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옥의 시네마 패션 스토리] 26. 애니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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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칼라 셔츠·검정 중절모·실크 넥타이… 70년대 '매니시 룩' 선두주자

검은 중절모, 긴 칼라의 화이트 옥스퍼드 셔츠, 검은 테 안경, 실크 넥타이, 그 위에 단추 하나만 잠근 검정 울 조끼로 남성적인 스타일 보이고 있는 애니 역의 다이앤 키튼. 진경옥 씨 제공

우디 앨런 감독의 '애니홀'(1977)은 '대부' '내슈빌'과 함께 1970년대 가장 중요한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힌다. 특히 독특한 화면 구성은 이후 수많은 영화에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화면을 둘로 나눠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 주고, 애니메이션을 삽입했다. 만화의 말풍선을 영화에 활용해 겉과 속이 다른 등장인물의 내면을 가시화한 것도 그였다. 이 영화는 덕분에 1978년 최고의 블록버스터인 '스타워즈'까지 제치고 아카데미 작품, 각본, 감독, 여우주연 등 4개 부문 상을 휩쓸었다.

영화 속 여주인공인 애니 역의 다이앤 키튼은 우디 앨런의 연인이었다. 영화 제목 '애니홀'도 다이앤의 애칭인 '애니'와 그의 본명인 '다이앤 홀'에서 따왔다. 그만큼 다이앤 키튼을 위한 영화라는 얘기다. 실제로 다이앤 키튼의 '매니시 룩'은 이 영화에서 구성 못지않게 큰 사회적 영향을 주었다.

'매니시'란 '남자 같은'을 뜻하는 단어로, 매니시 룩은 여성복에 남성적 요소를 더한 패션이다. 물론 남성복을 그대로 입은 것이 아니라 여성답게 고쳐서 입었다. 매니시 룩은 이 때문에 남녀평등의 상징으로 자주 활용되며, 특히 강한 자신감을 가진 여성을 투영하기도 한다. 다이앤 키튼이 입은 남성용 셔츠와 넥타이, 검정 베스트와 헐렁한 치노 팬츠는 미국 시사잡지 '타임'이 '20세기 영화 속 최고의 패션 10가지'에 선정하기도 했다.

잘 만들어진 영화 의상은 20세기 패션에서 감초 같은 존재였다. 그만큼 20세기는 영화와 패션의 관계가 깊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애니홀'이었고, 매니시 룩을 소화해 스스로 '애니홀 룩'을 유행시킨 다이앤 키튼의 패션은 1970년대 패션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이 애니홀 룩을 창조한 패션 디자이너가 랄프 로렌이다. 영화에서는 앨비 싱어(우디 앨런 분)와 애니 홀이 테니스를 친 뒤 만나는 장면에서 애니의 의상을 통해 드러난다.

펠트 소재의 검정 중절모, 긴 칼라의 화이트 옥스퍼드 셔츠, 검은 테 안경, 남자들처럼 맨 실크 넥타이, 그리고 그 위에 단추 하나만 잠근 검정 울 조끼, 엉덩이에 걸친 베기 스타일의 바지 등이 애니홀 룩이다. 이는 나중에 뉴욕 지식인을 대표하는 패션이 됐다.

랄프 로렌은 영화와 패션의 컬래버레이션(협업)을 성공시킨 디자이너다. 우디 앨런도 이 영화에서 랄프 로렌의 다양한 폴로 의상을 직접 입고 출연했다. 그러나 우디 앨런은 "랄프 로렌이 의상을 디자인한 것은 사실이나 어떤 옷을 입을지는 다이앤 키튼이 전적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다이앤 키튼의 뛰어난 패션 감각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영화 의상은 캐릭터의 시각적 표현을 넘어 그 시대의 대중 패션을 선도하는 역할도 해 왔다. 1960년대 이브 생로랑과 같은 선두 디자이너들이 매니시 룩을 시중에 첫선 보였다면, 영화 '애니홀'은 매니시 룩을 시장에 안착시키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 애니홀 덕분에 1980년대 매니시 의상은 더 이상 유행이 아닌, 기성복의 한 범주로 일반화됐다. 동명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kojin12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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