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종의 달맞이언덕의 안개] 13. 안개와 함께 밤의 열기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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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노인호 기자 nogari@busan.com

"노준기!"

판사의 호명에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쳐들고 몸을 일으켰다.

"소설가 맞아요?"

고양이처럼 생긴 젊은 판사가 고양이 같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네."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재 그 여자와 관계한 남자들은
모두 매독에 걸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대학 총장·병원장·국회의원·기업체 대표·방송국 사장·공기업 사장·작가 등
모두 일곱 명이나 됩니다"


"나도 노 작가의 팬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 만나게 되어 실망이 이만저만 크지가 않습니다.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할 저명한 작가가 이런 추잡한 사건에 연관되어 범법 행위를 했다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 작가는 현재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국민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을 정도로 저명한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해서 정상 참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고는 현재 몇 살이죠?"

"70입니다."

"고령이군요. 그런데도 그런 짓을 했어요?"

고양이처럼 생긴 판사는 나에게 최대의 모멸감을 안겨 주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밑으로 떨어뜨렸다.

"마지막으로 할 말 있습니까?"

"없습니다."

나는 아득한 현기증을 느끼며, 제발 재판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면서 무기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피고 노준기는 윤락행위방지법을 위반,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다. 다음 조두식!"

마침내 나는 자리에 앉았고, 내 옆에 앉아 있던 50대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허리가 엄청나게 굵은 작달막한 사내였다.

"조두식 씨, H대 총장 맞습니까?"

"마, 맞습니다."

"대학 총장이면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지성으로 존경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후세를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사회의 귀감이 되어야 할 몸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추악한 사건의 피의자가 됐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취중에 그만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30년 넘게 교육계에 종사해 오면서 지금까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마지막 진술 기회를 줄 테니 그때 가서 이야기하세요."

판사는 몇 분간 더 준엄하게 질책하더니 결국 조 총장에게도 나와 똑같은 판결을 내렸다.

이번 사건으로 재판정에 불려 나온 사람은 나까지 포함해서 모두 일곱 명이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로 나 외에 대학 총장, 병원장, 공기업 사장, 국회의원, 기업체 대표, 방송국 사장 등이 있었다. 군 장성도 한 명 끼어 있었지만 그는 군 수사기관으로 넘겨졌다고 했다. 면면으로 봐서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사건이었는데 혈기왕성한 신문사 기자가 그것을 물고 늘어져 대서특필하는 바람에 파장이 커졌고 엄벌하라는 사회적 지탄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방청석은 빈자리 하나 없이 사람들로 들어차 있었고, 일부는 서 있기까지 했다. 나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오른손으로 사타구니를 긁적거렸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사타구니가 가려웠고, 따끔거리는 통증까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나란히 앉아 있는 같은 피의자들을 곁눈질로 훔쳐보니 그들 역시 약속이나 한 듯 사타구니를 긁적거리고 있었다.



달맞이언덕에 스페인풍의 멋진 카페가 하나 새로 생긴 것은 6개월 전쯤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카페 '죄와 벌'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는 바람에 문을 열자마자 '죄와 벌'은 직격탄을 맞고 비틀거리게 되었다.

그 카페는 상호부터가 이색적이고 낭만적이어서 금방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이것이 그 카페의 상호였는데 사실 그것은 내가 지어 준 이름이었다. 문을 열기 한 달 전쯤 그 카페의 주인이라는 여자가 '죄와 벌'에 앉아 있는 나에게 불쑥 다가와서는 나의 팬이라고 하면서 친근감을 보였는데 마리라는 이름의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그녀의 고혹적인 모습에 그만 반하고 말았다. 그녀는 나에게 카페 이름을 하나 지어 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레마르크의 소설 제목인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적어 주면서 그 작품의 스토리를 대충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는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그것을 상호로 채택했고, 얼마 후에 카페 앞에는 '사랑할 때와 죽을 때'라는 근사한 간판이 내걸렸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손님들은 모두 '사랑할 때와 죽을 때'로 몰려들었다. 마치 블랙홀처럼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죄와 벌'은 손님 하나 없이 파리만 날아다니는 텅 빈 공간이 되고 말았다. 포는 낙담하고 분개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디서 굴러먹던 것이 와 가지고는…."

