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 수영 도전기] "푸른 여명 가르며 세찬 물살 품을 때, 우주와 나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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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기온을 오르내리는 새벽 해운대 앞바다에 알몸으로 뛰어든 부산바다수영 동호회 회원들. 기자(맨 오른쪽)는 찬 바닷물을 감당하지 못해 슈트를 입었고, 안전을 책임진 카페 운영자 서민정 씨도 슈트를 입었지만 나머지 회원들은 수영팬티만 달랑 입은 채 거친 바다에 안겼다.

"광안대교는 바닷속에서 바라봐야 제 맛이죠." 닉네임 '마린공주' 서민정 씨가 말했다. "예? 뭐라고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해 되물었다. "멋진 광안대교를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닷속에서 바라보는 것이라고요!" 아하 그제야 알아들었다. 365일 단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에 나온다는 바다수영 마니아들. 이들이 영하를 오르내리는 이 추운 겨울에 자발적으로 바닷물에 입수를 한단다. 정말인가 싶어 확인을 했더니 맞다. 겁도 없이 기자도 겨울 바다수영에 도전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해운대해수욕장 웨스틴조선호텔 바로 옆 '해운대 석각' 전용 탈의실(간이 텐트)로 오라고 했다. 평일 바다수영을 즐긴다는 동호회를 수소문해서 체험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돌아온 문자였다. '아! 바다 수영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별도의 탈의실이 겨울에도 있는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오전 6시 수온 14도, 슈트 입고 입수
동백섬 돌아오는 1.6㎞ 온몸이 오싹
어떻게 헤엄쳤는지 기억조차 안나

주차장에서 송림을 지나 바다로 가는 길이 낯설었다. 오전 6시인데도 어두컴컴했기 때문이다. 해운대는 모래를 보강하는 정비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사뭇 많았다.

  
 

다음카페 '부산바다수영' 동호인들이 하나둘 모였다. 보통의 경우 만나자마자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고 입수한단다. 겨울 바다 입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벌칙으로 하는 경우는 종종 봤지만, 자발적으로 이 추운 겨울날 그것도 거의 맨몸으로 입수를 한다니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수영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운동을 하는 부산바다수영 동호인들.
부산 연산동에서 심야 식당을 하는 닉네임 '다이버' 김용래 씨가 말했다. "전 방금 영업을 마치고 왔어요. 늦게 온 손님에게 마친다며 양해를 구하고 달려왔죠"라며 웃었다. 김 씨는 "밤새 담배연기에 찌든 몸이 아침 30분 찬물 수영으로 개운해집니다. 이 맛에 여길 오는 거죠"라고 예찬했다.

다들 생업을 마치고 오거나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 모이는 거였다. 얼음장 같이 찬 바닷물에 수영 한번 진하게 하고 간단하게 씻고 바로 회사로 직행하는 동호인들이 많단다.

'막시무스'라는 다소 거친 닉네임을 가진 부산바다수영 주태환 회장은 "누가 시키면 이런 것 못한다"고 했다. 예순 나이의 주 회장은 벌써 6년째 회장직을 맡고 있다. 부회장 닉네임 '순수청년' 강기일 씨가 "회장님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라고 살짝 귀띔한다. 주 회장의 힘찬 구령에 맞춰 준비 체조를 했다. 관절 여기저기서 '아야~아야' 소리를 냈다.

■바다는 무척 캄캄했다

간이 천막이 이들의 탈의실이다.
보통은 동백섬 등대까지 다녀오는 1.6㎞ 수영을 한다고 했다. 초보인 취재기자를 배려해서인지 이날은 25분 정도로 마쳐준다고 했다. 부산바다수영 동호회원들의 특징은 주로 알몸 수영을 즐기는 것. 겨울이라 슈트를 입으면 한결 보온도 되고 편하지만, 유독 수영복 하나만 달랑 걸치는 알몸 수영을 고집한다.

