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저 스케이트 보드 체험] 파도 타는 듯한 이 쾌감은? 서핑의 재미, 육상으로 진화하다
'지구는 역시 둥근가?' 한쪽 발을 살짝 밀자 크루저 스케이트 보드가 제 스스로 달려가듯이 앞으로 쭉 나아갔다. 아주 조금 밀었을 뿐인데 보드는 한참이나 움직였다. 바닥이 경사졌나? 아니었다. 사직운동장 실내경기장 앞 옥외 테라스는 평평했다. 보드에 달린 우레탄 바퀴 4개가 발로 미는 힘에 의해 부드럽게 구른 것이다. 보드는 좌우로 살짝살짝 춤을 추듯이 흔들리며 나아갔다.
■뭍으로 진화하다
크루저 스케이트 보드를 처음 보는 순간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 확 왔다. 기억은 의외로 쉽게 확인됐다. 각종 스케이트 보드를 보급하고 판매하는 '스테일 피쉬' 고성일(32) 대표는 "미국 캘리포니아지역에서 서핑을 즐기던 젊은이들이 육상에서도 서핑의 재미를 지속하기 위해 만들어 탄 것이 시초"라고 설명했다. 뭇 생명이 바다에서 육지로 진화했듯이 스케이트 보드도 그런 모양이다.
재질·길이 따라 3가지 종류지만
마니아들은 자신에 맞게 직접 조립도
앞뒤로 주행하는 스케이트 보드와 달리
앞으로만 달리는 것이 크루저
청소년이라면 한나절에 습득 가능
■재질, 길이 따라 구분
보드는 크게 크루저 스케이트 보드, 스케이트 보드, 롱 (스케이트)보드 등 3가지로 구분한다. 그중 크루저는 재질에 따라 나무와 플라스틱으로 나누고, 길이에 따라 일반적인 것과 미니 보드로 구별한다. 통상 보드 길이가 27∼32인치이지만, 미니는 22∼26인치(제조사에 따라 조금씩 다름) 수준. 이와 달리 롱 보드는 36인치 이상으로 길다.
그러나 이 같은 길이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고 대표의 설명이다. 그 이유는 보드 마니아의 경우 데크와 바퀴 등을 직접 조립해 사용하는데, 자신의 키나 몸무게에 맞게 길이를 조정하기 때문이란다. 이 밖에 한때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앞뒤 데크가 따로 노는 '에스(S) 보드'도 있다.
크루저가 스케이트 보드보다 국내에는 늦게 소개돼 크루저를 나중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크루저가 스케이트 보드의 원조라고 한다. 스케이트 보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미국 청소년들이 놀던 '바나나 보드'가 바로 크루저 보드다. 바나나는 보드의 제조사 이름이다.
■외줄을 탄다는 생각으로
보드를 처음 탄다고 하니 고 대표는 미니 대신 발판이 조금 더 넓고 긴 일반형 크루저를 내놓았다. "외줄을 탄다고 생각하세요. 가운데 있는 선이 밧줄이라고 생각하고 올라 서 보세요." 발판에는 굵은 줄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초보자를 위해 선을 따로 그린 듯했다. 보드는 발판 위에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이나 사진, 만화 캐릭터 등을 새겨넣는 경우도 흔하다.
"크루저와 일반 스케이트 보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실 크기가 아니라 보드의 모양과 바퀴의 재질입니다." 고 대표가 말했다. 크루저는 앞뒤 구분이 명확하고 앞쪽으로만 나아갈 수 있다. 말 그대로 주행용이다. 반면 스케이트 보드는 앞뒤 모양이 거의 다르지 않아 두 방향으로 다 진행할 수 있다.
프로 스케이트 보드 선수인 고성일 씨가 알리 기술을 이용한 평균대 타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정종회기자
이 때문에 크루저는 보드 마니아 입장에서 볼 때 심심한 놀이도구다. "주행 이외에는 특별히 재미를 느낄만한 요소가 없어요. 특히 길을 가다가 돌출된 턱이나 넓은 틈새를 만나도 뛰어오를 수 없지요."
바퀴는 우레탄으로 돼 있다. 그러나 강도에서 조금씩 차이가 난다. 크루저의 바퀴가 말랑말랑하다면, 일반 스케이트 보드는 크루저에 비해 크기가 작고 단단하다.
■레귤러와 구피풋
보드의 기본 동작은 발판 위에 올라 서는 것이다. 왼발을 먼저 올리면 '레귤러'(Regular), 오른발을 먼저 올리면 '구피풋'(Goofy-foot)이라고 부른다. 어느 쪽을 먼저 올리든 상관없지만 보통은 왼발이 앞선다. 왼발을 보드의 앞 볼트 부분에 올렸으면 무릎을 살짝 구부린 상태에서 폄과 동시에 오른발로 땅을 구르며 빠르게 올라탄다.
이때 두 발이 서로 가깝게 놓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능하면 앞뒤 바퀴 위에 두 발이 놓이게 하는 것이 좋다. 뒷발은 보드의 진행 방향과 90도 각도로 만든 뒤 앞발을 조정해 뒷발과 '11' 모양이 되도록 한다. 양팔은 균형을 잡기 위해 벌리는 것이 좋다.
몸을 살짝 흔들면 진행성도 좋고 방향 전환도 잘 된다. 서핑보드처럼 일단 보드에 올라탄 뒤 방향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감각이 좋은 청소년이라면 한나절의 연습으로도 충분하다.
■한번에 성공한 주행
역시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하는 모양이다. 전국을 통틀어 50명 정도인 국내 프로 보드 선수 중 한 명이자, 중학교 때부터 보드가 좋아 서울~부산을 오가며 보드를 즐겼다는 18년 경력의 고 대표에게 배우니 주행이 단 한번에 이루어졌다. 물론 속력을 낼 정도는 아니었다. 초보자는 안전모와 무릎보호대 등 안전장구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크루저 보드는 자전거처럼 한번만 배우면 그다음부터는 안정적으로 탈 수 있다.
고 대표와 함께 일하는 김연수(26) 매니저는 초보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막상 보드에 올라타니 능숙했다. 강아지 '테리'와 함께 보드를 타기도 했다. 본격 겨울을 예고하는 듯 바람이 차가웠지만 서너 바퀴를 돌고 나니 땀이 훅 났다. 각종 기술을 구사하기 쉬운 스케이트 보드가 정답이겠지만 작은 플라스틱에 눈길이 자꾸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눈에 아름다워야 레포츠도 재미가 있으니까. 네 바퀴를 달고 함 달려볼까!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