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옥의 시네마 패션 스토리] 38. 어톤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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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깊숙이 파인 그린 드레스, 우아함·유혹·섹시함 표현

할리우드 영화에 소개된 드레스 중 최고 작품으로 평가받은 키이라 나이틀리(세실리아 역)의 그린 실크 드레스. 등이 깊게 파이고 몸에 딱 붙는 피팅감이 특징이다. 진경옥 씨 제공

할리우드 영화에서 역사상 가장 멋진 의상으로 평가받은 것은 조 라이트 감독의 2008년 작품 '어톤먼트'에 나온 에메랄드 그린 실크 드레스다. 영국 TV네트워크와 패션잡지 '인스타일'과 '보그', 연예정보지 '베니티 페어', 시사주간지 '타임' 등이 공동으로 선정한 결과다.

여주인공인 키이라 나이틀리(세실리아 역)가 입은 이 실크 드레스는 메릴린 먼로가 '7년 만의 외출'에서 선보인 화이트 드레스, 오드리 헵번이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소개한 검정 드레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영화 '타이타닉' 이후 가장 가슴이 아픈 로맨스라는 평가를 받은 '어톤먼트'는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2002년 동명 소설을 토대로 했다. 전쟁이라는 현실과 신분을 넘어선, 아름답고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는 세실리아의 동생 브라이오니의 질투가 빚은 거짓 증언에서 비롯된다.

어톤먼트(Atonement)는 '속죄'를 뜻한다. 브라이오니가 세실리아와의 사랑을 방해하기 위해 로비 터너(제임스 매카보이 분)에게 강간범 누명을 씌워 두 사람을 떼어 놓았는데, 결국 그 둘이 죽으면서 속죄하고 참회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뛰어난 영상미와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으로 시대극에서 볼 수 있는 장중함과 섬세한 심리 묘사, 흥미진진한 스릴러가 돋보인다. 덕분에 2008년 골든글로브와 영국아카데미 작품상, 미국 아카데미 음악상과 미술상을 수상했다.

의상은 영화 '안나 카레니나'로 2013년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은 코스튬 디자이너 재클린 듀런이 맡았다. 그는 1935년 꽃과 빛으로 가득 차고 행복이 넘친 시절과 2차 세계대전 시기의 무겁고 어두운 시절을 의상으로 대비시켰다.

특히 세실리아가 선보인 에메랄드 그린 실크 드레스는 무엇보다 우아하다. 소설에서 묘사했듯이 물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의 이 옷은 여신의 드레스 같다. 세실리아와 로비가 뜨거운 장면을 연출한 여름밤의 드레스이자, 아름답고 비극적인 결말의 터닝 포인트가 된 드레스이기도 했다. 부와 귀족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보여 준 녹색은 영화의 주제가 되는 색상이다. 후문에 의하면 장면에 맞는 녹색을 표현하기 위해 100마(1마=91.44㎝) 이상의 흰 비단에 변화를 조금씩 주는 실험을 거듭했다고 한다.

세실리아의 몸에 살짝 걸친, 거의 누드 느낌이 나는 드레스는 우아함과 유혹, 젊음, 섹시함을 드러낸다. 깊숙이 파인 등판과 바닥까지 끌린 스커트 뒷자락은 그 시대의 스타일을 반영했다. 이 옷은 특히 벨 에포크 시대의 유명한 쿠튀리에르인 잔 파퀸의 1930년대 의상과 아주 비슷하다. 이 바이어스 컷과 부드럽게 드레이프 된 의상은 잔 파퀸의 특성을 고스란히 나타냈다. 스파게티 어깨끈과 힙 부분의 리본도 마찬가지다. 이 시기엔 전쟁으로 지퍼 사용이 금지됐다. 영화를 볼 때 전쟁 시기의 의상들에 지퍼가 달렸는지 아닌지를 눈여겨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라고 하겠다.

녹색 드레스 외에 잠자리날개 같은 기운이 느껴지는 세실리아의 시스루 실크 꽃 문양 블라우스와 스커트는 재클린 듀런이 녹색 드레스보다 더 심혈을 기울인 의상으로 알려졌다. 그가 연못으로 뛰어들 때 입은 실크 속치마와 흰색 원피스형 수영복, 모자는 나체 느낌을 위해 스트레치 소재로 만들었다. 실제로 나체처럼 보인다. kojin1231@naver.com


진경옥

동명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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