마리를 보고 포가 질투 끝에 중얼거린 말이었지만 나는 시간이 흐르면 달라지겠지 하고 한가하게 생각하면서 쏠림현상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부터가 포가 눈치채지 않게 몰래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 드나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카페에 뻔질나게 드나들게 된 것은 솔직히 말해 여주인 마리(馬梨)에게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30대인지 40대인지 헷갈리는 그녀는 고혹적인 용모에 늘씬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가슴은 터질 듯 부풀어 있어서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좌우로 흔들리는 큼직하고 탄탄한 엉덩이를 몰래 훔쳐보는 즐거움이란 참으로 별난 것이어서 나는 그곳을 즐겨 찾았던 것이다. 더구나 상호까지 지어 준 인연이 있는데다 내 팬이었기 때문에 마리는 나를 특별히 우대했다. 크고 열정적인 눈빛으로 응시하는 미녀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가슴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고, 그런 기분은 나뿐만 아니라 거기에 출입하는 모든 남성이 다 같이 느끼는 것 같았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밤낮으로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낮에는 주로 젊은 남녀와 주부들이 들락거렸고, 날이 저물면 돈푼깨나 있어 보이는 나이 든 사내들이 고급 외제 차를 타고 나타나서는 어깨에 힘을 주고 안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들이 모두 마리를 보고 모여든다는 것은 금방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카페 벽에는 여기저기 의미를 알 수 없는 추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모두가 마리가 직접 그린 것들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화가 겸 카페 주인인 셈이었다. 그녀가 화가라는 사실은 그녀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고, 그 때문에 그녀의 인기는 더욱 올라갔다. 그러던 차 달맞이언덕에 있는 어떤 갤러리에서 느닷없이 그녀의 그림들을 전시하는 초대전이 열리게 되었다. 여기저기 포스터가 나붙고 카페 입구에 팸플릿도 쌓여 있어서 자세히 그것을 들여다보았는데, 마리의 이력은 대단했다. 그녀의 최종 학력은 뉴욕대 회화과 졸업으로 되어 있었고, 각종 국제 공모전에 특선하기도 하고 세계 여기저기에서 열린 전시회에 초대 작가로 참가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녀의 작품에 대한 어느 미술 평론가의 극찬도 소개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나는 그녀의 그림들이 그렇게 극찬을 받을 만큼 훌륭한지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런 것부터가 애매모호하기만 했다.

전시회가 열리는 날 저녁 오프닝 파티에 초대되어 간 나는 참석자들 면면을 보고 그만 놀라고 말았다. 기업인들과 기관장들, 대학 총장과 교수, 병원장, 국회의원, 신문사와 방송국 사장, 그리고 요란스럽게 치장한 귀부인들…. 한마디로 상류층 인사들이 다 모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힘깨나 쓰고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몰려와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은 큰 것부터 소품들까지 수십 점이나 되었는데 그것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난 포는 "이런 것도 그림이라고…" 하고 빈정거리더니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혼자서 휭하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는 그녀를 내버려 둔 채 내 시야에서 마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그냥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포가 뭐라고 했든 간에 전시된 작품들 밑에는 벌써 판매를 표시하는 빨간 딱지들이 나붙어 있었다. 작품가는 5천만 원짜리 대작부터 최하 500만 원짜리 소품까지 다양했는데 5천만 원짜리 작품 밑에는 이미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다. 나는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마리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그리고 내 체면을 봐서라도 작품 하나는 팔아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최하가 500만 원이니 내 형편으로는 버겁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500만 원짜리 다섯 점은 이미 팔려 있었고 1천만 원짜리 한 점이 제일 낮은 가격으로 남아 있었다. '이미지 25'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이 붙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드세요?"

마리가 소리 없이 내 곁으로 다가와 속삭이듯 물었다. 농익은 여체에서 풍기는 독특한 체취와 고급 화장품 향내에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우울한 색감이 마음에 들어요. 터치도 과감하고…."

쥐뿔도 모르면서 나는 제법 전문가처럼 말했다. 그녀가 더 가까이 다가서는 바람에 그녀의 젖가슴이 내 어깨에 뭉클하고 닿았다.

