존재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낙동강의 또 다른 몬스터들

오메기는 옛날부터 존재한 대형 메기이니 존재 자체가 신비로울 뿐이다. 또한 수중 생태계에 잘 적응했고 개체 또한 드물기 때문에 강한 포식력을 가져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낙동강에는 최근 새로운 포식자들이 설치기 시작했다. 외래 도입종인 배스와 블루길? 아니다. 이들 물고기보다 더 강한 번식력으로 낙동강을 주름잡는 물고기가 강준치와 끄리다.

강준치와 끄리는 원래 낙동강에는 살지 않은 어종들이란다. 강에 보가 생기고, 댐이 생기고 한강이나 금강에서 살던 물고기들이 인위적으로 이식되면서 낙동강의 수중 생태계에 일대 혼란을 야기한 것이다.

강준치는 다 자라면 1m가 훌쩍 넘는데, 주로 피라미나 갈겨니 등 수면에 떠서 움직이는 물고기를 사냥한다. 끄리는 30~40㎝ 정도 자라지만 뫼 산(山)자 모양의 단단한 주둥이가 자기보다 작은 물고기를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한다.

국립수산과학원 생물다양성연구소 김치홍 박사 팀이 지난 2012년 한국어류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경남 양산 물금지역 낙동강의 우점종은 강준치(47.7%)였고 아우점종은 끄리(21.2%)였다. 그 다음은 블루길(12.2%)로 토종 외래종이 68.9%를 차지했고 그 다음이 외래어종이었다. 피라미나 참몰개 등 고유종은 극소수였다.

이용재 삼랑진 어촌계장은 "맛도 없고 돈도 안 되는 강준치와 끄리 때문에 붕어나 피라미 등 작은 물고기들의 씨가 말랐다"며 "배스나 블루길도 문제이지만 강준치나 끄리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자연환경복원기술연구소 김정오 소장은 "한강 수계에 살던 강준치나 끄리가 30년 전쯤 안동 임하호 양식 어류에 섞여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낙동강에 보가 많이 생겨 호수화되면서 이런 조건을 좋아하는 강준치와 끄리가 우점종이 된 듯하다"고 주장했다.

토종이든 외래어종이든 제 살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등장하면 생태계에 일대 혼란이 온다. 자연의 선택을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새로운 '낙동강 몬스터'는 인간의 탐욕이 빚은 비극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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