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뉴 부산 시네마'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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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근 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우리는 허위로 가득 차고 세련되며 호화로운 영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거칠고, 세련되지 않지만 살아 있는 영화를 원한다. 우리는 영화가 핏빛이기를 원한다."

뉴욕발 '뉴 아메리칸 시네마 그룹' 혁명

1960년 9월 28일 뉴욕에서 실험영화의 대부 조나스 메카스를 필두로 23명의 독립영화 감독, 제작자, 배우, 극작가들로 결성된 '뉴 아메리칸 시네마 그룹'의 선언문 일부분이다. 이 그룹은 이전까지 할리우드 영화로 대변되던 상업영화 틀에서 벗어나 주제나 기술적 면에서 새로운 미국 영화 모델을 제시했다.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 마이클 니콜스의 '졸업'(1967),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자브라스키 포인트'(1970) 같은 일련의 뉴 아메리칸 시네마 영화들은 관객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대기업 투자. 배급사 독과점, 이에 따른 획일화, 그리고 불공정 관행의 심화들은 한국영화계의 문제점으로 꾸준히 지적돼 왔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 서울에서 영화 창작자와 제작사의 권리와 권익을 지키기 위한 의미 있는 설명회가 열렸다. 설명회를 주관한 '리틀빅픽쳐스'는 재벌기업의 스크린 독과점 등 한국 영화산업의 수직적 산업구조로부터 독립해 영화산업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설립한 대안적 배급사이다. 리틀빅픽쳐스는 이번 설명회에서 제작사에 영화 개봉 수익의 40% 보장, 개봉 5년 후 판권 귀속, 영화 상영 종료 후 60일 이내 정산 등 기존 영화계에서 상대적으로 보장 받지 못한 창작자(제작사)의 권익을 보장하는 정책을 약속했다. 이는 현재 CJ CGV와 롯데시네마가 총 스크린 수와 좌석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영화인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마련한 자구책이라고 볼 수 있다.

부산에서 영화하는 사람으로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나는 자본화 논리에 귀속되지 않으려는 자구책을 응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산의 영화제작 현실을 떠올리며 암울해지기도 한다. 서울 영화계에서 논의되는 일련의 한국영화 제작 활성화 방안이 과연 부산에도 적용이 되는가? 한국 영화라고 하면 어느덧 서울 영화가 되어 버린 현실에서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한 모색과 방안은 과연 어느 범위까지를 포함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다 같이 모여 '뉴 부산 시네마 선언'을 해 보자. 뉴 아메리칸 시네마를 떠올리면 지역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실마리 같은 것을 어렴풋이 보게 된다. 뉴욕발 뉴 아메리칸 시네마는 오늘날 미국 영화의 양적 성장만큼이나 질적 외연을 넓히는 상호 보완적인 축이 되었다. 부산에서도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은 부산에서

'영화관객 1억 명 돌파' 운운하는 한국영화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를 답습해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반론의 여지야 있겠지만, 자본 논리에 따른 영화소재 선택과 스토리텔링에 입각해 표준화된 영화 문법을 답습해 가는 이른바 할리우드식 공정(?)을 닮아가고 있다. 부산에서는 한국 영화의 새로운 모습, 새로운 환경,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할리우드의 대안이 되었던 뉴욕의 경우처럼 말이다.

부산영화도 영화의 본질에 관한 치열한 고민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호적 투자처를 스스로 만들어 그들과 함께 독자적인 투자·배급라인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물론 부산 영화인들에게 모든 숙제를 맡겨 버리자는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영화협동조합' 설립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가 왔다. 영화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고 로컬 스탠더드이다. 변방의 작은 이야기가 전 세계를 울릴 수 있는 것이 영화다.

지역이라서가 아니라, 지역이기에 가능한 영화제작 환경을 우리 스스로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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