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탈출] 산청서 만난 '조식·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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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파에 쪼잔해진 마음, 남명의 삶 앞에서 맑아지다

남명 조식 선생이 61세 때 지리산 자락에 세운 산천재는 화려한 치장 없이도 여행자의 마음을 붙드는 힘이 있다. 앞마당 '남명매'가 꽃잎 활짝 펼쳐 선생의 14세손 조종명 씨를 반겼다.

봄꽃 좋은 날, 남명 조식 선생을 좇아 산청 여행을 떠났다. 선생에게 있어 최고였을 산천재 시절이 거기 있다. '남명행'을 택한 건 영화 '변호인'의 여운이 남아서였다. "국가가 뭔지 몰라?" "압니다, 너무 잘 알지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다들 울컥했던 그 대사. 너무 당연한, 그러나 어제의 우리에겐 참으로 절실했던 그 말의 울림은 컸다.

오백 년 전, 임금이 하늘이었던 그때, 선생은 토씨만 달랐지 무엄(?)하게 그 말을 쏟아냈다. 선생은 '민암부'에서 적고 있다.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 선생은 벼슬길 버린, 지조와 기개를 간직한 평생 처사였다. 산천재 앞마당 매화는 꽃잎을 활짝 벌렸고 선생이 흠모했을 지리산 천왕봉은 숙연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구암 허준 선생의 이력을 밟는 일 또한 즐겁다.


■산천재에서

산천재 처마 뒤쪽 첩첩능선 너머로 지리산 천왕봉이 자리했다. 아니, 천왕봉이 있어 산천재가 이곳에 터를 잡았다. "옛 마루에 앉아 바람을 맞으면 차분해져, 천왕봉 감상하던 선생 마음이 어떠했을지…." 남명 14세손 조종명 어르신이 읊조렸다.

벼슬길 버리고 평생 지조 간직한 남명
지리산 유독 좋아해 10여 차례나 올라
말년 보낸 산천재 들르면 가슴 뚫리는 느낌

'2014 한국관광의 별' 후보 동의보감촌
한의학박물관·테마공원·자연휴양림
다양한 즐길 거리로 가족나들이에 제격


남명은 지리산을 유독 사랑했다. 유람록 '유두류록(遊頭流錄)'을 남겼다. 여묘살이를 끝낸, 그러니까 28세 때 지리산에 첫발을 올린 후 58세까지 12차례나 산을 탔다. 문헌이 전하는 숫자만 그렇다. "산수를 탐했겠지만 여생 보낼 곳을 찾았던게지, 끝내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아." 어르신 말이다. 그래도 61세 되던 1561년, 남명은 천왕봉을 곁에 둔 이곳에 산천재를 지었다. 곽재우 등 제자 100여 명을 여기서 가르쳤다. 운명도 여기서 했다. 남명이 마지막까지 제자에게 신신당부했던 사후 칭호는 '처사'였다.

산천재는 팔작지붕을 인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이다. 규모가 작고 소박하다. 퇴계와 어깨를 견준 남명의 무게에 비춰 단출하다 싶을 정도. 앞 마당 고목에 핀 매화가 봄바람에 흩날렸다. '남명매'로 불리지만 실제로 남명이 심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산청 삼매(三梅)' 중 하나로 탐매객을 붙들 뿐이다.

기자에게 산천재 방문은 처음이 아니다. 네 번쯤. 올 때마다 느끼지만 가슴이 열리고 넉넉해진다. "왜 그럴까요?" "글쎄, 담벼락이 없어선가?" 어르신 말마따나 산천재 앞쪽으로 울타리가 없다. 그냥 뻥 트였다. 앞 강 덕천강을, 앞 산 구곡산과 비룡산을 막힘없이 볼 수 있다. 가둠이 없으니 갑갑하지 않다. 거침없이 왕실과 조정을 비판했던 남명을 닮았다.

남명은 명종이 단성현감 벼슬을 내리자 그 유명한 '단성소'를 올린다. 거절하는 사직소인데, 내용이 파격적이다. '나라가 곪았다, 문정왕후는 한낱 과부요, 명종은 고아에 불과하다.' 산천재 맞은편 남명기념관에서 단성소 전부를 만날 수 있다.

지난 2월 남명학연구원이 산천재 입구에 남명 사상을 집약한 비석을 세웠다. 비문은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者義).' 이 여덟자는 남명 그 자체다. 안으로 올곧은 게 경, 밖으로 실천하는 게 의란 뜻이다. 선비인 남명은 언제나 칼을 곁에 두고 다녔다. 그 패검에 이 여덟 자를 새겼다. 해서 '경의검'이다. '성성자'라는 방울도 허리춤에 달고 살았다. 성성자(惺惺子). 깨어 있고 깨어 있으라. 준열한 자세이겠다. 경의검과 성성자는 남명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진품이 아니고 10년 전 복원했다.

남명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덕천서원.
산천재에서 시천면사무소 방면으로 5분쯤 달리면 덕천서원이 나온다. 1576년 조성됐으나 임진왜란 때 불 타 중건됐다. 남명 기리는 서원이니 앉은 품이 반듯하고 정갈하다. 해질녘 서원 앞길 건너 세심정에서 바라본 덕천강은 잊을 수 없는 풍경이다.

