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육은 압력밥솥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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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 아만다 리플리

열여덟 살 미국 청소년 에릭은 3분의 1의 학생이 수업 시간에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는 이렇게 수업시간에 맨날 자면서 어떻게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궁금해 한다. 사진은 부산의 한 고등학교 교실 모습. 부산일보 DB

장면 1. 학급의 3분의 1은 잠을 잤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잠에서 깨어났다. 10분밖에 되지 않는 쉬는 시간은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여학생들은 책상 위에 앉거나 뒤집어 놓은 쓰레기통 위에 앉아 수다를 떨거나 전화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남학생 몇몇은 연필로 책상을 드럼처럼 때리며 놀았다. 수업 시간에 저렇게 맨날 자면서 한국 아이들은 어떻게 그런 기록적인 성적을 낼 수 있었을까?

장면 2. "한국에서는 교사를 국가 건설자로 인식한다. 미국도 그와 같은 존경심으로 교사를 대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다. 2011년 대통령 신년 국정 연설을 듣던 미 상하원 의원 전원이 이 대목에서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안컨 미국 교육부 장관 역시 깊은 존경을 받는 교사들과 열정적인 부모들로 이루어진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부럽다는 발언을 했다.

한·미·핀란드 상황 비교
"공평한 교육 기회 없으면
시스템 왜곡 가능성 커져"

한국 교육을 보는 두 시선이다. 이 가운데 정말로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교육은 온 국민의 화두이지만, 정작 우리 상황을 차분하게 바라보고 다른 나라들과 종합 비교해 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는 한국을 비롯해 핀란드, 폴란드 등 신흥 교육 강국들과 미국의 교육 상황을 탐사보도 형태로 비교한 책이다.

고향 오클랜드를 떠나 핀란드 학교로 간 킴, 미네소타의 평화로운 일상을 벗어나 부산에 교환학생으로 간 열여덟 살 에릭, 펜실베이니아에서 폴란드로 떠난 열일곱 살 톰 등 교육 강국을 향해 떠난 세 명의 아이들의 일상을 밀착 취재한다. 더불어 전 세계 교육 관계자 400여 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국, 핀란드, 폴란드 3국과 미국 교육의 현실을 가감 없이 비교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눈길을 더 끄는 대목은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다른 나라들의 교육 강점을 찾기 위한 프로젝트였지만, 저자는 한국 교육이 앓고 있는 수많은 부작용에 대해 언급한다. 미국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학생 1인당 교육 예산을 메우고도 남는 사교육 시장, 사교육에 의존하는 한국 교육 성취도의 현실 그리고 성적에만 집착하는 사회의 갖가지 병폐에 대해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낸다.

저자는 에릭을 통해 '압력밥솥'(학생들이 매일 하루 12시간 이상을 학교에서 지내는 한국의 경쟁적 학교 시스템을 일컫는 말) 같은 한국교육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전한다. "한국의 십대들은 온갖 종류의 벽장에 갇혀 지낸다. 때로는 작고 공기가 통하지 않는, 글자 그대로 벽장 같은 곳에서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한다"고.

저자는 "한국에서 인터뷰한 여러 사람 가운데 한국의 교육제도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면서 "모두에게 의미 있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이 전제되지 않으면 시스템은 왜곡될 위험이 커진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저자는 한국 교육의 부정적인 면만 전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교사, 부모, 사회가 목표치를 높게 설정해 주고, 학생들 역시 자신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한국 교육의 경쟁력이라고 추켜세운다.

이 책은 다른 나라 교육 상황을 통해 한국 교육을 되돌아보고 외국 교육 전문가의 시각을 통해 한국 교육의 장·단점을 볼 수 있는 계기도 된다.

미국의 평범한 학생과 교육 전문가의 눈에 비친 한국 교육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만다 리플리 지음/김희정 옮김/부키/432쪽/1만 4천800원.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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