"선생님은 역시 보시는 게 달라요. 선생님이 하시겠다면 50프로 할인해서 드릴게요."

500만 원을 벌었다는 생각에 나는 감격했다.

그날 밤 나는 그 정도 선에서 그녀를 놓아주고 그곳을 나왔다. 나보다 더 비싼 그림들을 산 작자들이 그녀를 차지하려고 눙치고 있는 마당에 내 차례가 되려면 적어도 몇 달은 걸릴 것 같았다.

그녀한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이틀쯤 지나서였다. 전화를 받기 무섭게 그녀는 오늘 밤 내 캠핑카를 타고 밤새 어디론가 달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누구보다도 선생님과 함께 밤을 보내고 싶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날 밤 나는 바다를 끼고 한참을 달리다가 어느 조그만 어촌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조그만 모래밭에 캠핑카를 세웠다. 바닷가에는 아무도 없었고, 파도 소리만 조금 들릴 뿐 주위는 적막에 잠겨 있었다. 하늘에는 둥근 달이 떠 있었고, 바다는 달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마리는 옷을 홀라당 벗더니 다짜고짜 나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흥분해서 날뛰는 암소 같았다. 미처 준비도 안 된 나는 얼결에 그녀를 안았고, 그녀는 내 손을 기다리지 못하고 거칠게 내 옷을 벗겼다. 그녀는 혼자서 달아올라 소리를 질러 댔고, 나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일을 치르고 났을 때 뒷맛이 영 떫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스럽기는커녕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녀와 관계한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떻든 언약도 있고 해서 다음 날 나는 거지 같은 그림 값으로 할인가인 500만 원을 그녀의 계좌로 송금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서부터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타구니가 가렵고 따끔거리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혹시나 하고 비뇨기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매독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어이가 없어진 나는 그렇다고 마리에게 따져 물을 수도 없고 해서 치료 약만 먹어 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곰처럼 생긴 형사가 나타나 경찰서로 좀 가야겠다고 했다. 연행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장인 마리라는 여자 아시죠? 그 여자, 매춘과 사기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그림을 미끼로 해서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받고 유명 인사들한테 몸을 팔았는데 아시다시피 성을 매수한 사람도 엄하게 처벌받게 되어 있습니다. 매수자 명단에 선생님 성함이 들어 있었고, 매수 대가로 500만 원을 준 것으로 되어 있더군요. 그 여자가 다 불었습니다. 매춘 전과가 많습니다. 부산에 오기 전에는 인천과 대전에서 사고를 쳤고, 다음번에는 제주도로 캠프를 옮길 계획이었습니다."

캠프라는 말에 나는 참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가 몰고 온 낡고 조그만 차의 뒷좌석에 몸을 구겨 넣었다.

"혹시 밑에가 가렵거나 하지 않습니까?"

차가 안개 속을 굴러가고 있을 때 그가 불쑥 물었고, 내가 얼굴을 붉히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그 여자와 관계한 남자들은 모두 매독에 걸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대학 총장, 병원장, 국회의원, 기업체 대표, 방송국 사장, 공기업 사장, 작가 등 모두 일곱 명이나 됩니다. 군 장성도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은 군 수사기관에 넘겨졌고…아무튼 좀 시끄러워질 겁니다. 어휴, 무슨 안개가 이렇게 심하지."

나는 멍하니 안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열린 창을 통해서 열기와 함께 안개가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이번 사건을 맡은 검사가 보통 꼬장꼬장한 사람이 아닙니다. 정석대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유명하다고 해서 봐주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본보기로 대표적인 상류층 사람들을 처벌하고 하루아침에 패가망신시킬 그런 검삽니다."

사건이 불거진 것은 총장 부인이 직접 경찰이 아닌 검찰에 고소했기 때문이었다. 총장과 잠자리를 하고 난 그녀는 며칠 후 밑이 근질거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고, 매독이라는 진단을 받고는 남편을 닦달했다. 그 대학은 본래 그녀의 아버지가 설립했는데, 그는 지금은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총장 자리는 사위가 맡고 있었다. 처가 쪽 덕을 많이 보고 있는 총장은 아내한테 기를 못 펴고 있었고, 그런 터에 바람을 피우고 아내한테 성병까지 옮겼으니 펄펄 뛰는 아내 앞에서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총장 부인은 엉터리 그림 값으로 5천만 원이나 주고 마리라는 창부를 산 것을 알고는 격분했고, 이참에 이혼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두 사람을 검찰에 고발했던 것이다. 50대 중반인 그녀한테는 최근 스무 살이나 어린 애인이 생겼는데, 그와 몇 번 잠자리를 하고 나서는 완전히 그에게 푹 빠져 있었다.