세심정 '욕천(浴川)' 시비 앞에 서면 자연히 옷깃을 여미게 된다. '사십 년 동안 더럽혀져 온 몸/천 섬 되는 맑은 못에 싹 씻어버린다/오장 속에서 만약 티끌이 생긴다면/지금 당장 배 쪼개 흐르는 물에 부쳐 보내리.' 남명의 삶은 그러했다. 한결같이 정연했고 한결같이 깨끗했다. 색색 봄꽃 핀 지리산을 상춘하다 눈멀미 나거든 산천재에 들러 볼 일이다. 허름한 살이로 쪼잔했던 마음이 어쩐지 맑아진다.


■동의보감촌에서

동의보감촌은 산청IC에서 10분 거리. 자연휴양림, 테마공원, 산청한의학박물관 등으로 구성됐다. 지난해 산청한방엑스포가 열렸던 곳이다. 지난달엔 한국관광공사의 '2014 한국관광의 별' 문화관광자원 후보로 선정됐다.

동의보감촌 내 약초테마공원.
동의보감촌은 즐길 거리가 적지않다. 기운 받는 기 체험장, 호젓한 산책 길, 유쾌한 사슴목장, 지리산을 100분의 1로 축소한 대침 조형물, 호랑이 분수가 있어 가족 나들이로 제격이다. 문화해설사 성순용 씨는 약초테마공원을 자랑했다. 감국이며 패랭이꽃이며 식물 이름표가 가득하다. 주변 16만㎡엔 구절초가 심어져 있다. 가을엔 이곳에 하얀꽃 세상이 펼쳐진다.

산청한의학박물관 전시실.
동의보감촌의 중심은 산청한의학박물관이다. '동의보감'과 구암 허준을 한눈에 만난다. 1층에선 동의보감과 구암의 의료활동 모습을, 2층에선 아이들이 약초 퀴즈 풀며 한의학 세계를 가볍게 맛볼 수 있다.

박물관을 돌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구암은 산청 출신이 아니다. 산청에서 의술을 벌인 기록도 없다. 그런데도 허준은 산청의 인물이다. 영문이 뭘까. 미리 밝히자면 역사와 소문, 허구의 합작품이다. 산청한의학박물관 김요한 학예연구사의 설명은 대체로 이렇다.

구암은 침보다 약재에 능했다. 약재 많은 곳이 지리산이다. 구암이 약재 구하러 지리산의 산청을 들렀겠다. 류의태라는 인물도 구암과 산청을 잇는 장치다. 구전되길, 류의태는 구암이 살았던 그 무렵 경상도에서 신의(神醫)로 통했다. 산청이 주무대였다. 여기에 설화가 끼어든다. 신의가 당대 명의를 키웠을 터. 더구나 구암의 할아버지가 경상도 우수사를 역임했고 할머니가 진주 출신이란 게 힘을 더한다. 그럴듯한 짐작은 세월 따라 이어진다. 이런 흐름 속에서 1990년 발간된 '소설 동의보감' 작가 이은성 씨는 류의태와 구암을 사제지간으로 묘사했다. 작가가 참고했던 논문도 마찬가지. "1539년생인 구암은 역사서에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죠, 첫 등장은 1571년, 종4품 관직인 내의원을 맡으며 시작됩니다, 구암 나이 33세 때입니다. 그 이전 기록은 아직까지 공백 상태에 가깝죠."(김요한 학예연구사) '소설 동의보감'은 구암의 청년시절, 즉 비어 있는 30년을 주로 다뤘다. 결국 작가적 상상력으로 메운 셈이다.

동의보감촌 뒤 왕산엔 류의태가 물을 떴다는 약수터가 있다. 장군수라 한다. 구암 또한 그 약수터를 애용했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진실은 설명될 길이 없다. 덮어 두자. 중국과 일본에서도 출판된 동의보감의 가치는 변함이 없고, 동의보감촌은 분명 둘러볼 만하다. 글·사진=임태섭 기자 tslim@busanilbo.com

TIP

■길찾기

남해고속도로~진주JC~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단성IC~시천 방면 우회전(단성IC 삼거리)~남사예담촌~시천 방면 우회전(사리교차로)~시천면 산천재.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산청IC~대원사 방면 우회전(산청 약초판매장)~동의보감로~금서면 동의보감촌.

대중교통은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1577-8301)에서 산청시외버스터미널(055-972-1616)까지 2시간 20분 걸림. 오전 5시 40분부터 오후 7시 40분까지 30~50분 간격으로 운행. 1만 1천900원. 산청시외버스터미널∼동의보감촌은 화계(방곡) 방면 군내버스로 20~25분 걸림. 1천150원. 산천재는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1577~8301)에서 중산리·대원사 방면 버스를 이용해 덕산에서 내리면 된다. 2시간 10분. 오전 6시 10분부터 오후 6시 20분까지 7차례 운행. 1만 1천700원. 대신 덕산정류장에서 산천재까지 1.2㎞를 걸어야 한다. 시천면에서는 군내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연락처(지역번호 055)

산청군 문화관광과 970-6401.

남명기념관 973-9781.

동의보감촌관리사업소 970-7201/7211.

임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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