콧수염을 멋있게 길러 닉네임이 '코털마린'인 박완주 씨는 오리발을 찬 사람 보다 배나 더 빠르다고 주변에서 치켜세운다. 서핑용 슈트를 단단하게 입고 나온 터라 부끄러웠다. 하지만 전날 내내 기상 예보를 보며 오전 6시 기온이 영상 3도라는 말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부산바다수영 사이트 운영자인 '마린공주' 서민정 씨는 "전날 비가 와서 당일은 바람이 불고 파도가 좀 셀 것"이라며 은근히 겁을 주기도 했던 것이다.

이날 나온 사람들 중 홍일점인 서 씨는 알고보니 유명인이다. 영화 해운대에서 물에 빠진 여자 주인공 하지원의 대역을 했다고 한다. 겨울 물속에서 30분을 견디며 촬영할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았던 것. 당시 동호회원 100여 명이 영화의 물속 시체 대역으로 집단 출연하기도 했단다.

서 씨가 옆에서 가이드를 해 주기로 해서 그나마 안심이었다. "입수!" 물속에서 파이팅을 서너 차례 외치고 고함을 있는 힘껏 질렀다. 겨울 바다수영의 다른 이름은 '용기'라고 서 씨가 말했다. 그런데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지점에 도착하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숨도 막혔다. 그새 짜디짠 바닷물이 입속으로 침입했다. "천천히 헤엄을 치세요." 안심을 시켜주어 겨우 진정이 되었다.

■한 점 온기에 정을 나누다

한번 또 한번. 자라헤엄을 치기도 하고, 개헤엄도 치고, 자유형도 흉내를 내면서 점점 바다로 나아갔다. 슈트 속으로 찬물이 가끔 들어와 오싹했다. 두꺼운 슈트를 입고도 이런데 맨살로 저 멀리 헤엄쳐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니 기가 찼다. 사실 수영을 즐기기 보단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지배했다. 술 취한 사람 마냥 조잘조잘 말을 계속 내뱉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닷물
아침에 몸 담그고 나와야 하루 시작"
동호회 회원들 알몸 수영 고집


호텔 불빛이 제법 멀어졌다. "바다수영은 머리를 물에 담글 수 있으면 다 배운 겁니다." 목을 고양이처럼 빳빳하게 들고 수영을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서 씨가 말했다. 바다는 수심이 깊기 때문에 물밑을 보면 더 겁이 난단다. 이 두려움을 이겨내야 제대로 수영을 즐길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다행히 어둠이 짙어 겁이 나지는 않았다. 얼마나 견딜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반환점을 돈 동호인들이 벌써 돌아온다. 얼른 해안쪽으로 방향을 바꿔 뭍을 향해 죽으라 헤엄쳤다.

발이 모래에 닿자 안도했다. 그런데 머리가 어지러울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해주었다. 이날 수온은 14도. 바깥은 영하에 가까운 날씨니 뭍에서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수온도 14도라지만 목욕탕 냉탕의 온도가 평균 18도이니 얼음장 같다고 해야 맞다.

미리 준비해 온 온수를 여니 아직 뜨겁다. 닉네임 '겨울' 최영철 씨가 따뜻한 물을 나눠주었다. 이제 물에서 나왔다고 방심을 하고 있는데 주 회장이 야단을 친다. 빨리 모자를 쓰고 양말을 신으라고 했다. 그쪽으로 체온이 급속하게 빠져나가면 저체온증이 온다는 것. 서 회장은 "자연에 순응하고 겸손하게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쿠버 강사이기도 한 서민정 씨는 회원들의 안전을 위해 청바지를 입고 물에 빠지는 훈련을 연 2차례 한다고 했다. 동호회원 중에는 초등학생도 많아 주말이면 함께 즐기기도 한다고.

주 회장이 자랑했다. "비 오는 날 수영해 봤어요? 눈 오는 날은?" 겨울 바다와 따뜻한 사람들이 그리우면 해운대로 가야겠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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