"마리가 그렸다는 그림은 전부 가짜로 밝혀졌습니다. 그 여자는 화가도 아니면서 자기가 그리지도 않은 정체불명의 그림들을 자기가 그린 것처럼 전시하곤 했습니다. 국내 작가가 그린 것은 말썽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중국에 가서 누가 그렸는지도 모르는 싸구려 그림들을 마구잡이로 사다가 전시한 겁니다. 그 여자가 영리한 것은 돈을 받고 몸을 판 것이 아니라 그림 값으로 돈을 받았기 때문에 매춘이 아니라는 겁니다. 몸을 준 것은 서로 좋아해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자기는 처벌받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아주 머리를 잘 썼어요. 하지만 검사가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전모가 드러나고 말았죠. 선생님은 앞으로 여자를 좀 조심하셔야 되겠습니다. 전번에도 여자 때문에 곤욕을 치르셨는데 이번에 또 여자 문제로 체면을 구기게 됐으니, 선생님 팬으로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앞으론 여자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거요."

곰은 나를 봐주고 싶지만 검찰에서 직접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에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경찰서에 도착하자 나를 심문실로 데려가 조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고양이처럼 생긴 판사는 마지막으로 마리의 이름을 불렀는데 그녀의 본명은 하지숙이었다. 검은색 원피스 차림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의 미모에 감탄하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재판정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판사의 준엄한 질책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거의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피고는 거액의 돈을 받고 성을 판 사람으로서 조금도 반성의 기미가 없이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자기 변론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사기와 성매매 전과가 다섯 번이나 있으면서도 또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고는 그림을 판 것이지 성 제공의 대가로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철저한 사기극에 지나지 않습니다. 피고 자신이 그 그림들을 그려서 판매했다면 사기도 아니고 성매매 대가도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고는 중국에서 사들인 싸구려 그림들을 마치 자기가 그린 것처럼 위장해서 사회 고위층 인사들로부터 구입 약속을 받아 낸 다음 보다 확실하게 판매하기 위해 성을 제공하고 거액을 받아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까 그림은 성을 매매하기 위한 위장 도구이자 사기 도구였던 셈입니다. 이것은 얼마 전 피고가 가짜 그림 전시회를 열면서 배포한 팸플릿입니다. 여기에 보면 뉴욕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각종 국제공모전에서 특선을 하고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수차례 초대전을 연 것으로 되어 있는데 알아본 결과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여기에 대해 할 말 있습니까?"

"없어요."

마리는 고개를 꼿꼿이 쳐든 채 대답했다. 판사는 자신의 말에 취한 것 같았다.

"할 말이 없겠죠. 피고가 더욱 악랄한 것은 성 매수자들에게 성병을 옮긴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남성 피고들은 지금 피고가 전염시킨 성병으로 모두 고통받고 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남성에 대한 보복 심리로 성병을 옮긴 것입니까?"

"저도 몰랐어요. 나중에야 저도 성병에 걸린 줄 알았어요."

"그게 만일 에이즈였다면 어떡할 뻔했습니까?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어요?"

"개새끼!"

마리는 오른쪽 신발을 벗어 들더니 판사를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그것은 정확히 고양이 이마에 부딪혔다가 떨어졌다.

"징역 5년!"

고양이는 재빨리 판결을 내린 다음 오른손으로 이마를 누르면서 서둘러 안으로 사라졌다.

마리는 맨 먼저 법원 정리에게 끌려 나갔다. 나는 검정 원피스 안에서 안타깝게 요동치는 그녀의 엉덩이를 정신없이 바라보다가 뒤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토끼 눈을 하고 나를 쏘아보고 있는 포를 발견하고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후원: 부산 해운대구


김성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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