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면] 한계를 뛰어넘는 식물의 생존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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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본성 / 존 도슨·롭 루카스

단단히 조여 감는 환상 뿌리를 갖고 있는 착생식물 메트로시데로스 로부스타(뉴질랜드). 지오북 제공

열대림은 식물과 동물이 모여 사는 지구에서 가장 큰 복합체다. 식물은 엽록소가 빛에너지를 만나 스스로에게 필요한 양분을 생산하는 광합성으로 먹고사는데, 빽빽하게 자란 키 큰 나무들의 그늘에 가린 키 작은 나무들은 어떻게 빛을 만나 광합성을 할 수 있을까. 작정을 하고 해를 가렸던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수가 있다.

덩굴식물은 교목과 관목을 타고 하늘에 올라 빛을 만난다. 착생(着生)식물은 기어오르는 과정마저 아예 생락한 채 큰 나무 위에서 싹을 틔운다. 일부는 큰 교목과 관목에 붙어서 지면으로 뿌리를 내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토양에 닿지 않은 채 스스로 저장할 수 있는 양의 물에 의지해 수분을 잘 보존하면서 건조한 시기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빛을 찾아 나선 식물들의 생애 투쟁이 놀랍기만 하다.

식물의 본성 / 존 도슨·롭 루카스
사진에 보이는 메트로시데로스 로부스타는 뉴질랜드, 뉴칼레도니아, 태평양의 작은 섬들에 사는 착생식물인데, 땅에 뿌리를 내린다. 악어 같은 파충류처럼 나무에 들러붙어 뿌리를 아래로 내리며 조이는 품이 흡사 동물을 연상케 한다. 전세가 역전되어 착생식물의 그늘 아래에 들어간 교목은 햇빛을 못 본 채 시름시름 앓다 고사하기도 한다. 착생식물의 뿌리가 조여서 나무를 죽였다고 보지만 착생식물이 성장하는 동안 수명이 다해 죽은 것일 뿐이라고 보는 식물학자도 있다. 어쨌든 식물의 세상살이도 사람 못지않게 못내 고달픈 것이다.

'식물의 본성'은 한계를 뛰어넘는 식물들의 생존 드라마를 다루고 있다. 세상이 식물이 살기에 좋은, 햇빛 잘 들고 물 넉넉한 곳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키 큰 나무들에 가려 빛 한 조각 제대로 들지 않는 숲 속이나 비가 와도 고일 새 없이 사라져 버리는 모래땅, 물이 흘러넘쳐 숨조차 쉴 수 없는 해변과 범람원, 모든 것이 꽁공 얼어붙어 싹 틔울 흙도 물도 없는 극지 등 식물이 살기에 악조건이라 할 수 있는 곳이 지천이기 때문이다. 35억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식물이 번성해 온 비법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의 대부분을 식물에게서 얻고 있지만 식물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식물이 그들의 번식을 위해 피우는 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인간 중심에서 만끽하고, 숲에서 휴식을 취할 뿐이다. 옮긴이 홍석표(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인간 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이해의 폭이 커져 좋은 관계로 발전하듯 식물 역시 마찬가지인데, 주변의 식물을 보고 만족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본성을 잘 알게 되면 자연에 대한 지식의 확장과 더불어 감동도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존 도슨·롭 루카스 지음/홍석표 옮김/지오북/328쪽/2만 8천 원.

임성원 기자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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