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막걸리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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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범 논설위원 pkbum@busan.com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막걸리를 마시면/배가 불러지니 말이다.//막걸리는 술이 아니다/옥수수로 만드는 막걸리는/영양분이 많다/그러니 어찌 술이랴.//… 천상병의 '막걸리'

못살고 배고팠던 시절 시인의 시처럼 서민들의 허기를 채워 주고 시름을 달래 줬던 막걸리. 그랬던 막걸리가 2000년대 들어서는 젊은 층의 입맛까지 사로잡으며 한때 10대 히트상품 1위까지 진화를 했으니 지금은 국민주(酒)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부산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술이 막걸리라고 한다. 국세청이 지역별로 집계한 2012년 주세(酒稅)를 분석한 결과, 부산에서 생산된 술 출고량의 절반이 넘는 57.5%를 막걸리가 차지했다는 것. 출고량은 서울, 강원, 충북에 이어 전국서 4번째. 막걸리가 소주와 함께 향토주(酒)의 성격이 강하고, 출고량 상위 3곳서 생산되는 막걸리가 경기도 등 타 지역에서 많이 소비되는 점을 고려하면 부산 사람들의 막걸리 사랑은 전국서 가장 유별나다고 할 수 있다.

부산사람들은 왜 막걸리를 좋아할까. 사실 막걸리 맛은 전국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대부분 생산업체들이 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하지 않는 입국법으로 제조하기 때문에 지역적인 맛의 특성은 없고 소비자에게 거의 동일한 맛을 전달한다는 것. 대신 전통 방식인 누룩을 사용할 경우 제조과정과 미생물 번식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 특성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부산은 전국서 드물게 이 두 가지 제조법으로 생산된 막걸리를 같이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막걸리 기호도가 높은 게 당연할지 모른다. 다소 투박하고 억센 부산 사람들의 기질이 '막 걸러낸' 막걸리의 감성과 잘 맞아떨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전국 최초 막걸리 분야 식품명인을 보유한 부산. 돼지국밥, 밀면에 이어 부산의 대표 음식 브랜드에 "막걸리 추가요!" 외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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