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옥의 시네마 패션 스토리] 33. 팩토리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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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스타킹·흰색 톱·롱부츠로 '하의실종 패션' 완성

매끈한 다리를 그대로 드러낸 에디 세즈윅의 '하의실종 패션'. 희고 짧은 상의와 검은 부츠 때문에 다리가 실제보다 더 길어 보인다. 진경옥 씨 제공

지난 2007년 세계 미술시장을 장악한 것은 앤디 워홀이었다. 특히 뉴욕 크리스티경매장에 오른 '그린 카 크래시'(1963년 작)는 실제 일어난 자동차 사고 사진을 녹색 모노톤으로 처리한 뒤 폴라로이드처럼 여러 장 이어 붙인 평면작품으로, 우리 돈으로 약 800억 원에 거래됐다.

앤디 워홀은 살아 있을 때부터 '현대미술의 전설'로 통했다. 그와, 1960년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인 에디 세즈윅의 일화를 담은 영화가 바로 조지 하이켄루퍼 감독의 2006년 작 '팩토리 걸'이다. 영화는 1960년대 패션의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패션과 스타일이 살아 숨쉬는 당시 시대 문화적 배경과 패션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특히 워홀의 작업공간인 '팩토리(공장)'와 그의 뮤즈인 세즈윅이 어떻게 조합되는지, 그 와중에 세즈윅의 패션 실험은 사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를 잘 보여 준다.

워홀의 팩토리는 당시 미국 청년문화의 용광로였다. 마약과 섹스, 포르노에 가까운 영화 촬영, 전위적인 회화 작업, 사진과 미술품의 복제 등 극도의 자유분방함이 예술 창작의 이름으로 이곳에서 용납됐다. 영화는 이 같은 팩토리의 재현을 위해 앤디워홀재단의 협조를 받아 그의 작품 19점을 소품으로 활용했다. 또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제레미 리드는 세즈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의 패션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붉은 톤을 영화 전체의 색조로 받아들여 사용하기도 했다.

세즈윅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불꽃은 피우지 못했다. 그는 28년의 짧은 삶을 약물 중독으로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독특한 패션은 지금까지도 입길에 오른다. 그의 룩은 샤넬의 칼 라거펠트의 패션 모티브가 됐고, 케이트 모스를 비롯한 톱 모델들의 롤 모델이 됐다.

영화에서 의상을 맡은 존 던은 세즈윅의 팩토리걸 패션을 재현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것이 깡마른 몸매에 블랙 타이츠, 하이힐, 기하학적인 미니 원피스, 인조눈썹, 스모키 화장, 빅 사이즈의 샹들리에 이어링 등이다.

특히 그의 '하의실종 패션'은 검은색 스타킹과 술 장식의 흰색 톱, 검은 롱부츠 등을 통해 온전히 묘사됐다. 가수 이효리와 보아, 탤런트 소유진과 김민희 등이 유행시켰다는 이 패션이 사실은 오래 전 세즈윅에 의해 연출된 것이다. 지난해 걸 그룹 '씨스타'가 화보로 선보인 팩토리걸도 원작은 세즈윅이다.

이처럼 과감하고 매혹적인 패셔니스타, 세즈윅을 연기한 배우는 할리우드에서 새로운 패션 아이콘으로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시에나 밀러다.

세즈윅의 검정 타이츠와 트라페즈 라인의 원피스, 길게 늘어뜨린 테슬 귀고리, 스모키 화장 등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패션 피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게다가 그의 다양한 스타일은 크리스찬 디오르, 샤넬, 펜디, 토리버치 등 세계적인 브랜드를 통해서도 꾸준히 재현되고 있다. kojin1231@naver.com


진경옥

동명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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