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주의 광장&골목] <18> 불가리아 소피아중앙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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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녀로 활기찬 거리… 시장에서는 쇼핑과 휴식을 동시에

불가리아 수도인 소피아에서 쇼핑으로 가장 유명한 비토샤거리. 역에서 시내 중심을 관통하는 넓은 도로 양쪽으로 카페와 명품점이 즐비하다. 이랑주 씨 제공

불가리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뭘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산균 음료의 이름이 아닐까? 그렇다. 장수와 유산균의 고향이 불가리아다.

불가리아의 수도는 소피아. 가벼운 옷차림으로 소피아에서 가장 '핫한' 거리인 비토샤를 찾았다. 역에서 시내 중심을 관통하는 넓은 도로 양쪽에 늘어선 가로수가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그 나무 그늘 밑으로 명품점이 줄줄이 보였다. 다양한 장식의 카페들도 시선을 끌었다.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남녀들은 활기가 넘쳤다.

■차가운 수프 '타라토르' 입맛 맞아

명품점과 카페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광장에 이르렀다. 그 광장 한쪽에 큰 교회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다. 소피아중앙시장이다. 그런데 겉모습은 전혀 시장처럼 보이지 않았다. 시장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구성됐다. 내부로 들어가니 초록색의 철 구조물이 특이했다.

지하에는 의류매장과 사무실이 위치하고, 1층에는 농수산식품, 유제품, 와인 상점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 상점들 사이에는 카페와 와인바들이 보였다. 쇼핑과 휴식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층에는 식당이 자리잡았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세트 식품을 많이 팔았다.

그중 한 식당에서 불가리아의 대표 음식이자 차가운 수프인 '타라토르'와, 위스키를 넣은 달걀, 치즈 패스트리를 오븐에 구운 빵 '바니차'와 치킨 요리를 주문했다. 타라토르는 마늘, 해바라기 씨, 허브를 넣어 약간 걸쭉했는데 입맛에 잘 맞았다. 닭요리에 곁들여 나온 배추는 우리나라의 백김치와 비슷한 맛을 냈다. 한 끼 식사로 충분했다.

우리처럼 간단히 식사할 요량으로 찾은 고객이 많았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주고객으로 보였다. 부산에도 이런 재래시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생산품만 팔 것이 아니라 생산품과 함께 곧바로 먹을 수 있는 간이식품도 판매하는 공간을 조성했으면 좋겠다.

■다양한 양념에서 다양한 음식 나와

소피아여신상. 지혜의 여신으로도 불린다.
시장 한쪽에는 양념 가게가 많았다.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유난히 눈에 띄는 장면이었다. 특히 고추로 만든 양념이 다양했다. 양념 종류가 많다는 점에서 한국 요리와 불가리아 요리는 비슷한 것 같았다.

실제로 불가리아 요리는 유럽 요리와 아시아 요리를 섞은 것이 많다. 예로부터 서아시아와 서·중·북유럽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불가리아가 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유럽의 미식가들이 불가리아를 많이 찾는데, 더 좋은 것은 음식 인심까지 훌륭하다는 사실이다. 가격도 착하다.

시장 2층에는 식당뿐 아니라 1층에서 구매한 음식을 가져와서 먹을 수 있는 휴게공간이 있었다. 넓고 쾌적했는데, 안마의자와 아이들 놀이시설, 외국인을 배려한 환전소와 은행도 있었다.

■오랜 피지배에도 자부심 잃지 않아

식사를 마치고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은 불가리아 정교회를 대표하는 것으로 소피아의 랜드 마크이기도 했다. 금빛 찬란한 돔과 러시아 풍의 민트색 지붕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내부는 더 아름다웠다. 이탈리아 대리석, 이집트 설화석고, 브라질 마노, 금 인테리어 등으로 치장돼 있었다. 사진 촬영을 금지해 눈에만 담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쉽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공사 중인 작은 교회를 만났다. 불가리아 정교회당인데 지하에 있었다. 과거 오스만투르크(터키의 옛 이름)의 지배하에 놓였을 때 투르크 지배자들은 이슬람 교회를 세우고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강권했다고 한다. 그러나 불가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지하에 작은 교회를 세워 항거했다. 공사는 바로 도로 한복판에 설립된 정교회당을 복원하는 작업이었다.

사라예보로 가는 기차 속에서 만난 한 불가리아 여대생은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불가리아인의 영토와 문화적 정체성을 끝까지 지켜낸 조상들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입증하는 현장을 지켜보니 감동이 배가 됐다.

불가리아는 동유럽에서도 변방에 속한다. 서쪽으로는 세르비아와 마케도니아, 북쪽으로는 루마니아, 남쪽으로는 그리스와 터키, 동쪽으로는 흑해와 맞닿고 있다. 교류의 중심에 있다는 얘기다. 덕분에 거리에서 만난 상점들과 시장, 광장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어렴풋이 불가리아의 역동적인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다. 광장 끝의 여신이 소피아 도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랑주VMD연구소 대표 lmy7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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