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성정체성이 다를 뿐, 그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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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동계올림픽 계기 '性소수자 차별 반대' 지구촌 확산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세계를 뜨겁게 달구는 이슈 중 하나는 'LGBT'다.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의 영어 첫 글자를 딴 'LGBT'는 '성소수자'를 뜻한다. 이번 동계올림픽이 LGBT와 연관된 건 반동성애법 때문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6월 이 법을 제정했다. 미성년자에게 비전통적 성관계를 선전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다. 법을 위반하면 벌금을 부과하고 외국인이라면 추방된다. 법이 제정되자 반대와 항의가 이어졌고 러시아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자 반발은 더 세졌다.

러시아 반동성애법 세계적 핫 이슈 부상
"커밍아웃하는 게 아직도 용감한 일인가"
세계적 문인·스포츠인·기업 앞장서 항의

■반동성애법 반대 vs 불편한 시선


러시아의 반동성애법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세계적인 문인 200여 명은 지난 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지에 러시아 반동성애법에 항의하는 서한을 발표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 독일의 귄터 그라스 등이 서명한 서한은 '반동성애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법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국제 동성애자 인권단체 올 아웃은 지난 5일 뉴욕, 런던 등 세계 19개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동성애법 반대 시위를 펼쳤다. 지난달 말에는 동성애자인 테니스 스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등 유명 스포츠인 50여 명도 "러시아의 동성애자 차별에 반대하는 '6조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했다. '6조'란 '모든 차별을 금지한다'는 올림픽 헌장 제6조를 의미한다. 미국 통신기업이자 올림픽을 지원하는 기업인 AT&T는 최근 자사 블로그를 통해 러시아의 반동성애법에 반대하는 글을 올렸다. AT&T는 "성소수자의 평등을 지지하고 이들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올림픽을 지원하는 대형 기업이 반동성애법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는 건 드문 일이다. AT&T는 올림픽 스폰서인 세계적인 기업들에 반동성애법에 반대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는 최근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국가로는 러시아 아기 입양을 금지했다. 러시아는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일인 지난 7일 동성애 인권운동가들을 체포하기도 했다. 이들은 소치에서 동성애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러시아 국가를 부르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동성 결혼을 허용한 주도 있지만, 현실에서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은 존재한다. 지난해 미국 보이스카우트 연맹 회원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게 그 사례다. 지난해 보이스카우트 인원은 전체의 6%가 감소했다. 이는 최근 10년간 감소율 중 가장 높다. 지난해 1월 청소년 동성애자 가입을 허용한 게 주된 이유였다. 미국 개신교계 최대 분파인 남침례교는 신자들에게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권장하지 않도록 했다. 동성애자들이 짝을 찾을 때 사용하는 '그라인더'라는 앱은 해커들의 공격으로 폐쇄되기도 했다.

아프리카 대륙은 더 심각하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국가가 상당수다. 아프리카 55개국 중 38개 국가에서 동성애는 불법이다. 수단이나 소말리아 남부에서 동성애자는 최고 사형까지 받을 수 있다. 동성결혼이 합법적인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예외는 아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이 증가 추세다.

■느리지만 의미 있는 진전

성소수자에 대한 시각은 다양하겠지만, 러시아 반동성애법에 반대하는 분위기는 사회에 즉각 반영됐다. 그 중에서도 페이스북의 변화는 획기적이다. 페이스북은 최근 회원 성별 시스템을 바꿨다. 성별 난에 여성과 남성 이외에 '맞춤'(Custom)이라는 난을 만들었다. '맞춤'을 클릭하면 무성, 양성 등 자신의 성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50개 항목이 나타난다. LGBT의 성 정체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페이스북은 현재 영어권에만 적용한 이 시스템을 점차 세계로 확산할 계획이다. 코카콜라는 지난 3일 열렸던 미국프로풋볼 결승전 경기장 광고에서 게이 가족을 출연시켰다. 미국 대형 스포츠 경기 광고에 게이 가족이 등장한 건 사상 처음이다.

미국 법무부는 최근 동성 부부에게 이성 부부와 동일한 권한을 부여키로 했다. 보상금이나 교육비 혜택 같은 경제적인 부문은 물론 부부가 서로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 등 법적 부문까지 동성 부부도 이성 부부와 같은 권리를 갖게 된다.

세계 정치권도 영향을 받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캐머론 영국 총리 등 세계 지도자들은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불참했다. 러시아의 반동성애법 제정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에게 반동성애법에 서명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 법은 동성애 행위자에게 최고 종신형까지 판결할 수 있는 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법이 제정되면 우간다와 미국 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 몇 년 동안 연간 4억 달러 이상을 우간다에 지원해왔다. 법을 제정하면 지원을 끊을 수도 있다는 일종의 경고다.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소치에서 열린 IOC 총회 기조연설에서 "올림픽은 인종이나 지역, 성적 성향에 관계없이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권리가 있다"고 역설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간접적인 메시지다.

이런 움직임은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작은 진전이다. 성소수자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성정체성이 다를 뿐이다. 다른 것을 인정해야 성숙한 사회가 된다. 영화 '인셉션'에 출연해 잘 알려진 배우 엘런 페이지가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밝혔던 내용을 게재한 시사주간지 타임의 기사 제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기사 제목은 이랬다.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밝히는 일(커밍아웃)이 아직도 용감해야 할 수 있는 일인가?'

김종균 기자 kjg1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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