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셔틀콕' BIFF 조명 받고 봄나들이 나선 두 편의 '명품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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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타이거픽쳐스 제공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BIFF) 화제작들이 잇따라 봄나들이에 나선다. 비수기를 맞아 국내와 해외의 대작들이 개봉 시기를 저울질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간 틈을 비집고 '명품 독립영화'들이 관객과 만남을 시도하고 나선 것이다. 이미 BIFF에서 품질을 검증받고, 해외 순례에서 호평을 받은 터라 영화제 때 '아차' 하고 관람을 놓친 마니아들로선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오는 24일 개봉되는 '10분'과 '셔틀콕' 속으로 들어가 봤다.

■출근을 인생 목표 삼은 청춘의 생활백서

정규직 제안 받은 공공기관 인턴사원
'직장 안주'·'꿈 좇기' 선택의 고민

먼저 눈길을 끄는 작품은 이용승 감독의 데뷔작 '10분'. 지방 이전을 앞둔 공공기관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게 된 주인공이 정규직으로 쓰고 싶다는 회사의 제안에 흔들리게 되지만 엉뚱한 사람이 정규직으로 입사하게 되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방송국 PD가 되고 싶은 호찬(백종환)은 한국콘텐츠센터에 6개월 인턴으로 취업한다. 허드렛일과 밤샘 근무, 주말 등산을 마다하지 않으며 성실성을 인정받은 그는 한 직원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채용공고가 나자 부장과 노조지부장이 지원할 것으로 독려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생각해 꿈을 포기하고 정규직 입성을 준비하지만 원장의 후광을 받은 여자가 '낙하산'으로 자리를 꿰찬다. 사람들은 한때 '부당한 인사'라며 분노하며 영원히 호찬의 편에 설 것 같았지만 예쁘고 친화력 좋은 여자 정직원의 등장에 호찬을 점점 백안시하는데…. 

10분. 타이거픽쳐스 제공
소위 '88만 원 세대'인 이 감독의 자전적 내용을 담은 영화는 '출근'을 인생 목표로 삼은 이들을 위한 생활백서로 '10분' 안에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남자의 슬픈 이야기를 전해 준다. 수많은 젊은이의 청춘과 꿈을 담보로 잡은 채 정규직 취업이라는 지상 목표를 향해 달려가게 하는 현실과 비정규직 혹은 계약직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는 비루한 현실을 촘촘하게 곁들인다.

이렇다 할 재주를 부리지 않았음에도 영화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은 놀랍도록 사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재치 있는 연출력에서 출발해 생활밀착형 유머감각, 직장 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촌철살인의 대사들이 쉴 새 없이 폭소와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 제목 '10분'은 부장이 호찬에게 '정규직으로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주어진 시간에서 따왔다. 안정된 직장에서 안주할 것인지, 아니면 꿈을 쫓아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지난해 BIFF에서 KNN관객상,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한 뒤 올들어 베를린, 브졸, 피렌체, 홍콩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좌절로 끝난 두 형제의 희망 찾기

재혼 부모 사망 보험금 갖고 잠적
이복 누나 찾아 나선 두 형제 이야기


이유빈 감독의 '셔틀콕'은 재혼한 부모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마지막 남은 유산인 사망보험금 1억 원을 들고 사라져 버린 누나를 찾아 나선 두 형제의 이야기다. 17세 소년 민재와 남동생 은호가 사고로 부모를 잃은 후 보상금 1억 원을 가지고 사라진 이복누나 은주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려 낸다. 재혼한 부모가 사고로 숨지자 홀로 남게 된 3남매 민재(이주승), 은호(김태용), 은주(공예지). 맏이 은주는 보험료 1억 원을 챙겨 종적을 감춘다. 
셔틀콕. KT&G 상상마당 제공
어느 날 인터넷에서 은주의 모습을 보게 된 민재와 은호는 그녀가 있는 경남 남해로 길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남해에 도착한 둘은 마트에서 일하는 은주의 모습를 발견하는데….

흥미로운 설정과 깊은 여운을 스크린에 담아낸 '셔틀콕'은 시작부터 꽃놀이하는 두 남녀에 주목한다. 화사한 벚꽃과 두 남녀의 정겨운 웃음소리 속에선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젊은 연인의 모습이다. 
셔틀콕. KT&G 상상마당 제공
하지만 둘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남매 사이였기에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이고 재혼한 부모로 인해 생겨난 비극이다.

로드무비로 버무려 낸 이 작품의 주인공 민재에겐 희망과 불안이 공존한다. 서울을 출발해 서산, 당진, 전주를 거쳐 남해까지 은주라는 희망을 찾아 길을 떠난 그. 하지만 불안한 여정 속에서 낯선 공간, 낯선 풍경을 지나치며, 낯선 이들과 부딪치고 끝내 원하던 것을 찾지 못하고 좌절하고 만다. 부모, 돈, 그리고 사랑을 잃은 민재의 상실감이 전편에 깔린다.

먼 길을 함께 떠난 민재와 은호의 형제애는 영화의 또다른 축이 된다. 이복형제 사이인 둘은 긴 여정을 통해 '진짜 형제'로 거듭난다. 돈이 없어 휘발유를 훔치고, 자동차 수리비를 내지 않고 도망가는 에피소드들로 둘은 끈끈한 유대감으로 뭉친다. 다만 극 중반을 넘어 은호의 게이 성향이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방향으로 다른 쪽으로 흘러간다.

마치 일본 멜로의 귀재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감각적인 영상이나 인물의 감정선을 파고드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싱어송라이터 짙은의 '히어로' 뮤직비디오에 '셔틀콕' 영상이 삽입돼 눈길을 끌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해 BIFF에서 넷팩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과 시민평론가상을 비롯해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이주승)을 수상했다. 김호일 선임기자 tok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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