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 이메일] 백인 우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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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아들이 한 미국 여자아이를 좋아한다. 아들이 여자 친구가 있냐고 미국인 친구가 물어왔을 때 아직은 레고와 축구에만 신경 쓴다고 답한 직후쯤이다. 아이 아빠는 평소 "동양남자는 백인 여자애한테 차이기 십상이니 신경 끊고 공부에 전념하라"고 조언한다.

하루는 저녁을 먹다 큰아이가 대뜸 서운하다고 말을 꺼냈다.

"야, 너 메이시한테 고백했다면서. 비겁하게 나한테 말도 안하고 나도 소문 듣고 알았어." "인스타 그램 DM (Direct Message)으로 고백했어."

SNS로 사랑고백을 하다니 신세대는 다르구나 싶었다. 작은 아이는 영어와 운동도 잘하고 영리하면서 약간 당돌하고 뻔뻔스러운 편이다. 학교 우수반의 백인 아이들과 주로 어울린다.

어느 날 백인 친구들이 자기를 무시했다고 한다. "너는 운동도 잘하고 스마트하고 인기도 있는데 왜 여자 친구 안 사귀니. 황인 제니 박이나 중국계 로렌은 어때."

"친구들은 내가 황인이니까 황인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난 백인 여자애랑 사귀고 싶지 제니나 로렌은 별로야."

이 당돌한 녀석이 인종적인 이유로 황인 여자친구를 사귀라는 말에 발끈했을 것이다. 그러다 녀석에게 더 불 지른 건 데이비드라는 한국계 아이였다. "황인 남자는 백인이든 흑인이든 미국 여자애들한테 어필하지 못해. 그러니까 고백하지 말고 그냥 아시아 남성의 명예를 지켜!"

주위 어느 누구도 황인 소년을 격려하지 못했다. 아빠도 교민 아이도 큰아이까지 딱지 맞을 것이 뻔하다고 만류한 것이다. 오기가 난 녀석이 메이시에게 과감하게 고백했다. 메이시는 좋다 싫다 말없이 생글거리고만 있다. 아들은 속이 탄다.

이 에피소드를 웃어넘길 수가 없다. 인종적 편견이 어린 아이들 사이에 활개를 친다. 백인 아이들은 황인은 황인과 사귀라고 단정 짓고 아들은 황인은 싫고 백인 여자애랑 사귀고 싶어한다.

큰아이는 아예 여자를 사귈 생각도 안 한다. 데이비드는 아시아 남성의 명예를 지켜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면 한국 아나운서나 연예인과 결혼하려고 한다.

아시아인은 착실하고 아시아 남성은 매력 없다고 여겨진다.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주의에 얽힌 녀석들의 이 시추에이션은 사실 미국사회의 축소판이다. 이 문화 인종적 편견에 황인 엄마는 아연실색할 뿐이다.

"엄마, 메이시가 아시아 남자랑 사귀려고 할까." "차별을 경험한 후, 차별에 저항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상류층에 올라가려고 남의 상처를 후벼 파는 사람이 되기도 해. 넌 어떤 사람일까."

플로리다(미국)=hyung0302@hanmail.net 


조형숙

재미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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